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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장애인취업박람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만난 구직자 김아무개(30대)씨는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취업박람회 방문인 처음"이라는 그는 "직접 기업 담당자를 만날 수 있는 이런 자리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구직사이트를 통해서 기업에 서류를 보내면, 보통 전화로 인터뷰 요청이 옵니다. ㄱ기업의 경우 전화면접에서 몸이 불편하다고 하자 담당자가 바로 전화를 끊더군요. ㄴ기업은 몸이 불편하다고 하자, 담당자가 무시하듯이 '어디 사느냐'고 물어 '분당'이라고 대답했더니 '공장?'이라고 비웃으며 끊었어요."

씁쓸하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김씨는 밝게 웃었다. 그는 "장애인 고용에 대한 기업들의 편견의 벽은 여전히 높다"는 말을 남긴 채 다시 새하얀 면접부스로 향했다.

▲ 장애인취업동향 오른쪽은 취업시 불이익을 느낀 정도에 대한 그래프.
ⓒ 정진일

지난 4월 20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4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고용보장 욕구는 10년 새 5%p가 올라 8.5%였고 취업 시 차별을 느낀 경우는 2011년 34%에서 1.8%p오른 35.8%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이틀 뒤인 22일엔 지난해 말 기준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을 발표했다.

사업장 규모 클수록 장애인 의무고용률 낮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의무고용 사업체의 장애인 근로자는 총 15만8388명(전체 대상자 757만281명)으로 고용률은 전년 대비 0.06%p 오른 2.54%였다. 그러나 발표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30대 기업집단'의 고용률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상시근로자 126만475명 중 장애인 근로자는 2만654명(중증장애인 2배수 적용 후 2만4012명)으로, 고용률이 1.90%에 불과했다. 더불어 사업장 규모가 커질수록 장애인 의무 고용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 고용노동부

▲ 장애인의무고용현황 30대 기업 집단의 경우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는 일주일 뒤인 30일 '2015년 상반기 장애인고용 저조기관'을 추가로 발표했다. 2014년 6월 기준으로 장애인 고용 실적이 현저히 낮은 국가·자치단체,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 공표대상 1108곳을 선정해 같은 해 12월 해당 기관들에게 알렸다. 이후 사전예고 기관 중 126개 기관(28%)은 장애인 고용과 사업장 설립협약 등 의무고용을 이행했다.

하지만 그 외 802개 기관(72%)은 사전예고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고용확대 조치를 하지 않아 장애인 고용 저조 기관으로 선정됐다(선정기준 : 국가·자치단체(공무원)와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공공기관은 장애인 고용률 1.8% 미만,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국가·자치단체(비공무원)와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민간기업은 장애인 고용률 1.3% 미만).


자료를 살펴보면 1000명 이상을 고용한 민간기업 중 '30대 기업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58%(152개소)다. 그러나 30대 기업 중 대다수는 '장애인 고용 저조기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 공표 기업 중에는 명단공표제가 시작된 2008년부터 11회 연속으로 포함된 기업이 5곳이나 됐다.

"고용주 대상 인식 개선 강의하지만, 여전히 벽 높아"

대기업의 현저히 낮은 장애인 고용률에 대해 정부 측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4월 24일 만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남부지사 이두환 주임은 장애인 고용비율이 낮은 가장 큰 이유로 "일자리 미스 매칭 현상"을 꼽았다.

이 주임은 "장애인 입장에서는 할 수 있겠다 싶어 지원하지만 사업주는 (장애인의 기대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주려 하거나 마땅한 장애인 구직자가 없다고 말한다"며 "이는 사업주가 장애인 고용 시 들어가는 기회비용을 고려해 능력 이상의 몫을 하는 장애인을 채용하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애인은 최선을 다하지만 사업주는 만족하지 못한다"며 "사업주가 원하는 양질의 구직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적절한 직업 훈련과 능력 개발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공단 내)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다른 이유로 '장애인 구직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꼽았다. 기준 임금 이상인 고용 부담금을 감수하면서도 채용을 꺼리는 것은 "장애인이 회사에 오면 할 일도 없을 뿐더러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는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주임은 "고용주를 대상으로 인식개선 강의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벽이 높다"며 "사회 전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소기업은 의무고용률이 2.7%이라, (채용을 한다고 해도 기업당) 3명에서 10명 남짓일 뿐이다, 반면 대기업은 2.7%라 (채용자 수가) 30명 혹은 그 이상일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이 활성화돼야 장애인 고용 상황이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은 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것일까?

4월 28일 만난 국내 대형 건설사 ㄷ산업 인사 담당자 B씨는 "건설 현장은 환경이 열악하다. 비장애인도 위험한 곳인데, 장애인의 경우 얼마나 위험하겠나"라며 "더구나 사무직과 현장직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순환근무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모두 현장 근무를 한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경증장애인의 경우 안정성만 보장된다면 고용하는 데에 무리는 없다, 다만 중증 장애가 있는 경우 직무를 수행하기 힘들다"면서 "경증장애인과 중증장애인의 고용을 일괄적으로 다루지 말고, 차별된 정책으로 사용자가 고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ㄷ산업처럼 직무 특성상 장애인 고용에 적합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의무고용을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직무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부담이 되니 실질적으로 고용보다는 부담금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장애인 구직자 그리고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은 장애인 고용문제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비슷한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두 가지의 문제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장애인에 대해 사업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업주는 장애인은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맞는 직무가 없다는 편견을 버려야 하고, 장애인이 어디서 일하든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고용의 다각화'를 구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 측에서 주장하는 구직난, 기업 측에서 말하는 구인난은 결국 알맞은 직무와 직무능력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업 관계자가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경증장애인과 중증장애인에 대한 차별화된 정책전략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4월30일 장애인취업박람회현장. 장애인구직자들이 분주히 박람회를 둘러보고 있다.
 4월30일 장애인취업박람회현장. 장애인구직자들이 분주히 박람회를 둘러보고 있다.
ⓒ 정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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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애인 고용문제의 접점의 해결책으로 기업경영에 있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넘어선 '공유가치창출(CSV)'에 대한 연구를 하는 문휘창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는 최근 서면인터뷰에서 "장애인 고용문제도 결국 이와 같은 CSV의 맥락에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그냥 도와주느냐(CSR)'가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과 연결해서 도와주느냐(CSV)'는 분명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고용을 할 때는 장애인의 비교우위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문 교수는 미국의 맥도날드에서 장애인을 고용해 식당에서 청소 일을 하게 한 적이 있지만, 손님들이 보기에 안쓰럽기도 하고 불편해서 사업적으로 CSV가 되지 못한 사례를 설명했다. 장애인 고용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기업경영자들이 CSR에서 탈피하는 등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미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연계고용이다. 연계고용이란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기 어려운 장애인고용의무사업체가 생산관리 및 생산품 판매를 전달하거나 도급을 준 경우, 고용의무사업주가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ㄷ산업 인사담당자는 "본사가 업무 특성상 장애인의무고용률을 충족하지 못하는 대신, '베어베터'라는 회사에 모든 화환 도급을 주어 연계고용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특성 직무로 대기업이 채용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에 맞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베어베터와 같은 회사에 도급을 주는 것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실질적 고용을 늘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베어베터는 전체직원 110명 중 90명이 발달장애인으로 매출에 비례해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어, 장애인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CSV에 근접한 형태를 띠고 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진일, 김진희, 조아라, 조희원, 정영균 기자가 함께 취재한 것입니다.



태그:#장애인, #30대 기업, #고용의무, #사회적책임, #공유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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