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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
 신경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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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신경숙이 기대고 있던 독자는 자신을 키워준 문단과 언론일 것이다. 한 신문 지면에서 표절 공방이 외롭게 벌어지고 있는 동안 다른 신문들과 문단은 건넛마을 불구경하듯 방관한 건 우리 문학계가 표절 행위에 얼마나 관대한지, 문화 상품으로써 경쟁력을 갖춘 작가를 얼마나 배려하려고 애쓰는지 잘 보여준다. 신경숙이 정말 억울하게 되었다면 문단이 그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표절 시비를 가리는 데 나서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다."

헷갈릴지 모르지만, 최근의 글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디테일에 차이가 있지만, 요 며칠 한국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신경숙 표절 논란'을 언급한 글이 아니다. 문학 평론가 정문순이 <문예중앙> 2000년 가을호에 쓴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는 신경숙의 문학 세계와 표절 논란을 정면으로 겨냥한 비평문이다. 2000년이라니, 무려 15년 전이다.

'신경숙 표절' 논란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씨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게재한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란 글로부터다. 이응준은 1995년 신경숙씨가 발표한 단편 <전설>이 일본 탐미주의 소설가인 고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고, 2000년 이후 '신경숙 표절'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뤄져 왔으며, 이 문제에 대해 한국 문단이 '침묵의 공범'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출판사 창비는 17일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응준씨가 예로 든 단락은 유사성이 있더라도 전체 작품은 표절이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15년 전 정문순 평론가는 두 작품의 표절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사실 신경숙 소설 중 표절 혐의의 도마에 오른 건 비단 <딸기밭>과 <작별 인사> 만이 아니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박철화에 의해 패트릭 모디아노, 최윤, 윤대녕과의 관련성이 언급된 바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95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에 실린 단편 <전설>은 명백히 일본의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학원사, 김후란 옮김, 1984)의 표절 작이다.

일제 파시즘기 때 동료들의 친위쿠데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 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

<우국>의 아내는 남편 따라 죽는 데 일호의 주저도 없으며, <전설>의 여자는 남편의 실종 통보를 받고도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보낸다. 또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는 물론이고 남편의 죽음이나 참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아내의 태도, 역순적 사건 구성, 서두에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전개 방식 등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나 영향 관계로 해석될 여지를 봉쇄해버린다."

이미 15년 전 제기됐던 '신경숙 표절' 논란, 창비는 아니라고?

이응준 소설가가 제기한
<우국>과 <전설>의 작품 속 일부분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 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우국(憂國)>,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 주우(主友) 세계문학20, 주식회사 주우, p.233. (1983년 1월 25일 초판 인쇄, 1983년 1월 30일 초판 발행.)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창작과비평사, p.240-241(1996년 9월 25일 초판 발행, 이후 2005년 8월 1일 동일한 출판사로서 이름을 줄여 개명한 '창비'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로 소설집 제목만 바꾸어 재출간됨).
문단이 아닌 모티브의 유사성, 심지어 배경만 다를 뿐 인물의 태도나 구성과 전개 방식까지도 유사성이 보인다는 얘기다. 무려 15년 전, 이미 주요 문학 계간지에 한 문학 평론가가 정면으로 제기했던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시비.

1992년 발표된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장정일의 글 '베끼기의 세 가지 층위'에 빗대자면,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표절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문장과 세계관에 있어 표절"이라는 판단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2015년, 국내 최고, 최대의 출판사라 불리는 창비는 <우국>과 <전설>의 유사성에 대해 17일 이런 입장을 내놨다. SNS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을 부른 설명 중 일부는 이러하다.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 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이다. 또한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 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 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따라서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표절 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고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다."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이라니. 문단이나 학계에서도 부러 쓰지 않는 표현으로 현혹하려는 것이 아닌 바에야, 민감한 표절 문제에 대한 안일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쏟아지는 중이다. 사실, 그런 측면에서 신경숙의 해명 역시 고개를 젓게 한다.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표절 논란에 대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라니, 21세기 독자들에게 한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또 드물게 해외 진출에 성공한 작가로 칭송 받는 소설가가 내놓을 만한 해명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인 소설가 이응준은 신경숙과 창비가 내놓은 입장을 두고 17일 이렇게 개탄했다.

"문학의 진정성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그 글에 대한 신경숙과 창비의 이러한 반응에 대하여서는 한국 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독자 분께서 추상같은 판단을 내려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문인으로서 제 모국어의 독자 분들께 이 기어이 반성하지 못하는 문단이 너무도 치욕스러워 그저 죄스러울 뿐입니다."

왜 그랬을까. 이응준의 글 이후 SNS 상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비판과 논란에 비해 정작 문학계 인사들의 반응은 덤덤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실명과 가명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인터뷰 한 문단 인사들은 "표절로 보인다"는 중평을 내놓으면서도 "이미 문제 제기가 되어 왔다"거나 "표절 논쟁은 문학계의 오래된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등 다소 무덤덤한 어조가 적지 않았다.

그 중 <연합뉴스>와 인터뷰 한 한국작가회의 정우영 사무총장의 발언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을 바라보는 문학계 일부의 보수적인 태도를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신 작가는 필사로 자신을 단련해온 작가로 알려져 온 만큼 작가가 필사한 부분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표절에 이르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표절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한국 문학의 소중한 자산인 만큼 충분한 해명의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거센 논란 낳은 신경숙과 창비의 해명

누구에게는 충분했을지 모를 그 해명이 더 거센 논란을 낳고 있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작가이기에"라는 일부 문인들의 옹호나 "우리의 신경숙은 그럴 리 없어"라는 독자들의 탄식과 같은 각기 다른 반응만큼이나, 이번 표절 논란은 그 반향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십 수 년 전, 일찌감치 문예지의 평론가나 일간지의 문학 전문 기자를 통해 제기됐던 문제가 SNS를 타고 대중들에게 일파만파로 퍼져 나간 첫 번째 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직접적인 표절 여부와 신경숙 작가와 창비의 입장만이 아니다. 이미 십수 년 전 제기됐던 문제가 '왜 지금까지 이토록 잠잠했느냐'하는 외적인 문제 또한 중요하다. 정문순의 비평에서 볼 수 있듯, 사실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1999년 <한겨레> 최재봉 문학전문기자는 신경숙의 소설 <딸기밭>이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전후해 문학계에서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수차례 제기돼 왔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신 작가의 구체적인 표절 의심 사례들도 속속 기사화되고 있다. 반면 그 비판에도 신경숙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태도로 일관하는 중이다.

일부 소장파 평론가들이 지적해 온 표절 시비에도 논란은 대중에게 미치지 못 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문단 내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거나 외면했거나. 예나 지금이나 한 예술 생태계 내 이슈가 대중들에게 파장을 끼치기까지는 여러 복합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슈의 경중은 물론 제기한 매체 파워나 당사자의 이름값 등등.

차이가 있다면, 2015년의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 이후 그의 이름값이 SBS <힐링캠프>에 출연할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인세 20억 원'을 운운할 정도로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점이리라. 자타 공히 신경숙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됐다.

그와 달리, 갈수록 표절 논쟁을 작품 내적으로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문학계의 지평은 협소해지고 있다. 그리고 "문학은 죽었다"는 테제가 공공연해 질 만큼 독자도 줄고, 패배주의도 만연해 가고 있는 중이다. 와중에 다시 제기된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왜 일각에서 소설을, 시를 두고 사망 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알리바이가 돼 줄 것으로 보인다. 이응준이 왜 문단으로 인해 '치욕'스럽고 '죄'스러울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학 권력 논쟁 이후 진화한 출판상업주의

창비직원Z 계정에 올라온 패러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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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을 기억한다.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라는 한국 문학 메타 비평 평론집이 출간된 해 말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 문단을 휩쓸었던 '문학 권력' 논쟁에 있어 신경숙과 창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당사자들이었다.

여기에 2014년 20주년을 맞는 문학동네 역시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1994년 창간 이후 젊은 비평지와 출판사에서 점차 덩치와 영향력이 커졌고, 창작과 비평사(창비)와 문학과 지성사(문지)와 함께 '문학권력'으로 지목 받으며 문단 내 거센 논쟁의 대상이 됐다. 초기 신경숙을 발굴하다시피 하고 많은 작품을 함께한 것이 바로 문학동네였다.

문학권력은 이렇게 일부 자기 식구에 해당하는 소설가나 시인, 평론가를 챙기는 문단(과 거대 출판사) 내 '패거리 주의'가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과 같은 유명 문학상까지 영향을 미치고, 다시 독자들과 판매 부수에까지 파급된다는 것이다.

문학권력에 이은 '주례사 비평' 논쟁 역시 같은 층위의 논쟁이었다. 주례사 비평은 거대 출판사가 자본과 명성을 이용, 비평가에게 '주례사(와 같은 덕담과 호평 일색의) 비평'을 싣고, 그 비평을 다시 언론 매체가 받아쓰면서 스타 작가를 공고히 하는 시스템을 비판한 바 있다. 신경숙과 창비 역시 이 문학권력과 주례사 비평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심지어 문학권력 논쟁은 당시 창작과 비평사 웹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전개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표절을 포함해 문학의 순수성이나 작품 내적으로 몰두하던 경향을 띠던 논쟁과 논란들도 출판업계가 상업화 일로를 겪으면서 쇠퇴하는 양상으로 나아갔고, 그것이 오히려 (여타 장르의 강세와 더불어)기존 독자들까지 떠나게 만드는 '문학의 위기'를 고착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창비의 제 식구 감싸기식 대응이 뭇매를 맞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판매량으로 그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신경숙 작가를 다른 출판사도 아닌 창작과 비평사가 옹색하게 변명해줬다는 비판 말이다. 그런 토대 위에서 황석영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표절 논란은 대부분이 수그러들었고, 그 위에 쌓인 성채 같은 허명은 판매 부수로 이어졌다. 다시금 불거진 표절 논란으로 "신경숙보다 창비에 실망했다"는 독자들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일견 최초 문제 제기 속 이응준의 거친 문장을 비판하는 측도 물론 존재한다. 표절 논란에도 신경숙의 미문과 향후 작품 활동은 존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점은, 훗날 정확히 똑같은 비판을 해야 했을지 몰랐을 정문순 평론가의 엇비슷한 의견에 토를 달 만한 이는 많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신 작가의 이런 표절 의혹, 또 신 작가 말고도 잊을만하면 나오는 다른 작가들의 표절 의혹을 보면서 이건 우리 문단 또는 문학계의 어떤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는데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는 문학의 상업주의가 가장 큰 원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MBC 라디오 표준 FM 95.9 <김상철의 세계는 우리는> 인터뷰 중에서)

표절은 곧 창작 윤리의 문제다. 여타 음악을 비롯한 예술 장르와 달리, 기술적이거나 소설공학적인 문제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 윤리가 훼손됐음이 공개적으로 비판받는 지금, 신경숙 작가와 창비가 취할 태도가 지금의 그것이어야 했는지 다시금 묻고 싶다.

그 제대로 된 해명과 논의가 있은 후에야, 상업주의에 물든 출판계가 비단 업계 문제가 아닌 (표절을 포함해) 한국사회 전반의 '윤리의 실종'과 관련있는지 더 크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창비의 입장 발표 직후 등장한 익명의 트위터 계정 '창비직원A'의 자성의 목소리를 되돌려 주고 싶다.  

"출판사 창비에서 일하는 직원 A 입니다. 신경숙 작가의 단편 소설 '전설'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오늘 회사가 발표한 입장이 부끄럽고 실망스러워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내년은 창작과비평이 세상에 나온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를 위해 곳곳에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과 관해 처음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모두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 창비직원A (@unknownmembera)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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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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