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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의 긴장감. '아이고~ 의미 없다~.'
 면접의 긴장감. '아이고~ 의미 없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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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수많은 선배들이 부러워하는 그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는 못해볼, 기억에 남을 소중한 경험들을 하나하나 쌓아 나가시길 바랍니다…여러분의 황금기가 시작될 2010년, 기대하겠습니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낡은 글 한 편을 발견했다. 대학교 2학년이던 2010년, 신입생 후배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자료집에 나름 1년 선배의 조언이랍시고 써낸 글이었다. 정말이지 뭘 믿고, 어쩌자고 저런 헛소리를 해댔을까. 그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팍팍한 의무교육과 제한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역동적인 삶을 꿈꿀 수 있는 기회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위와 같은 말을 잘도 '나불거릴' 수 있었다.

정확히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채웠으면서도 단박에 취업하지 못해 결국 졸업을 유예했다. 취업준비생들이 모여 시사상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스터디는 어느덧 일상의 전부가 됐다. 재학생들이 차고 넘치는 교내 시설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이제는 돈을 내고 번화가의 대형 카페와 스터디룸을 전전해야만 한다. 등록금처럼 집으로 고지서가 날아오는 것도 아닌, 그런 돈까지 차마 집에 손을 벌릴 수는 없어 남는 시간에는 갖가지 아르바이트에 뛰어들곤 한다.

그렇게 간신히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내 앞에는 그동안 빌린 수백만 원의 학자금 대출이 벽처럼 서 있다. 마치 나를 내려다보며 '설마 지금 저축이나 인생설계 따위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라고 되묻는 것 같다. 취업 걱정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치는데, 돈 걱정까지 하려니 고민과 걱정의 양으로만 따지면 재벌감이겠다. 감당해내야만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고 너무나도 크다.

취업 걱정에 돈 걱정에... 걱정만 '재벌감'

'이런 지경에 연애는 무슨….' 단 한마디로 상황이 정리된다. 외롭지 않느냐고, 연애 안 하느냐고 캐묻던 주변에서도 이 말 하나면 '에이, 그래도…'만을 반복하면서 할 말을 잃어 버리고 만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성질의 연애를 하는 것조차 허덕거리는데 결혼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있을 리 만무하며, 더 나아가 출산과 내 집 마련에 대한 의지가 있을 리 만무하다. 입으로는 '나중에 언젠가는, 하나씩 자연스럽게 하게 되겠지'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마치 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상향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들이 언젠가는 다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도통 서지 않는다.

주변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인에게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점차 잦아들었고, 드문드문 오는 연락에나 겨우 답신을 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남 챙길 여력이 어디 있느냐'는, 어쩌면 이기적이기까지 한 심리가 반영된 셈이다.

모든 것의 초점은 오로지 눈앞에 닥친 관문에만 맞춰진다. 교내 동아리나 학회를 알아보면서도 이것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써낼 수 있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공채나 봉급 따위의 음울한 이야기들만이 오간다. 그렇게 취업이라는 현실은 누구나 갖게 되는 오만 가지 감정들을 억눌러 버리고, 단지 내가 필요할 때만 사람을 찾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오포세대'라는 용어를 접했을 때, 속으로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나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를 포기하는 '오포세대'로 변해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포세대'는 오늘날 힘겨운 시절을 보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그 싹을 점점 키워나가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차마 포기할 수 없어 손에 꽉 쥐어보려 해도, 이 사회가 그것을 불가능하게끔 하고 있어서다.

빚으로 시작해 빚으로 끝나는 청년들의 삶

2014년 전국 4년제 일반대 174곳의 1인당 연간 평균등록금은 666만7000원. 2015년 최저임금 5580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치면 1195시간, 하루 8시간씩 150일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2014년 전국 4년제 일반대 174곳의 1인당 연간 평균등록금은 666만7000원. 2015년 최저임금 5580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치면 1195시간, 하루 8시간씩 150일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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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고까지 표현되면서도 젊은이들은 쉽사리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만 15세부터 29세에 이르는 청년 실업자는 39만5000명에 달했다. 아르바이트생이나 졸업유예자 등의 '실질적 실업자'까지 포함한다면 청년 체감실업률은 공식 실업률 9.2%의 두 배를 넘는 21.8%에 달한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실업자인 셈이다.

구직자는 끝을 모르고 불어나지만, 일자리 수는 결코 그 증가세에 맞춰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들쑥날쑥하기 짝이 없는 임금 격차는 청년들로 하여금 더욱 양질의 일자리만을 바라보게 한다.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가 다른 모든 것들을 밀어내고 가장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설령 바늘구멍을 뚫고 운 좋게 취업을 한다 해도, 가장 먼저 환영해주는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학자금 대출이다. 대다수가 저축을 하기는커녕 빚더미에 올라앉는 이유다. 청년들의 삶은 빚으로 시작해 빚으로 끝맺는다.

임금은 쥐꼬리만큼이라도 도무지 올라갈 생각을 안 하는데, 생활물가는 작고 작은 요인에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전셋값은 폭등을 거듭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좀처럼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학번 위의 선배는 취업 후 빚을 내 코딱지만한 원룸을 구했지만, 월급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빚 갚는 것은 둘째 치고 계약을 갱신했을 때 올려줘야 할 대출금에도 전전긍긍한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젊은이들은 연애와 결혼 및 출산,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라는 인생의 찬란한 순간들을 하나둘씩 포기해 버리고 만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봐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음식 레시피만큼이나 간단한 '오포세대 제조과정'이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 해결할 수 있나요?

자신은 이미 다섯 가지를 포기해 버리고도 모자라 저축과 희망, 꿈까지 차례로 포기하는 '육·칠·팔포세대'라고 자조하는 이들까지 있음에도 '오포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기성세대는 여전히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간 '청년'이 들어간 정부의 정책이나 사업은 부지기수였지만 피부로 와닿을 만한 개선효과는 거의 없었다. 속이 썩어가는 것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거시적이고 가시적인 지표의 개선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오포세대'를 빚어내는 구조와 의식은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눈이 높은 젊은이들의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또 일각에서는 '차라리 다 포기해 버리고 지금 상황에 감사하고 즐기고나 살라'며 젊은이들에게 '달관세대'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분명 '바둑판 위에서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던 <미생>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는데, 현실은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지 못한 바둑돌들이 부지기수다.

젊음이란 어디에서 그 무엇을 하더라도, 혹은 하지 않더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다. 그러나 오늘 '오포세대'의 젊음에서는 도통 밝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해내겠다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는 자꾸만 현실의 한계에 부닥치고 만다. 얼마나 더 포기해야 할까, 저 다섯 가지가 지금을 살아나가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렇게 과분한 것들일까, 자꾸만 의문이 든다.

5년 전에 '나불거린' 저 글이, 아직은 허무맹랑한 헛소리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우리는 아직 수많은 선배들이 부러워하는 그 시절을 살고 있다고, 우리는 지금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아직은 믿고 싶다.


태그:#오포세대, #청년,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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