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땅콩회항, 밀양 송전탑, 쌍용차 해고, 제주 해군기지 등 한반도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작년에 일어난 사건도 있고, 몇 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사건도 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시작된 이 사건들은, 시간이 갈수록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모르게 된다.
언론은 그 사건 자체, 대형 사건 자체에 관심이 있을 뿐 더 이상 깊이 들어가 자세한 내막을 들추려 하지 않는다. 그런 언론이 있다 해도, 다른 언론들이 벌떼 같이 달려 들어 장막을 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사람들 머리에서 지워지고 당사자들만 남아 힘겨운 싸움을 계속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이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이들을 도와주고 함께 하는 이들 또한 멈추지 않는다. 이는 곧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굴종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거대한 권력의 힘이 압박해 앞길을 막아도, 그보다 더한 조롱과 회유가 흔들리게 해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자유로워 보인다. 시대의 권력 앞에, 물질적 권력 앞에, 보이지 않는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까.
500년 전 프랑스의 한 청년 법학도가 낸 목소리 또한 흔들리지 않고 자유를 노래한다. 그 이름도 유명한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생각정원). 그는 이 얇디 얇은 책을 통해 '복종'과 '자유'를 말한다. 사람들은 왜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자유를 갈망하지 못하는가? 권력자들은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의 맛을 잃어버리게 하고, 그들 스스로 복종의 길을 택하게 만드는가? 자발적 복종을 끝맺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자유를 갈망하지 못하는가?"멍에를 지고 태어나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전 세대가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본문 중에서)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자유를 갈망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답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환경이었기에 자연스레 그렇게 밖에 살 수 없게 되었고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게 되었으며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자유를 망각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지금보다 옛날이 무조건 더 못 살았을 것 같고, 더 비참했을 것 같으며, 더 멍청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지금에 만족하게 되고 내가 사는 이 환경이 하등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옛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활동하던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지혜와 지식이 빛을 발할 수 있고,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지금보다 더 민주주의적이며, 팍스 로마나 시절의 중산층이 누렸던 부는 지금의 중산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돈의 노예로 길들여지는 지금의 우리는, 돈에, 권력에 아부하는 지금의 우리는 과연 옛날 사람들보다 나을 게 있을까? 우린 전 세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관심이 없고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다. 자유롭지 않는 그 무엇을 자유라 부르고, 복종을 복종이라 부르지 않은 채로.
"대부분의 전제군주들이 물밑에서 백성들을 어리석고 나약하게 만들기 위한 술수를 모색했고, 다양한 방법들을 실행으로 옮겼다."(본문 중에서)권력자들은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의 맛을 잃어버리게 만들까? 그들이 쓰는 방법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주 줄기차게 써먹고 있다. 향락과 소비의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뒤로는 지식인의 씨를 말리려 하는 것이다.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이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과거 전두환 군부 독재 정권이 시행한 '3S 정책'이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성(Sex) 또는 속도(Speed)로 국민들의 시선을 완전히 향락과 소비의 문화로 돌려버리게 하려는 '우민화 정책'. 이 정책은 아주 잘 먹혀 들어간 듯하고, 지금 여기에 하나라도 걸쳐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자발적 복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일은?"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그것을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된다."(본문 중에서)그렇다면 이 자발적 복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자각'과 '용기'를 말한다. 저자는 거기에 어떤 크나큰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자유를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유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자유롭게 된 이후의 설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 무엇보다 자유의 맛보다 복종의 맛을 더 좋아하기 쉽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많은 사건들의 당사자들은 복종의 맛보다 자유의 맛을 더 좋아하고, 음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하며 그들 덕분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유의 맛을 오롯이 음미하는 것이 물리적·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다는 건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국가, 기업, 가족, 조직, 모임 등의 우산 안에 들어 있을 때 알게 모르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지 않은가? 그 권력 또는 권력 아닌 권력의 호수 안에서 헤엄치면 안전하지 않는가 말이다. 먼 바다 한 가운데에서 생존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게 자유의 필연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런 자유의 맛을 음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500년 전에도, 500년 후에도.
이 책을 지금 시점에 출간하는 의미는 너무나 당연하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자유에서 복종으로, 독재로 역행하고 있다는 것.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합종연횡과 유착으로 그 어디에도 손이 뻗어 있다는 것. 그럼 한 번 일독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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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족 복종>, (엔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목수정 옮김, 생각정원 펴냄, 156쪽, 9000원, 201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