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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시절 내 모습
 의경시절 내 모습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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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했다. 가슴은 답답하고 날씨는 목을 조여오듯 후텁지근했다. 목덜미 뒤로 불쾌한 느낌의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잿빛 건물의 분위기가 스산하게 나를 압도했다. 순간 청재킷을 입은 몇 명의 무리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축하한다. 이 XXX들아! 자살부대 온 걸 환영한다. 자살부대 입대 대환영이다!"
"니네 이제 다 죽었어. 여기가 바로 너희들 무덤이다! 초긴장하고 있어라! 다 갈아 마셔 줄라니까."

몇 명이 떠들었다. 피곤한 얼굴로 사납게 떠들어댔다. 이가 몇 개 없고, 어딘가 정신 상태가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낯선 모습은 20세 신병인 내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곳이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서울청 제1기동대 데모진압부대'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됐다. 하루가 그렇게 길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1996년 4월, 나는 그렇게 의경이 됐다.

홍보 포스터에 속아 의무경찰에 입대하다

군인을 보면 '군바리'라고 놀리며 비웃던 젊은이들은 입대일이 임박해오면 병장들을 보며 부러움을 넘어 존경까지 하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도 물론 그랬다. 그렇게 속이 타들어 가던 순간, 동네에서 한가해 보이는 의경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잠시 뒤 발견한 의무경찰 모집 포스터. 그속에는 행복해 보이는 의경 한 명이 아이들과 손을 잡고 웃으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포스터를 보고 의경 입대를 결정했다.

"기동대 가면 힘들다던데. 군기도 세고. 장난 아니란다. 간혹 일부가 기동대로 간다더라. 잘 알아보고 가. 훈련도 힘들고 낮밤이 따로 없다던데. 잠도 잘 못 잔대. 잘 알아봐."

지인이 내게 충고해줬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포근함이 묻어나는 포스터를 발견한 내가 그런 소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내 근거 없는 확신은 틀렸다. 입대와 동시에 현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을 돌보며 방범순찰을 할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경찰학교에서 방패와 몽둥이를 손에 쥐고 낯선 훈련을 계속 받았다.

기동대 배치 후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항상 이런 꿈을 꿨다. 누가 나를 차출해서 좋은 부대로 데리고 가지 않을까. 이런 거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편하고 안전한 부서로 발령 나는 일은 없었다. 내게 주어진 임무, '데모 진압'은 빽도 없고 운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다 태워 죽일 거다"... 무서웠던 시위대

부대 내에서 훈련 중인 모습
 부대 내에서 훈련 중인 모습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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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다 태워 죽일 거야! 여기 시너 가지고 왔어! 우리가 안 하는 거지, 마음만 먹으면 다 태워 죽일 수 있다고! 우리가 항의하러 갈 수 있게 길을 열어줘. 제발."

1996년 여름, 연세대. 내 기억 속에 가장 인상깊게 남은 순간이었다. 당시 우리 부대는 연세대 종합관 쪽에 배치됐다. 그때 먼 거리에서 보초를 서던 한총련 사수대 대학생이 우리에게 한 말이었다.

솔직히 화염병·쇠파이프도 무서웠지만, 시너를 우리에게 뿌리고 불을 붙인다는 건 20세 의경에게는 공포와 다름 없었다. 하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이런 상황 자체도 이해되지 않았다. 높은 분이 나오셔서 대화해주시면 끝나는 상황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대치 상황이 격해질 때마다 "태워 죽인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시위대들은 우리에게 두 팔, 두 다리가 들려 끌려가면서도 해코지는 하지 않았다.

진짜 무서운 건... 시민을 적으로 간주하는 지휘관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난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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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중대입니다!"
"포위됐습니다."

1997년 여름, 한양대. 연이어 날아오는 무전. 의도하지 않게 시위대에 포위된 다른 부대. 무전을 보낸 부대장은 정신이 없었다. 

윗선의 지휘관들은 가장 격한 대치가 벌어지는 곳에 훈련 한 번 제대로 받지 않은 전·의경 진압부대를 투입했다. 아무런 준비도 못한 부대도 문제지만, 그런 상황도 모르고 투입을 지시한 지휘관이 더 큰 문제였다. 시위대보다 무서운 건 바로 무지한 지휘관들이었다.

한양대 옆에는 다리가 있다. 포위당한 다른 부대원들을 지원하려고 그 밑을 지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 위에는 시위대가 화염병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다리 아래로 지나가라는 높으신 지휘관의 명령을 받고 우리 부대는 정신이 멍해졌다. 누군가가 엄호해주는 것도 아니고, 화염병을 앞에서 던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위에서 화염병이라도 떨어지면 어쩔 건가. 나는 당최 지휘관의 머릿속이 이해되지 않았다.

진압 방패를 뒤집어쓰고 머리를 막으면 된다고는 하는데…. 하지만 화염병 떨어져 방패에 맞는다면 불은 방패와 부대원에 붙을 것이다. 작은 소주병에 담긴 화염병 하나로 서너 명을 동시에 불붙여 버릴 수 있는데, 지휘관은 그것을 모르는 듯했다. 기동대장은 그저 거칠고 호된 명령만 내렸다. 다행히도 그날 우리 부대가 다리 밑을 지날 때 화염병은 날아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무리한 진압작전 때문에 내가 있던 현장에서 다른 부대원 한 명이 숨졌다. 시위대와 의경들이 엉켜 한 의경이 경찰 가스차량에 치어 순직했다고 들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 근처에 있었는데도 그 사실을 상황이 정리된 뒤에야 알았다. 미련할 정도로 밀어붙이던 상황을 보면 예견된 사고였을 수도 있었다.

그저 무리하게 진압만 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는 무능한 지휘관. 부하는 거칠게 다루고 숨 쉴 틈도 안 줘야 한다는 듯한 '높으신 분'들이 시위대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의경을 가해자로 만드는 방관자들

"(딩동!) 전대원 출동준비!"

입대 직후부터 전역까지 긴급출동은 무척이나 많았다. 이 방송이 나오면 3분 안에 출동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탑승해야 했다.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상관 없었다. 기동대는 항상 긴급출동이 잦았다(당시 의경부대는 기동대가 많았다). 특히 우리 부대는 훈련을 많이 해서 데모 진압을 잘했다. 그래서 오라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급하게 출동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예민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게 됐다. 그런 우리에게 지휘관들은 말했다.

"쟤들 다 빨갱이야. 한총련 알지?"

높으신 분들은 예민한 우리를 부추겼다. 내가 의경에 있을 때는 집회를 하는 이들이 무척 미웠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자고, 여름에 대나무가 들어가 있는 두터운 솜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고통을 선사한다. 당시에는 집회 현장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고도 그 마음을 몰랐다. 그저 내가 힘들고 현실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버거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하들이 부상을 입든 말든 밀어붙여 '데모를 진압'하려고 했던 지휘관들. 집회에 나온 시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대응하라는 지휘관들. 그들의 모습은 사극에 나오던 성미 급하고 작전은 없는 무능한 장수들과 흡사했다. 물론 우리가 훈련을 '빡세게' 하기로 소문난 부대였지만, 우리도 사람 아닌가. 또한 우리 앞에 있는 이들은 같은 시민 아니던가.

반대로 의경들을 협박하던 그들. 그리고선 통곡하며 울면서 끌려가도 해코지는 하지 않았던 시위대. 나는 그들이 '빨갱이'가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나처럼 그저 빽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함께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뿐이었다.

약자가 약자를 증오하는 사회... 안 된다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진행된 지난 1~2일, 얼굴에 캡사이신을 맞고 물로 씻어내는 시민(왼쪽)과 눈에 들어간 캡사이신을 씻어내는 경찰(오른쪽)
▲ 캡사이신 씻어내는 시민과 경찰 세월호참사 범국민철야행동이 진행된 지난 1~2일, 얼굴에 캡사이신을 맞고 물로 씻어내는 시민(왼쪽)과 눈에 들어간 캡사이신을 씻어내는 경찰(오른쪽)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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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 없는 의경들과 힘없는 시민들끼리 싸우는 상황은 역설 그 자체였다. 커다란 권력 뒤에 숨은 '높은 분'들이 나와 한마디만 들으면 되는 문제인데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요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여러 가지 집회가 열린다. 20여 년 전 그때가 지금이나 억울하고 분통한 마음이 가득한 사회적 약자들이 통곡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함께하는 것뿐이다. 그런 그들을 막는 이들이 있다. 이 가혹한 사회는 또 다른 약자인 경찰을 내세워 마주 세워버린다.

이 사회는 약자가 약자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을 뿐, 모두 같은 약자들. 이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경찰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집회에 나선 이들도 우리 국민이다. 국민과 국민이 싸우는 이 역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의경을, 경찰을 가해자로 만드는 사회, 이런 일이 다시는 생겨선 안 된다.

입대 전 내가 봤던 그 포스터 속 풍경처럼, 이 땅의 공권력이 밝은 얼굴로 아이들과, 시민들과 함께하길 기대해본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위기의 순간들' 응모 기사입니다.



태그:#의무경찰, #데모, #한총련,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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