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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인 아저씨! 아니, 형님으로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한창 '윤서인의 개념웹툰 朝(조) 이라이드'를 연재하고 계신 <조선일보>의 간단한 작가 프로필에 '자신의 생각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걸 즐기는 만화쟁이'라고 나오시더군요. 생각만큼 많지 않은 나이 차도 그렇고, 또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 블로그와 웹툰 등으로 소통도 많이 하시려는 것을 보니, 차라리 형님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하실 것 같아 이렇게 씁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여섯이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반이지요. 학교에서 요구하는 졸업조건도 거의 채웠습니다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해 졸업을 일단 미뤘습니다. 저와 같은 청년들은 '그나마 좋게' 말하면 취업준비생, 그냥 나쁘게 말하면 백수라고 불리곤 합니다.

그 어디에도 적을 둘 수 없는 과도기를 보내면서 생활비를 마련할 마땅할 방법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저렴한 것만을 찾게 됩니다. 입는 것부터 노는 것, 먹는 것까지 전부 다 말이죠. 강남 아파트, 고급 외제차, 맹세코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습니다.

빅맥보다 싼 거 먹고, 선동하지 말라는 그의 선동

윤서인 작가의 <朝이라이드 40화 : 최저임금의 한정> 중에서
 윤서인 작가의 <朝이라이드 40화 : 최저임금의 한정> 중에서
ⓒ 윤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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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로 <'朝이라이드' 제 40화 : 최저임금의 함정>편을 보았습니다. 시급 5580원으로 1시간 일하면 햄버거 세트도 하나 못 사먹는다고들 하죠. 그런데 형님은 그것보다 저렴한 식사도 많이 있는데 굳이 햄버거 세트를 먹어야겠냐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없는 처지에 주제 넘는 사치는 부리지 말고, 최저임금 적다고 탓할 시간에 노력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실제로 형님께서 맥도날드의 '빅맥 세트'보다 가성비가 좋다고 평가하신 '밥 버거'도 맛있게 먹습니다. 저렴하면 장땡이지,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닙니다.

빅맥 세트를 괜히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1986년부터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빅맥 지수'를 발표해 왔습니다. 세계적 패스트푸드인 맥도날드의 빅맥이 어느 곳에서나 표준화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 이를 미국 달러로 환산해 각 국가의 상대적 물가 수준과 통화 가치를 비교하는 지표지요.

우리나라는 올해 1월 기준으로 세계 25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계 경제력 10위권의 OECD 회원국이라는 지위에 비하면 낮은 수준입니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물가는 높고, 임금은 낮아 실질적인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최저임금으로 빅맥을 못 사먹는다 현실은, 고작 '돈 없으면 더 저렴한 것 사먹으라'고 형님이 일축할 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현 물가 대비 임금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朝이라이드 40화 : 최저임금의 함정>을 보고 누리꾼들에게 비판 받자, 윤서인이 트위터에 남긴 답변
 <朝이라이드 40화 : 최저임금의 함정>을 보고 누리꾼들에게 비판 받자, 윤서인이 트위터에 남긴 답변
ⓒ 윤서인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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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생활비라도 제 손으로 벌어보겠다고 다양한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놈의 돈이 뭐라고'라며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인턴부터 막노동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에 달려들었습니다. 몸을 건사하기도 힘겨운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온종일 10시간이 넘도록 밖에서 몸을 축내고 돌아오면 받을 수 있는 돈은 그나마 많이 쳐줘야 7만~8만 원 남짓, 아무리 형님께서 말씀하신 밥 버거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 취업 준비를 한다 해도 보름을 채 못 버티는 수준입니다.

노력 많이 했습니다. 잠잘 시간에도 신문 읽고 글 쓰고, 시험 보고 자격증 따고 공모전 나가고, 그러면서 틈틈이 시간 날 때는 아르바이트도 나갑니다. 그런데 기업에서는 못 뽑아주겠다고 합니다. 실무와는 별 관련 없는 인문계라면서요. 물론 그것이 절대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형님, '인구론'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인문계생의 90%가 논다'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아, 눈을 낮추라고요?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등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임금은 지난해 대기업의 56.7%에 그쳤다고 합니다. 같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 임금으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겁니다. 왜 기업의 규모에 따라 한 사람의 생활수준이 반토막 나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노력하라'는 윤서인, 노력해도 안 되는 사회에 대해 침묵하다
윤서인의 <朝이라이드 42화 : 인간의 의지를 믿는다> 중에서
 윤서인의 <朝이라이드 42화 : 인간의 의지를 믿는다> 중에서
ⓒ 윤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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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이라이드 제 42화 : 인간의 의지를 믿는다> 편에서는 '100만 원을 주는 사람에겐 150만 원어치 일을 해서 미안하게 만들어 버리고, 200만 원 주는 사람에겐 300만 원어치 일을 해서 미안하게 만들어버리라'고 하셨죠. 그것이 스스로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면서요.

그런데 형님, 실제로 해보니 전혀 안 그렇던데요? 비록 내세울 만한 건 아니지만 '비쩍 마른 줄만 알았더니, 그래도 일 좀 한다'는 소리도 나름 여기저기서 들어봤습니다. 정말 딴청 안 피우고, 묵묵히 열심히 일했거든요. 그랬더니 하나도 미안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간에도, 심지어는 주말에까지 나와 일했던 만큼의 수당도 제대로 안 챙겨줬습니다.

직접 따지니까 못이기는 척 그제야 줍디다. 정말 실수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요. 결국 형님 말대로 죽어라고 일만 했는데도, 제 가치는 쥐꼬리만큼도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는 것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형님 말씀처럼 '벼랑 끝 러닝머신 같은 인생'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데 왜 저의 가치는 도통 오를 생각을 않는지 모르겠어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이른바 '금수저·은수저'들은 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부와 명예가 산더미처럼 쌓이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개인의 노력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요소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왜 동등한 기회를 가진 사람들의 출발선은 이렇게 차이가 나야 하는지요? '나라는 내가 다른 거 신경 쓰지 않고 뛸 수 있게만 해주면 그만', '생존권이 보장돼 있으면 누가 이렇게 열심히 뛸까'라고도 하셨죠.

형님, 그런데 바로 이 나라가 그 '다른 거 신경 쓰지 않고' 제대로 뛸 수도 없게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요?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는 이들이 아직도 수두룩한데 어떻게 해야 하지요? 최저시급 5580원, 월 116만6220원으로 학비 내고 식비 내고 세금 내고도 나머지 할 일까지 다 하라는데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래서 우리가 쥐꼬리만큼이라도 더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사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생활만큼이라도, 아니면 죽어라 일한 만큼만이라도 가능하게요. 이게 철이 없는 청년들의 칭얼거림인가요? 우리가 언제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힙합이나 하겠다고 했나요?

노력과 의지에 대한 윤서인씨의 트위터
 노력과 의지에 대한 윤서인씨의 트위터
ⓒ 윤서인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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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요구하는 의무까지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아무리 뛰어도, 노력해도 안 되니까 목소리를 내는 겁니다. 이런 것에 만족하고 인생 기대볼 생각일랑 추호도 없습니다. 그저 단순히 저기 저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주니까 우리도 더 많이 달라고 생떼나 쓰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리고 우리는, 형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능력은 지지리도 없으면서 공짜 밥이나 받고 싶은 도둑" 따위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얼마든지 다른 사상을 따를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 차이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은 있어야합니다. 제가 이런 장문의 글을 남긴다고 형님께서 기분 나빠하시거나, 화를 내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대강 지켜본 형님께서는 이런 식의 관심조차도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낙천적인 면모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도리어 이 글이 형님께는 더 열심히 웹툰을 그릴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차마 형님더러 만화를 그만 그리라거나, 아니면 제발 조용히 좀 계시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엄연히 사회에는 표현의 자유도 있고,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잖습니까. 또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형님께서 조금 더 현실을 직시하고 생각을 바꾸실 가능성도 아예 놓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형님처럼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원색적인 비난만 가한다면, 저의 모습도 결국 형님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형님의 행태'가 대체 뭐냐고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우리네 사회를 그저 강자와 열등한 약자의 대결로만 갈라놓고, 약자의 목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려 하는 겁니다.


태그:#윤서인, #조이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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