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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던 중 두눈을 질끈 감고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던 중 두눈을 질끈 감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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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청와대가 유승민 (원내)대표와는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는 뜻을 재확인한 것 아닌가."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걱정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여야가 문구 수정을 거쳐 정부로 보낸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은 '유승민 죽이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당과 야당이 국회법 개정안 내용 중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에서 '요구'를 '요청'으로 수정해 정부에 보냈을 때만 해도 청와대가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정 의장도 "박 대통령이 중재안에 위헌성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 재의를 요청할 가능성은 없다"라고 내다봤다. 청와대가 걱정했던 위헌 가능성을 상당 부분 해소한 안인 데다, 어렵게 나온 여야 합의를 거부하면 박 대통령으로서도 큰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한다는 상식에 따른 판단이었다. 

기대 벗어난 청와대... 진퇴양난 빠진 유승민

하지만 청와대는 보란 듯이 "우리의 입장이 달라질 게 없다"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야가 합의한 중재안에 대해서도 "한 글자를 고친 것"이라고 폄하했다.

청와대는 이 같은 강공의 명분으로 국회법 개정안이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해 헌법의 '삼권분립'을 침해할 것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거부권을 만지작거리는 청와대의 속내를 살펴보면 말을 듣지 않는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이 가득 쌓여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협상 과정에서 유 원내대표가 야당의 국민연금 연계안을 수용하고, 2차 협상에서도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시켜 야당과 합의하는 등 청와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이야기다.

청와대는 당시 "당정협의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당·정·청 대화를 보이콧하기도 했다. 당내 친박(박근혜)계에서는 "박 대통령 임기가 반 이상 남은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는 더 이상 안 된다"라는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실제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유 원내대표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우선 새누리당이 야당 요구대로 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재의결에 부친다고 해도 유 원내대표의 부담은 만만치 않다. 

재의결 정족수를 충족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3분의 2 이상을 얻지 못해 재의결에 실패한다면 박 대통령의 승리로 끝나게 되고 유 원내대표의 사퇴는 불가피하다.

재의결에 성공할 경우도 문제다. 거부권을 행사한 박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지겠지만 유 원내대표도 당청 관계 파탄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 대통령의 탈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거부권 행사는 소탐대실"... 대야 관계 악화 우려 증폭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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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큰 만큼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 큰 시나리오는 '자동 폐기'다. 의원총회 등을 통해 재의가 요구된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뜻을 모아, 19대 국회 임기가 끝난 후 자동 폐기되게 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야당과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했던 유 원내대표는 사실상 의원들의 불신임을 받게 된다. 원내대표직을 유지하더라도 힘이 실리지 않는 '식물 대표'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대야 관계 악화에 따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새누리당의 재선 의원은 "청와대가 유승민 한 사람을 겨냥해 정치적 목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소탐대실을 부를 것"이라며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 처리를)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데, 당장 대야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은 있는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당 내에서도 메르스 사태 와중에 청와대가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여야가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으니 이제는 청와대가 화답해야 할 차례 아닌가"라며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해 민심이 날로 나빠지고 있는데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국회와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할 말은 많은 듯했지만 말을 아꼈다. 그는 국회법 개정안 송부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과 관련해 "그에 대해서는 일절 대응을 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만약을 전제로 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라며 입을 닫았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유승민, #거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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