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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추석귀향이 시작된 지난해 9월 5일 오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주장하며 고속버스를 장애인도 탑승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장애인도 시외버스 타고 고향가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추석귀향이 시작된 지난해 9월 5일 오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주장하며 고속버스를 장애인도 탑승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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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간다. '우리도 남들처럼 버스 타고 집에 가고 싶다'고 외치기 위해서다. 2005년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 제정으로 시내버스에는 저상버스가 도입됐지만 광역버스와 공항버스·고속버스 등은 아니었다. 주거지를 벗어나 시외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일은 장애인들에겐 여전히 꿈만 같은 일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장애인들이 탈 수 있는 시외버스를 볼 길이 열렸다.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지영난)는 김정미씨 등 장애인 3명이 금호고속 주식회사와 명성운수 주식회사를 상대로 '시외버스, 광역급행버스, 직행좌석버스, 좌석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 등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버스회사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장애인의 승·하차를 도울 의무가 있는데도 비용 부담을 이유로 이들이 관련 설비를 마련하지 않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봤다. 

판결을 듣고 나온 문애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어떻게, 어떻게 해요! 나 완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라면서 흥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동료들 표정은 별로 밝지 않았다.

이 소송의 원고는 장애인 세 사람 말고도 더 있다. 어린 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갈 때가 많은 조주원씨와 무릎이 좋지 않은 65세 조영실씨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각각 '영유아 동반자'와 '고령자'로 법이 정한 '교통약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두 사람도 소송에 참여, 버스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500만 원씩 청구했지만 7일 패소했다. 재판부는 교통약자법이 저상버스 도입 의무 등을 부과하진 않은 데다 그 방법이 교통약자의 편리한 버스 이용을 도울 유일한 방안에 해당하진 않는다며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만 적용...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 않는 사회"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또 다른 피고들 때문에도 우울해했다. 김정미씨 등 세 사람은 버스회사뿐 아니라 대한민국과 국토교통부 장관, 서울시와 시장, 경기도와 도지사 등에게도 저상버스 도입 등 장애인들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정책을 만들고,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조주원씨와 조영실씨의 경우, 버스회사뿐 아니라 대한민국과 서울시, 경기도에게도 위자료 500만 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주장들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들의 요구는 교통약자법이 ▲ 교통사업자는 법적 기준에 따라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고(5조, 11조) ▲ 교통행정기관은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을 수립하고 저상버스 도입 등에 예산을 보태도록(6, 7, 14조 4항) 한 대목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조항들이 특정 상대방을 전제로 하지 않았고, 위반시 구제절차가 없는 점 등을 볼 때 현행 교통약자법만으로는 교통약자들이 교통사업자와 행정기관에 각자 의무를 지키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했다. 다만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문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법원이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태곤 장애우문제권익연구소 소장은 "오늘도 법원이 한계를 드러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저희 소송의 본래 목적은 장애인뿐 아니라 임산부, 노약자 등 교통약자들이 시외로 이동할 대중교통수단이 전혀 없으니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것이었다"라면서 "이번 판결은 국가 책임은 묻지 않고 민간 버스회사에만, 그것도 미약하게 차별을 시정하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미연 간사도 "(7일 판결로) 장애인들이 명절에 고속버스 타고 집에 가는 것은 달성됐지만, 국가의 책임 부분은 아니라 너무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역시 법원이 '교통약자 이동권'을 너무 좁게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박 상임대표는 "교통약자법이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국가와 지자체·교통사업자의 의무를 분명하게 명시했는데도 오늘 판결은 교통사업자 부분만, 특히 장애인의 시외버스 탑승 부분만 언급하고 국가나 지자체의 책무는 회피했다"라면서 "민간에만 책임을 물으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유포시킬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 사회가 합의한 교통약자의 이동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현실이 부끄럽다"며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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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장애인, #교통약자, #이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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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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