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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6일)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의 체험학습이 있었습니다. 제대로된 명칭은 '주제별 체험학습'. 이름이 거창하긴 하지만 제가 보긴엔 우리때의 '소풍' 딱 그것입니다.  몇 십 년 전 엄마 아빠들도 그랬듯이 전날 설렘에 잠이 안 와 뒤척이던 녀석은 심지어 엄마가 늦게 일어나 김밥을 못싸면 어쩌지라는 현실적인 고민까지 하더니 아침에는 깨우지 않았는데도 꼭두새벽 일어나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더니 또 베란다 창문에 바싹 달라붙어 밖을 내다보며 학교가는 아이들이 있나 없나를 살폈습니다.

9시까지 학교 교실에 오면 된다는데도 8시 30분부터 김밥과 간식, 음료수로 꽉찬 가방을 메고 베란다에 붙어 있던 아이는 8시 40분쯤되자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듯 '저기 우리반 애같은데, 엄마 나 이제 가요'라는 큰 인사와 함께 소풍길을 떠났습니다.

아침부터 흐린 하늘에 아이들의 단체 움직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까지 더해져 아이의 흥분과는 달리 걱정스러운 마음이 슬슬 들기 시작하는데, 점심이 조금 지나고부터는 어두워진 하늘에서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를 치며 비를 뿌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시간이 2시쯤부터는 제법 빗방울도 굵어졌습니다. 부랴부랴 우산을 들고 차가 도착하는 곳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은 이미 차에서 내려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우산을 챙겨간 몇몇 아이들. 아이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산을 펴 드는 순발력이 없어 비를 맞긴했지만 그 자리에서 우산을 펴 들고 옆에 있는 친구들을 당기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우산안에 둘, 셋, 그리고 많게는 네개의 작은 머리들이 쏙쏙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 젖어가는 서로의 몸을 보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웃어재끼는 바람에 더더욱 젖어드는 옷과 가방. 그 모습이 너무도 이뻐서 잠시 쳐다보다 다가갔습니다.

"얘들아, 이거 우산 나눠쓰자. 그리고 그만들 좀 웃자. 옷 다 젖는다."

그러자 한 아이가, "이 비는 꽃비라서 괜찮아요. 꽃잎이랑 같이 떨어지는 꽃비"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또다시 박장대소 뒤로 넘어가게 웃습니다. 그런데 웃는 아이들 뒤를 따라가던 전 그 '꽃비'라는 말이 너무도 슬프게만 들렸습니다. 오늘 무사히 소풍을 다녀온 아이들. 어쩌면 그저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인데도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조마조마 걱정하고. 그렇게 만든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산을 씌워 집까지 오는 짧은 길은 평소보다 두세배나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젖은 머리와 옷도 말릴 겸 잠시 집에서 놀던 아이들, 뭐가 그리 좋은지 꺄르르 꺄르륵 쉴 새 없이 넘어갑니다. 그동안 담임선생님의 '잘 다녀왔다'는 문자와 함께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아이들 수만큼 다양한 포즈입니다.
▲ 초등학교 1학년 첫소풍 아이들 수만큼 다양한 포즈입니다.
ⓒ dong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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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리도 제각기 다른 곳을 쳐다보며 다른 표정에 다른 몸짓을 하고 있을까 싶은 초등1학년 첫 체험학습 사진. 달라서 예쁘고 딴짓을 하고 있어서 더 예쁩니다. 그리고 궂은 날씨였는데도 아무런 탈없이 잘 다녀와줘서 더욱 더 예쁘고 고마운 녀석들입니다.

한참을 놀던 아이들이 스케치북에 이것 저것을 그려놓았습니다. 그 중 제 맘에 쏙 드는 그림을 고르자 아이들이 오려서 제 책상위에 붙여주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기발합니다.
▲ 똥머리한 슈퍼맨 아이들의 상상력은 기발합니다.
ⓒ dong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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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머리한 슈퍼맨입니다. 아줌마 슈퍼맨을 그리려던 건지, 아니면 그저 슈퍼맨을 그린 것인데 여자아이들이다보니 머리도 똥머리로 편하게 올려서 그린 건지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볼 수록 재미있습니다.

오늘 아침, 매일 학교에 가는 등교시간마저 놀이인 둘째녀석은 집을 나서면 친구들이 오는지 안 오는지를 뒤돌아 보느라 앞으로 나가질 못합니다. 베란다 창으로 내다보며 잘 가는지 지켜보는데, 뒤돌아보던 녀석 넘어지기까지 합니다. 속으로 '어이쿠' 하는 사이 그 옆에서 멀쩡히 걷던 친구가 함께 넘어집니다. '쟤들 또 뭐하니?' 생각하는데, 제대로 걷던 한 친구가 깔깔거리면 두녀석을 일으켜 세웁니다. 보는 사람도 절로 웃음이 나는 등굣길입니다.

제각기 다른 얼굴의 아이들. 정말 다양한 색깔과 향기를 냅니다. 저마다의 색깔로 개성있는 행동을 하는 이 아이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곁에 있는 친구들을 배려하고 있음에 놀랍니다. 나만 안 넘어지면 된다는 생각이 아닌, 자연스럽게 '함께 넘어져 주는' 이 아이들을 안심하고 편안하게 키울 수 있는 우리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체험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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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중한 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며 멋지게 늙어가기를 꿈꾸는 직장인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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