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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이 있는 우체통입니다.
▲ 달팽이 느림의 미학이 있는 우체통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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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자전거타고 오동도에 왔다. 재미있다. 날씨도 정말 좋다. 아빠가 이렇게 재미있게 놀아준 것은 처음인 것 같이 느껴진다. 정말 재미있고 신났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이렇게 놀고 싶다.'

큰아들이 쓴 편지 내용이다. 단문으로 썼다. 문장이 간결하고 깔끔하다. 일부 내용은 확실히 왜곡됐다. 아빠는 자주 재밌게(?) 놀아준다. 이 편지, 1년 뒤에 받는다. 지난 4일, 오동도에서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해 뒤 아들과 나는 이 편지를 받아 보며 또 한 번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들과 신나게 놀았던 그날을 기억하며 한려해상국립공원 오동도를 두 배로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4월의 오동도 숲길을 걷지 않은 자 동백꽃에 대해 논하지 말라."

내가 가장 먼저 하고픈 말이다. 오동도는 동백섬이다. 이름으로 따지면 오동나무가 많았던 섬이지만 지금은 단연 동백나무가 많다.

동백꽃은 세 번 핀다. 나무에서 한 번 피고 땅에 떨어져 다시 핀다. 그리고 꽃을 바라본 내 마음에 마지막으로 핀다. 4일 오전, 큰애와 함께 붉은 꽃 뚝뚝 떨어진 숲길을 걸었다. 사방천지 붉은 동백꽃뿐이다. 동백꽃 보며 야릇한 느낌을 받는다. 이 길 걷지 않은 자는 동백꽃에 대해 논하지 말자.

동백꽃은 세번 핀다. 나무에서 한번, 땅에서 또 한번 그리고 내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핀다.
▲ 붉은 꽃 동백꽃은 세번 핀다. 나무에서 한번, 땅에서 또 한번 그리고 내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핀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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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 길을 '하늘로 향하는 계단'이라 말했다.
▲ 꽃길 누군가는 이 길을 '하늘로 향하는 계단'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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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모두 붉은색입니다.
▲ 동백꽃 하늘과 땅이 모두 붉은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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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은 노래 감상하는 기분... 특별한 선물 받은 느낌

오동도에서 본 동백꽃은 아름답기보다 처연하다. 아들은 아빠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그저 자전거로 이 길을 달리는 기분이 좋을 뿐이다. 붉은 길을 한참 걷고 있는데 공원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노래가 흐른다. 공원에서 흔하게 듣는 음악이 아니다. 살 냄새나는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원하시는 노래 신청하시면 선곡해서 틀어드립니다"라는 조용한 멘트가 흐른다. 참 좋은 생각이다. 함께 온 이와 듣고 싶은 노래를 감상하는 것, 특별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아쉽지만 이 특별한 선물, 지금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만 가능하다. 음악 소개는 'DJ 박종일'씨가 맡고 있다.

평일 오후 여수시 공보담당관실(전화 061-659-3044)로 전화하면 행운을 잡을 수 있다. 숲길을 지나니 언덕 정상에 등대가 서 있었다. 그 아래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이름은 느림보 우체통 '달팽이'다. 우체통 옆에 만든 이유가 적혀있는데 그대로 옮겨본다.

'빠름의 문화에 지쳐버린 당신에게 느림이 주는 작은 여유가 삶의 활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년에 한번 발송하는 느림보 우체동 달팽이를 마련했습니다. 등대에서 보내는 느린 편지와 엽서가 당신의 작은 행복과 환한 추억이 되길 바랍니다'

부끄러워 하는 큰애를 꼬셔 편지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 1년뒤 부끄러워 하는 큰애를 꼬셔 편지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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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달팽이 우체통에 엽서를 넣습니다.
▲ 기대 큰애가 달팽이 우체통에 엽서를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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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도시 두바이는 서쪽으로 가면 나옵니다.
▲ 두바이 사막의 도시 두바이는 서쪽으로 가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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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등대 앞에서 사막의 도시와 겨울나라를 상상한다

빨간 우체통을 바라보며 아들과 나는 편지를 썼다. 아들 편지는 서두에 공개했으니 내 글은 일부만 공개한다.

'화창한 봄날, 아들과 함께 붉은 꽃 떨어진 오동도 숲길을 걸었다. (중략) 아이가 자라서도 아빠와 함께 이 길을 계속 걸었으면 좋겠는데...'

세상일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년에도 큰애는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며 기뻐할까? 장담할 수 없다. 편지를 달팽이 몸속에 집어넣고 등대 전망대에 오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봄바다, 평화롭다. 등대 앞마당에 재밌는 문양이 있다.

네 방향을 가리키는 표시다. 그 위에 먼 이국땅까지 거리를 적어 놓았다. 동쪽으로 가면 일본 오사카가 587킬로미터에 있다. 서쪽으로는 사막의 도시 두바이가 있고 남쪽으로 가면 호주 시드니가 나온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겨울나라 블라디보스토크가 1001킬로미터에 있다.

시누대를 스쳐 지나는 봄바람이 정겹습니다.
▲ 시누대 길 시누대를 스쳐 지나는 봄바람이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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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옵니다.
▲ 전설 오동도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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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소리 들리는 오동도 여유 있게 둘러보자

그곳에서 잠시 눈감고 이국의 도시를 상상해 본다. 다시 길을 걷는다. 이제 시누대 숲길이다. 시누대 사이를 누비는 바람소리가 시원하다. 봄바람이 꽃잎을 흩날리고 시누대 사이를 핥고 지나간다. 아들은 이미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나는 파도소리 따라 숲길을 걷는다.

오동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2시간 남짓 걸렸다. 누군가는 시간에 쫓겨 30분 만에 주파하는 이도 있다. 안타깝지만 그들은 오동도를 오롯이 보지 못한 게다. 오동도는 여유 있게 둘러봐야 한다. 그래야 새소리와 파도소리 그리고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행여 오동도에 오거든 생선회 생각만 하지 마시라. 여수에서 먹을거리는 덤이라 생각하면 정답이다. 여수에는 눈요깃거리가 지천에 있으니 하는 말이다. 집에 돌아온 뒤 아들은 편지가 언제 도착하느냐며 매일 나에게 묻고 있다. 1년 뒤에 받는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해도 쉬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하다. 한동안 큰애 질문에 귀찮은 일이 벌어질 듯하다.


태그:#오동도, #동백꽃, #달팽이 우체통, #등대, #시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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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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