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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문득 실눈을 떠보니 여름의 이른 아침 해가 이미 눈부시게 떠 있었다. 세 살배기 아들과 두 살배기 딸, 두 녀석은 곁에서 곤히 자고 있는 엄마 아빠를 깨우지도 않은 채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 맑은 웃음소리에 잠이 깬 건지, 아침 해가 눈이 부셔서 깬 건지, 평소 깨야 할 시간이 다가와서 깬 건지 분간도 못한 채 그저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늦잠 잔 주제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엄마가 뭐가 그리 반가운지 큰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벌려 있던 한 쪽 팔에 안기며 외쳤다.

"엄마 일어났다!"
"엄마 잘 잤어?"

아직 말하는 것이 서툰 둘째는 "엄마, 엄마, 엄마!" 계속 부르다가 이내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한 채 나의 반대쪽 팔 안쪽으로 예고 없이 몸을 던졌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익숙하지 않은 요즘의 아침풍경.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듯,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곁에서 자고 있는 남편과 나를 깨우지 않고 두 녀석이 모여 놀고 있는 모습은 내 길지 않은 육아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둘 낳은 건 참 잘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둘 낳은 건 참 잘했어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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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를 낳아 키울 때는 아이가 오로지 엄마, 아빠만을 대상으로 하여 자신의 자아를 표현하는 게 당연했고, 부모가 절대적인 존재였으며 특히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부모를 깨우는 일은 아이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일 이었다.

부모를 깨우지 않으면 오롯이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이길 원하지 않는다는 듯 나를 봐달라고 빽빽 울던 아이는 자라면서도 늘 혼자이길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부모가 전부이던 큰 아이에게 동생이라는 새로운 애착대상이 생겼다. 엄마, 아빠와 늘 함께하는 일상에 동생이라는 존재가 끼어들게 된 것. 그건 어느 날 늘 똑같던 아침밥상에 반찬 하나가 더 추가되듯 갑작스레 벌어진 사건이었다. 뜨겁게 요리하듯, 말 그대로 하루를 지지고 볶으며 흐르고 또 흘렀다.

매일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눈 마주치고 다투고 같이 먹고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뒹구는 존재인 '동생'의 가치는 동생이 오빠의 언어와 행동에 반응을 하고 함께 뛰고 걷고 웃을 수 있는 돌 즈음의 시기가 되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 전까지는 동생이 있어도 늘 부모의 곁을 벗어나지 못하던 큰 아이가 둘째 아이의 성장과 함께 자신의 감정도 성장시킨 듯 새로운 사랑이라도 발견한 듯, 동생을 향해 눈웃음 가득한 미소를 날리는 행동을 했다. 아이가 컸다는 가장 흔한 증거였다.

큰 아이의 감정적인 성장은, 작은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과 못지않게 엄마인 내게 큰 감동이었다.

터울이 적은 연년생 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동시에 두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기어이 밑천을 드러낼 때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육아해야 했던 나는 아이 한 명, 한 명 맘껏 사랑해줄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생기는 엄마의 죄책감과 미안함이 유독 커지는 날엔 우울감에 빠져 한동안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가족 구성원이 한 명 더 생김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갈등상황들을 우리 가족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남편이 야근하는 날 저녁엔 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들이 난무했다. 큰 아이는 나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해야 하고 동시에 작은 아이는 분유를 타서 먹여야 하는 상황. 일단 아직 혼자 젖병을 들고 먹을 수 없는 작은 아이를 안고 분유를 먹이느라, 큰 아이에게 식탁에서 혼자 밥 먹기를 연습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혼자 숟가락질, 젓가락질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아이는 혼자 먹기를 거부했다. 내가 작은 아이 분유를 다 먹이고 자신의 곁에 앉고 나서야 큰 울음을 그치고 밥을 먹었다. 큰아이의 서러운 눈물바람을 세차게 맞을 때마다 엄마인 나도 아파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남편의 잦은 야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큰 아이 양치질을 시켜주느라 욕실에서 고군분투 중인데, 막 걷기 시작한 작은 아이도 내 곁에 오고 싶어서 물기 가득한 욕실 바닥에 발을 딛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물기 가득한 곳에 걸음이 미숙한 아이가 발을 내딛었다가는 큰 사고가 날게 뻔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작은 아이를 업고 큰 아이 양치질을 시켜주곤 했었다.

그렇게만 매일 할 수 있었다면 울음소리 없는 가정의 평화는 이어질 수 있었겠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허리가 갑자기 고장 나고 체력이 바닥나서 도저히 작은 아이를 업어줄 수 없을 때엔 작은 아이를 욕실 바깥에 둔 채 욕실 문을 닫고 허겁지겁 큰 아이를 씻긴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작은 아이의 쩌렁쩌렁한 울음소리는 내가 큰 아이를 다 씻기고 욕실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계속됐다.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두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대의 표현은 끊임없이 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듯이 두 아이들은 여러 날 동안 많이 울었다.

이젠 아이들에게 죄책감은 없다

엄마도 울고 아이들도 울던 수없이 많은 날들이 반복되며 지나고 나니 지금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두 녀석이 같이 웃고 껴안고 뽀뽀하고 술래잡기를 하며 집안 곳곳을 누빈다.

이젠 아이들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도 사라졌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 내 몸과 마음을 조금은 토닥일 수 있는 시기가 되니 이젠 큰아이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생겼다.

'내가 너에게 무수히 해준 것들 중 가장 으뜸은 친구 같은 동생을 선물해준 거야.'

매일 동생이 친구 같다고 얘기하는 큰 아이와 하루 종일 오빠만 졸졸 따라다니는 작은 아이를 보며 두 아이가 이제 조금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너희들이 자라며 또 한 종류의 사랑을 배워가는 구나.'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육아, #엄마, #두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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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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