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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한충자

험한 길 다듬지도 못하고
지친 길 깎아 내지도 못한 내 인생
수십 년 땅을 파도
금은 보이지 않고 자갈만 널려 있다
빛바랜 자갈은 메밀꽃 핀 것 같다
승용차는 달리다 길이 험하면 되돌아가기나 하지
내 인생길은 돌아갈 수 없다

매일 새벽,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시를 쓰는 한충자 할머니
▲ 시를 쓰는 한충자 할머니 매일 새벽,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시를 쓰는 한충자 할머니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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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순간에 늘 고민하고, 고민 끝에 나름 최선의 선택을 택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길에 서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놀라 뒤돌아보면 이미 너무 오래전에 떠나온 길은 출발점조차 보이지 않는다. 너무 멀리 와 버렸고, 후진은 허락되지 않기에 직진할 수밖에 없는 인생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게 하는 이 시를 만난 것은, 지난해 7월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방문한 한충자 할머니의 거실에서였다. 거실에 걸린 할머니가 직접 쓰고 그린 시화를 보고, 화려하진 않아도 인생이 녹아있는 할머니의 시 세계에 매료됐다. 올해로 84살이 된 할머니는 '까막눈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글자 몰라 남편 편지에 답장 못해... 까막눈의 한

할머니의 고향은 충북 음성군 하루동골, 수백 년 세월을 이긴 덩치 큰 버드나무가 장승처럼 마을을 지키고 서 있는 시골 마을. 할머니가 이 마을로 시집온 지도 어언 60년이 됐다.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땅만 보고 살아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가난한 농부의 집 맏딸로 태어난 할머니는 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했다. 어린 시절, 가방 메고 학교 가는 친구들을 보면 " 쟤는 무슨 팔자를 타고 나서 학교를 다 다니나?" 밭을 매며 눈물을 훔치곤 했다고 한다.

24살이 되던 해, 할머니는 신랑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시집을 왔다. 시댁 역시 할머니 집 못지  않은 가난한 집이었다. 밥은 고사하고 국수 한 그릇 배불리 먹을 수 없는 나날들. 먹을 양식은 없고 식구들만 가득했다.

시할아버지, 시어머니, 시아버지에 시동생들까지, 많을 때는 15명의 식구가 한집에서 살았다. 그때 배운 게 칼국수였다. 홍두깨로 반죽을 밀수록 양이 늘어나던 칼국수. 먹을 것이 부족하면 칼국수를 만들어 반죽을 몇 번이고 밀고 또 밀었다. 그러면 반죽이 습자지처럼 얇아지긴 해도 물을 푸짐하게 부어 끓이면 한 끼 허기를 때우게 해주는 고마운 음식이었다.

한충자 할머니의 자필 원고
▲ 한충자 할머니의 자필 원고 한충자 할머니의 자필 원고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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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꽃>

한충자

번갯불에 콩 볶듯 사주 받고 시집 오니 오두막집
쌀은 보이지 않고 식구만 방에 가득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모시고 살아왔다
...
보릿고개 벗어나려고
밤을 낮 삼아 터널 빠져나오면
또 먹구름 태풍을 만난다
...
참을 인자 석 자 가슴에 넣고 보니
시어머니 103세
며느리 83세
백합꽃 두 송이 같다

굽이굽이 고단한 시집살이를 부지런함으로 이겨온 세월이 60여 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함께 산 시어머니와 할머니는 함께 머리에 하얀 서리를 인 백합꽃이 돼 있다.

시집 오고 얼마 뒤 군대 간 남편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할머니는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글을 몰라 편지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삼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말을 누구에게 할 수도 없어 혼자 가슴앓이를 했다. 휴가 나온 남편이 답장하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까막눈임을 부끄럽게 고백해야 했다. 그렇게 가슴의 한으로 남았지만, 글을 배운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월이었다. 눈 뜨면 들녘으로 나가 일해야 했고, 식구를 거둬야 했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가 할머니 나이 일흔이 넘었다. 눈도 침침해지고, 총명했던 기억력도 어두워지고 관절염으로 수술해 한 쪽 다리마저 저는 나이가 돼서야 할머니에게 비로소 시간이 조금 생겼다. 마침 읍내 노인 회관에 한글학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는 평생 가슴에 품어왔던 한을 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고 등록했다.

"시가 뭐예요?" 할머니는 처음 그렇게 선생님께 물었다.
 "시가 뭐예요?" 할머니는 처음 그렇게 선생님께 물었다.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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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사십여 분을 가야 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이 있을 때는 만사를 젖혀두고 학교로 향했다. 그렇게 한글 배우기를 3년여, 비로소  '가가거겨'를 알게 됐다. 길가 간판을 읽고 우편물의 글씨를 더듬더듬 읽는 기쁨에 빠져 있을 무렵,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렸다. 학생이 없어 한글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까막눈을 벗고 공부하는 재미에 빠졌는데... 포기할 수 없었던 할머니는 한글반을 다시 개설해 달라고 계속 요청했다.

한글을 배우려는 할머니의 의지가 하도 강력하자 노인 복지 회관에서 할머니에게 시 창작반이 있으니 들어가서 한글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곳에서 평생의 은인인 시 창작반 교사 증재록 선생님을 만난다. 증 선생님을 만나 한충자 할머니가 제일 처음 한 말은 이것이었다 .

"시가 뭐예요?"

할머니의 물음에 대한 증재록 선생님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어머니 마음 속에 있는 하고 싶은 이야기, 그것을 글로 쓰세요. 하고 싶은 얘기를 그대로 꺼내 쓰면 그게 시예요."

시인인 증재록 선생님은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고, 시가 뭔지도 모르는 할머니의 가슴 깊숙이 맑은 우물처럼 고여 있는 시어들을 발견하고 지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할머니는 한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들어간 시 창작반에서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둔 얘기들을 쓰기 시작했다.

<무식한 시인>

한충자

시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야
배운 사람이 시를 써 읊는 거지
가이 갸 뒷다리도 모르는 게
백지장 하나
연필 하나 들고
나서는 게 가소롭다

배우지 못한 게 죄구나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아무리 열심히 써도
나중엔
배운 사람 못한
시, 시를 쓴단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 시를 쓰기 시작한 자칭 '무식한' 시인. 한글을 몰랐던 부끄러움, 밥 한 그릇 배불리 먹을 수 없었던 가난, 60년을 모셔야 했던 시어머니, 고단했던 삶의 결이 맑은 시어가 돼 길어 올려졌다. 할머니에게 시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할머니는 여전히 깨, 땅콩, 고추 농사를 짓는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할머니는 여전히 깨, 땅콩, 고추 농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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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깨, 땅콩, 고추 농사를 짓는 할머니는 시를 쓸 시간이 마땅치 않다. 그렇게 바쁜 할머니는 새벽에 시를 쓴다. 할머니는 오늘도 새벽 4시면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와 거실의 앉은뱅이책상을 펴고 앉는다.

쪼글쪼글 주름살 가득한 얼굴 위에 돋보기까지 끼고, 생각에 잠긴다. 생각 속에서 할머니 인생의 한 단면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히 살아나면 연필을 쥔 할머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곤 차마 말로 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삶이 누에고치가 실을 뽑듯 술술 흘러나와 원고지 위에서 시가 된다.

할머니의 고향은 충북 음성군 하루동골, 수백 년 세월을 이긴 덩치 큰 버드나무가 장승처럼 마을을 지키고 서 있는 시골 마을이다.
 할머니의 고향은 충북 음성군 하루동골, 수백 년 세월을 이긴 덩치 큰 버드나무가 장승처럼 마을을 지키고 서 있는 시골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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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무식한 시인, #까막눈, #한충자, #내 인생길, #할머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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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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