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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시험문제를 콕 찍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대입 논술을 앞 둔 수험생들이라면. 우리의 교육 환경은 논술 시험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그러면서 대학 입시에서는 논술을 요구한다. 절박할 수밖에.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상상은 현실이 되기 힘들다. 하여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이 끝난 직 후부터 대입 논술 시험이 치러지는 한 달 남짓 사이, 자신들의 논술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자기 주도 논술 시험 훈련법 <유시민의 논술 특강>
▲ 책표지 자기 주도 논술 시험 훈련법 <유시민의 논술 특강>
ⓒ 생각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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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집게'를 찾아 학원으로, 과외로, 참고서를 사러 흩어진다. 절박함은 곧 지출로 이어지고 '빨간펜 선생님'의 첨삭과 배경지식 쌓기에 골몰한다. 안도감과 지출을 맞바꾸는 셈이다. 물론 그런 방법으로 좋은 성적을 받은 수험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도하게 자신감을 잃을 필요가 없다. <유시민의 논술 특강>은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 앞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썼다. 이번 책은 '논술 시험이란 특별한 과제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탐색'한 일종의 별책 부록이다.

저자는 글쓰기에 왕도도, 지름길도, 샛길도 없다고 선을 긋는다. 흔히 알려진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고 꾸준히 글을 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는 시험 글쓰기는, 짧은 기간에도 '괜찮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말한다.

최고의 논술문을 쓰려면 오랜 세월 많은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면서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괜찮은 논술문을 쓰는 것은 그보다 훨씬 수월하다. 시험 글쓰기의 원칙을 몇 가지 숙지하고 그 원칙에 따라서 짧은 기간 글 쓰는 훈련을 집중해서 하면 괜찮은 수준의 논술문을 쓸 수 있다. - <유시민의 논술 특강>에서

후하게 줘도 70점 답안지, 누가 썼는지 봤더니...

책은 예시 문제로 '2012학년도 서울대학교 인문 계열 논술 문제'를 선택했다. 인문 계열 논술 시험에서 흔히 나오는 유형을 반영하고, 학교 측에서 누리집에 공식 게재한 문제 중 가장 최근의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대학교는 2010학년도까지는 채점을 지휘한 교수의 총평을 공개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사한 답안이 많아 안타깝다"는 교수의 말이다. 이건 제대로 된 비슷한 답안이 많다는 게 아니라, 논제와 따로 노는 '외워 쓴' 답안이 많단 얘기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어 학원이나 참고서에서 소개한 모범 답안을 그대로 옮긴 수험생이 많아 안타깝다는 것.

책에서는 어떤 이가 작성한 '모범 답안'을 소개했는데, 그리 잘 쓴 글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은 제한된 시간에 쓴 것도 아니고 시험처럼 여러 요소를 제한한 채 작성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문제와 지문의 독해가 충실하지 못했고 반복된 내용으로 분량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저자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 답안을 '후하게 줘도 70점'이라 평했다.

이 사람이 누군지는 혹시 기사를 본 후에 책을 읽을 독자를 위해 공개하지 않겠다. 책에서도 편견을 피하기 위해 정체를 숨기다 끝에 가서야 공개했다. 그 의도에 부합하기 위해서다.

저자가 그 '모범 답안'을 소개한 이유는 그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수험생들이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거다. 이 정도 되는 사람도, 충분한 시간과 자유로운 정보를 활용해도 완벽한 답안을 작성하지는 못했다.

또한 이 경우에 배경지식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낯선 단어가 등장해도, 지문을 통해 충분히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어휘나 개념을 줄이기 위해선 '다이제스트'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에서 추천한 '다이제스트' 목록이다.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 (가마타 히로키, 부키)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사계절)
<역사 고전 강의> (강유원, 라티오)
<고전의 향연> (강정인 외, 한겨레출판)
<절대지식 중국고전> (다케우치 미노루 외, 이다미디어)
<절대지식 세계고전> (사사시 다케시 외, 이다미디어)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돌베개)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인문 고전 100> (함영대, 팬덤북스)
- <유시민의 논술 특강>에서


문제도 막 고등학교 과정을 끝마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수준이다. 거기다 시간제한도 있다. 300분이란 짧은 시간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긴 지문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200자 원고지 30장 가까운 분량의 글을 써야 한다.

책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성인 독서량은 일 년에 잡지를 포함해 고작 10권 정도라고 한다. 수험생들의 독해력과 사고력을 과대평가했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스스로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문제를 출제한 교수들마저 정해진 시간에 모든 요소가 극도로 제한된 시험 글쓰기로 100점 답안지를 작성할 수는 없으리라 예상했다. 수험생은 자신을 믿어야 한다.

논술문, 스스로 써보고 스스로 고쳐라

<오마이뉴스>는 청소년을 위한 지면 '너, 아니?'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청소년을 위한 지면 '너, 아니?'를 운영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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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이라도 글을 쓰는 습관은 중요하다. 하루 한 문장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완성된 글을, 친구에게 가족에게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서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책에서 제시하는 최고의 방법은,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수험생과 함께 검토하고 토론한 다음 스스로 수정하는 것이다.

말이든 글이든, 제대로 하려면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생각이 합리적이라야 말도 글도 논리적으로 할 수 있다. 비뚤어진 생각을 곧게 표현할 수는 없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을 문자로 옮기면 저절로 좋은 글이 된다. 글보다 말이 먼저고, 말에 알서 생각이 있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한다. - <유시민의 논술 특강>에서

보여줄 사람이 여의치 않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청소년을 위해 '너, 아니?'라는 지면을 제공하고 있다.

처음부터 논술문 쓰기가 버겁다면, 말랑한 글부터 써보자. 여행이야기든, 독후감이든, 그냥 생활하며 겪은 '사는 이야기'든, 뭐든 말이다. 그렇게 쓴 글이 정식 기사로 채택되지 않았다면 과감히 '생나무 클리닉'을 노크하자. 현직 편집기자들이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를 알려준다.

꼭 시험을 치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도 이런 훈련은 분명 득이 된다, 잘 단련된 글쓰기 근육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든든한 자산이다. 자신을 믿고, 스스로 써보자.

시험 글쓰기의 여덟 가지 원칙
1. 논술 시험 문제를 받으면 가장 먼저 제시문과 논제를 대략 훑어보고 시간표를 짠다.
2. 같은 문항에 논제가 둘 이상 있으면 모든 논제를 한꺼번에 독해하고 답안 설계도 모두 한꺼번에 한다.
3. 배경지식에 의존하지 말고 제시문과 논제를 독해하는 데 집중한다.
4. 시험 시간의 절반을 제시문과 논제를 독해하고 중요한 정보와 논리를 메모하는 작업에 쓴다.
5. 메모를 최대한 상세하게 수정 보완한 다음에 문장 쓰기를 시작한다.
6. 정해진 분량을 지켜서 쓴다.
7. 문장은 단문을 기본으로 하고 꼭 필요할 때만 복문을 쓴다.
8. 불필요한 정보는 쓰지 말아야 하고 필요한 정보라도 반복하지 말아야 하며 출제자가 요구하지 않은 것은 절대 쓰지 않는다.
- <유시민의 논술 특강>에서

덧붙이는 글 | <유시민의 논술 특강>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펴냄 / 2015.06 / 1만 1000원)



유시민의 논술 특강 - 자기 주도 논술 시험 훈련법

유시민 지음, 생각의길(2015)


태그:#유시민의 논술 특강, #생각의 길, #유시민, #너아니,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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