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먼저 가정을 해보자.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외국에 전염병이 돌았다. 치사율이 높아져만 간다. 외국 보건당국이 "우리나라 방문 시 병에 걸리면 여행경비 공짜에 3000달러 드릴게요, 꼭 와주세요"라고 읍소한다. 그렇다면, 우리 관광객들은 외국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을까, 아니면 목숨 걸고 돈 벌러 비행기에 탑승할까.

이런 예는 어떠한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마침 식중독에 걸렸다. 식당 주인이 밥값은 물론 보상비를 내놓겠다고 광고한다. 식중독 환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게 된 손님들은 그 식당을 계속 찾을까, 다른 식당으로 갈까.

참으로 대단한 정책이 출현했다. 박근혜 정부 산하 부처들의 헛발질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싶지만 이번 건 실로 박장대소가 나온다. 물론 그 웃음 뒤에 남는 건 씁쓸함과 우려뿐이다. 이게 다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 덕택이다.

해외 관광객 유치하려는 '메르스 안심 보험', 어이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메르스 사태로 해외 관광객이 급감한 동대문 상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몽골 관광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메르스 사태로 해외 관광객이 급감한 동대문 상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몽골 관광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문체부는 지난 15일 '메르스 관련 관광업계 지원 및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메르스로 인한 업계 피해 등 관광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및 업계 공동 대응으로 국내외 관광수요 조기 회복과 이를 통한 내수 진작에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취지의 정책들이 나열됐다. 그 중 눈길을 확 잡아끄는 대목은 이 부분이다.

"우선, 방한 외래 관광객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외래관광객(취업비자 제외)을 대상으로 한국 체류기간 동안 메르스 확진 시 치료비 전액과 여행경비 및 기타 보상금을 지원하는 안심 보험을 개발·홍보하는 한편, 현지 업계나 기관의 요청 시 한국정부 명의의 한국관광 안심 서한(레터)을 지원한다."

풀이해 보면 이렇다. 오는 22일부터 1년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메르스에 감염되면 치료비, 여행경비를 보상하는 동시에 보상금 명목으로 3000달러를 지급하고, 사망시엔 최대 1억 원을 보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서 얘기한대로 "300만 원 넘게 줄 테니, 계속 한국 와 주세요"라는 보험 정책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한다. 도대체 누구의 발상일까.

'메르스=대한민국'임을 자처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인들을 비롯해 급감하는 해외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가상하다. 문체부는 '관광업계 단계별 지원'과 '진정 시점 대비, 국내외 관광수요 재창출 대책 마련' 등 여타 정책들도 함께 내놓았다. 업계 특별 융자나 '코리아 그랜드 세일' 조기 실시, 한국관광 안정성 홍보, 메르스 안전수칙 홍보 등 평이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유독, 저 '안심 보험'은 튀어 보인다. 3000달러를 보상해 줄 테니 그래도 찾아 달라는 발상은 천박하게 다가올 정도이다. 하필 발표시점마저 박근혜 대통령이 동대문 시장을 찾아 경제 안정과 일상을 강조한 다음날인 15일이었다. 문체부의 발상이나 시점이 참으로 시의적절하지 않은가.

"아예 '한국=메르스'라고 광고를 해라"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에 휴업했다 최근 수업을 재개한 서울시 강남구 일원본동 대모초등학교를 방문, 손씻기 실습 수업을 참관한 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에 휴업했다 최근 수업을 재개한 서울시 강남구 일원본동 대모초등학교를 방문, 손씻기 실습 수업을 참관한 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메르스 걸리면 여행공짜상품 일정. 1일차 입국 및 호텔배정 2일차 각 관광지 방문 3일차 삼성서울병원 방문 4일차 여행경비 수령" (@lo**********)
"메르스 걸리면 여행 공짜? 이게 국가냐 노점상이냐." (@sa******)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메르스 전염병을 이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다니 이게 박근혜 정권이 말하는 창조경제인가 마치 관광상품 중 하나같아!" (@ts****)

SNS 사용자와 누리꾼들의 비난이 들끓는 건 당연지사. 문체부의 '메르스=대한민국' 셀프인증을 조롱하는 의견들이 넘쳐 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앞장 선 것은 진중권 동양대 교수다. 그는 15일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연이어 비판의 글을 쏟아 냈다.

"초절정개그. 아예 한국=메르스라고 광고를 해라, 광고를"
"경비행기 추락. 승객 급감하자 내놓은 진흥책. '추락하면 요금 전액 환불.'"
"경기는 얼어붙어도 지랄은 풍년입니다."

헌데, 왠지 이런 정책들이 낯설지가 않다. 1년 전 '세월호 참사' 때로 시계를 돌려 보면 간단하다. 문제가 되니 해경을 해체하는 나라 아니던가. 또, 세월호 참사 대책이라고 초·중·고생들 대상으로 수영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이 이 나라의 교육부 아니었던가.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손을 잘 씻으면 메르스가 얼씬 못한다"고 발언했다. 참으로 순수한 눈높이 발언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정부, 그런 수장을 조타수와 선장으로 둔 채로 한국호에 올라탄 형국인 셈이다.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항해를 하며.

국민들도 아는 상식, 문체부는 왜 모르나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메르스 영향으로 해외관광객 감소와 소비위축 등 어려움을 겪는 국내 최대 규모 패션산업집적지인 동대문 상점가를 방문해 시민과 인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메르스 영향으로 해외관광객 감소와 소비위축 등 어려움을 겪는 국내 최대 규모 패션산업집적지인 동대문 상점가를 방문해 시민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번 문체부의 이 '메르스 안심보험' 대책을, 메르스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관광업계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봐줄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이야말로 '경제'를 최우선시하는 담당 부처의 철학이 근간이 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2일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공연예술계를 위해 대학로를 찾아 업계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13일에는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았다고 한다. 문체부 박민권 1차관도 13일 롯데시네마 잠실 월드타워점을 방문했다.

중소 공연기획사들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온다. 공연 등 현장 관람객 역시 급감했다는 소식이다. 장관과 차관이 현장을 찾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업계의 어려움을 실제로 듣는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대통령처럼 동대문 시장을 찾는 '쇼'는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필요한 것은 '메르스 안심 보험'이 아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나 읍소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국민들이 불안을 해소하고 메르스 국면이 진정될 때야말로 해외 관광객들도 안심하고 이 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는 그야말로 문체부도 알고 국민들도 아는 상식 아닌가.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문화관광체육부
댓글8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