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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레이 모로'텃밭 11살 생일 잔치에 모인 사람들
 세비야 '레이 모로'텃밭 11살 생일 잔치에 모인 사람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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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토요일(14일) 도심 한가운데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스페인 세비야 도심 가운데 자리잡은 '레이 모로 텃밭'의 11살 생일 잔치 소리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곳은 동네 주민 몇몇이 뜻을 모아 작은 텃밭을 만들고 동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녹지를 만들자는 제안에 따라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1년의 시간을 거쳐 텃밭이면서, 문화공간이고, 아이들의 놀이터인 이곳이 자리를 잡았다.

이 텃밭을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돌보고, 농사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 지킴이는 이곳 사람이 아닌 스페인에 온 지 30년, 세비야에 산 지는 15년이 되는 이탈리아인 루시아노 푸르카스(남·65)이다.

오래전부터 땅과 같은 노동을 하고 싶었던 루시아노.
 오래전부터 땅과 같은 노동을 하고 싶었던 루시아노.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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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생일 잔치가 끝나고 조금 한가해진 월요일 아침(16일), 루시아노를 텃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근처 초등학교에 농사교육을 하러 간 루시아노가 좀 늦어져 기다리고 있는데 텃밭에선 한참 '빵 만들기'를 하고 있다.

연극배우이면서 매주 월요일에 텃밭 '빵 만드는 날'을 책임지고 있는 코세로 아저씨(남·60)가 멀뚱멀뚱 방황하는 나를 부르더니, 빵 만드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한다.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모양을 내는 것도 내겐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이래저래 어설프게 따라하며 만든 빵을 자연 화덕에 넣을 때쯤 루시아노가 자전거를 타고 텃밭으로 들어왔다.

오래 전부터 시작된 삶의 프로젝트

루시아노는 30년 전 '기초 예술 갤러리'라는 이름의 '지속 가능한 문화프로젝트'를 하러 스페인 남쪽 타리파로 왔다. 이 프로젝트는 마음이 맞는 예술가들과 거대한 예술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대안적인 집을 만들고, 공동생활의 룰을 만들고, 다양한 실험적 프로그램들을 나누며 15년을 그렇게 타리파에서 지냈다.

그의 고향은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이다. 농부였던 부모님 덕에 항상 땅과 가까이 지낸 그는 언제나 땅의 노동에 감동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저 땅이 잘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 그러면 땅은 알아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내어 주었지. 변화하지 않지만, 언제나 무언가가 나누어지는 순환의 과정이 참 좋았고, 나도 땅처럼 그런 순환되는 노동을 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프로젝트는 10여 년이 지나면서 조금 느슨해지고 공동체 안의 사람들도 각자의 개별 프로젝트를 찾아 다시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세비야로 건너와 새로운 터를 잡았다.

세비야에서 시작한 도시농업

삶의 근거지가 언제나 작은 마을이고, 공동체였던 그에게 세비야는 첫 도시 생활이었다. 임대한 작은 집에서 도시농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옥상에 텃밭을 만들고, 집안과 중앙 뜰을 이용해 작은 농사짓기를 시도했다.

"어느 날, 집 창문으로 내려다 보는데 쓰레기로 가득한 공터가 보이는 거야. 그래서 그냥 매일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지."

그가 그렇게 매일 조금씩 치우던 동네 앞 공터는 지금 일 주일에 한 번 초등학교 학생들과 가꾸는 '산타 마리아 텃밭'이 되었다. 그리고 5년 전부터 '레이 모로 텃밭'과 인연을 맺었다.

"나는 도시에 살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작은 3개의 마을에서 사는 것과 같아. 우리집 텃밭, 학교 텃밭 그리고 이 레이 모로까지, 작은 땅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거든."

텃밭은 도심 속 그의 작은 마을과 같다.
 텃밭은 도심 속 그의 작은 마을과 같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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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꿈꾸는 지속가능한 꿈

"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 요즘은 모두 땅을 소유하고, 땅이 더 이상 땅 자체의 노동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지."

그는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과 농사를 짓는 일이 가장 즐겁다고 한다.

"아이들은 유연해. 빨리 배우고, 느끼고, 감각적으로 알지. 오히려 부모들은 흙을 만지고 벌레를 만지는 일을 기피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 이 아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땅 본래의 의미를 알아갈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함께 온 부모들이 오히려 다시 배울 수 있다면 더 의미가 있겠지."

루시아노는 항상 텃밭 식구들의 좋은 조언자이다.
 루시아노는 항상 텃밭 식구들의 좋은 조언자이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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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가 꿈꾸는 것은 지속적인 도시농부의 네트워크다. 지금은 세비야 지역에서만 조금씩 공유하고 있지만, 나아가서는 세계 곳곳의 도시농부들 간의 네트워크를 가지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단다.

"세계 곳곳의 도시농부들이 각자 공간을 상호 교환하여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기본적인 삶의 방식으로 다양한 공간 속에서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동안 텃밭에 온 사람들이 이것저것 루시아노에게 조언을 구했다. 직접 일어나 작물의 상태를 보기도 하고, 화덕을 손수 챙기기도했다. 그가 그동안 쌓아온 여러 정보들을 아낌없이 순간순간 내어 주었다.

'사는 것은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모토가 지금 그의 삶에 그리고 이후 그의 꿈속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텃밭 화덕에서 맛있게 구워져 나온 빵
 텃밭 화덕에서 맛있게 구워져 나온 빵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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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칠 무렵, 화덕에서는 맛있는 빵 냄새가 솔솔 났다. 어설프게 빵 몇 개를 반죽했다는 이유로 맛있는 친환경빵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30년 전, 타리파 공동체에서부터 시작했다는 '함께 빵 만들어 나누어 먹는 날'은 이렇게 공간을 옮겨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따뜻한 빵의 온기만으로도 배부른 기분 좋은 기운. 그것이 루시아노가 오랫동안 지속하고 싶은 삶일 것이다.


태그:#세비야, #이방인 인터뷰, #도시농부 루시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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