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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그것이 알고싶다> '인분교수'편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 '인분교수'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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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분 교수 사건'의 피해자는 가해자 장 교수 면회를 간 자리에서 "제가 그렇게 잘못했나요?"라고 물었다. "미안하다"라는 장 교수의 대답에 그는 재차 "아직까지도 제 발전을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면서요, 우리 엄마가 뭔 죄에요? 서로 평생 상처만 안고 이게 뭐예요"라면서 울먹였다. "얼굴 괜찮아져서 다행이다"라던 장 교수는 이내 질문이 이어지자 피해자보다 더 격하게 울먹이며 소름 끼치는 답변으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벌였다. 

"우리가 그 시간 동안에 너무 잘못된 악연이었어. 많이 반성하고 많이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뭐를 더 거짓말을 하고 뭐를 더 하겠니? 너도 알잖아. 나 직장 다 파면되고 연금까지도 다 파면된 것 알잖아, 응? 모든 명예 다 추락되고 이 세상에서 살 수 없는 거 알잖아. 우리 잘하려고 만났잖니(울먹이며). 너 좋은 여자 만나서 가정 잘 꾸리고 직장생활 잘하고 건강하게 살아. 응?"

원래 시간이 흐르면, 죄가 흐릿해진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사람이란. 그 후 그 죄보다 자신의 처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인면수심을 보이는 인간일지라도 그렇다. 엽기적인 행각을 저지른 장 교수는 이미 피해자에게 저지른 악행은 잊고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걱정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거창하게도 '인연'을 들먹이며.

그러나, 피해자에게 그 시간의 흐름이 같을 수는 없다. 아니, 훨씬 더디게 흐른다. 그리고 그 기억은 또렷이 각인되기 마련이다. 인분 교수 사건의 피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8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 '쓰싸와 가스' 인분 교수의 아주 특별한 수업, 일명 '인분 교수'편은 그렇게 '인분 교수' 장씨의 심리와 상황을 종합하고자 했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공분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에 앞서, 방영을 몇 시간 남겨둔 8일 오후. 자신을 '인분 교수 사건'의 피해자라고 밝힌 이는 SNS 상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방송을 사람들이 많이 봐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라면서 기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용서를 해주려다가, 하는 행동들이 너무 약 올라서 끝까지 가려고요. 많이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치명적 액체 뿌리고 비닐봉지로... "살인행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인분교수'편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 '인분교수'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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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목지장'(衝目之杖)이란 성어가 있다. 눈을 찌를 막대기라는 뜻으로, 남에게 해악(害惡)을 끼칠 고약한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피해자는 개인적인 메시지였기 때문에 "약이 올라서"라는 표현을 골랐겠지만, 마음만은 그 어떤 분노와 통탄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라.

8일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을 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 교수와 공범들의 악의를 브라운관에서 접하면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시각적 체험은 힘이 세다.

실제로 그랬다. 이미 많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취재 화면과 재연을 통해 '인분 교수 사건'을 다뤘지만, 피해자가 녹취한 목소리와 실제 녹화된 동영상 그리고 재구성된 화면을 통해 총체적으로 마주하는 '인분 교수'의 악행들은 시청자에게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행동과장격이었다던 김아무개 과장의 일상적인 그러나 현행범으로 구속하기에 충분한 물리적 폭력은 강도나 수위 면에서 '목불인견' 그 자체였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피해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실제 고문이 가해지기 직전이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장 교수가 '전기고문'과 같은 실제 고문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장 교수의 폭력이 점차 수위를 높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피해자의 과대망상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인분을 먹이는 행위가 장 교수만의 절충안이었다는 것도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가해자들이 의학이나 인체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이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뼈가 부러지고 입원해야 하는 폭력을 감내하던 피해자의 몸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보면서 고려하게 된 대체수단이 바로 인분을 먹이는 행위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절정은 캡사이신의 여덟 배가 넘는 위력을 지녔다는 고추냉이 원액이었다. 장 교수는 피부에 화상과 같은 외상을 입힐 수 있는 이 원액을 '가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얼굴에 스프레이로 이 액체를 뿌린 뒤 비닐 봉투를 씌웠다. 전문가는 이를 두고 "살인행위와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권력중독자 장 교수, 그를 완성한 것들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학회 사무국에 취업시킨 제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수년간 가혹행위를 일삼은 대학 교수가 경찰에 구속됐다.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학회 사무국에 취업시킨 제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수년간 가혹행위를 일삼은 대학 교수가 경찰에 구속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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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과도 같은 폭력 행위만 나열했다면 <그것이 알고싶다>는 연성화된 다른 시사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었을 터.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인분 교수 사건이 알려진 후 제보를 받았던 제작진은 피해자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인물들에 대한 추가 취재를 벌인다. 이로써 '권력자' 장 교수는 어찌하여 '괴물'이 됐는가에 접근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장 교수는 교수라는 직위와 업계 1인자라는 권위가 결합된 폭력 성향의 권력중독자였다. 그의 성향을 완성시킨 요소는 '한국디지털디자인협의회 회장직'과 지난 2009년 정부가 수여한 '대한민국 근정포장'. "디자인이 꿈이었다"라던 피해자가 그에게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두 타이틀이다.

15년 동안 강남대 교수로 재직한 그는 제자들을 협회 일에 동원했다. 장 교수는 2006년 이래 올해까지 한국디지털디자인협회장 직을 맡아왔다. 여타 교수직까지 좌지우지하는 업계 1인자인 그는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힘을 누려왔다. 그의 폭력 성향을 감지한 이들은 그의 영향력 때문에 관련 사실을 쉬쉬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정점은 아마도 정부가 준 근정포상이었을 것이다.

악행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회

장 교수의 폭주하는 폭력을 막을 수는 없었던 걸까.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취재를 거부하는 공범 3인과 그의 가족, 피해 정도는 비교적 경미했으나 장 교수와 함께 일하며 폭력을 경험했던 이들 그리고 겉으로는 신사적인 성격이었다던 장 교수의 권력에 빌붙었거나 동조했던 업계인들을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안의 공범 의식'이 지워버리고 뭉개버리는 '인권'이라는 이름의 권리와 희망이다.

6~7년 전 장 교수에게 폭력을 당하고 디자인 업계를 떠났다던 제보자조차 "그때 고소해버릴 걸, 지금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현실 앞에서 '인권'은 머나먼 이야기일 수 있다. 특히 '나도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일념으로 반인권적인 상황을 감내하는 '교수 사회' 먹이사슬 속 하층 계급의 상황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안의 공범 의식'을 들먹이며 쉽사리 그 하층의 누군가를 단죄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가 있다.

장 교수의 권력은 생각보다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새누리당 정책자문위원이라는 점은 이미 알려졌고, 새누리당 역시 "이름만 건 명예직"이라면서 관련성을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이 2014년 일어난 1000만 원 횡령 사건의 주범이었던 장 교수를 가벼운 벌금형에 처한 점(다른 관련자들은 실형을 구형받았다), 이것이 '근정포상'으로 대변되는 권위를 감안했다는 점은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훨씬 악랄하고 거대한 괴물은 사회가 키우는 법 아닌가.

그런 점에서 피해자에게 장 교수의 악행을 폭로할 수 있는 힘을 줬던 이가 직장 동료도, 친구도, 가족도 아닌 함께 일했던 식당의 동료 직원이었다는 점은 곱씹을 만하다. 피해자의 상황을 다소 먼 곳에서 바라보며 상식적인 상황이 뭔지, 대처 방법이 뭔지 알려줬다.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앓고 있다던 피해자에게 필요한 사회 구성원들의 도움 아닐까.

"방송과 처벌을 통해 모든 사람의 한이 풀어지면 좋겠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인분교수'편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 '인분교수'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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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서 짚지 않을 수 없겠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지난 3주에 걸쳐 큼직한 사건을 다뤘다. '세 모자 사건'과 '인분 교수 사건'이 바로 그것. 전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장기 취재의 결과물이었다면, 후자는 발 빠른 확인 취재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자에는 세 모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역전시키는 '반전'이 포함됐다면, 후자는 광범위한 제보와 상황의 재구성을 통한 총체적 접근에 가까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건사고' 전문프로그램으로 출발했던 <그것이 알고싶다>가 어느 순간, 우리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고발하는 유력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의무를 제대로 확인시켜주는 프로그램이 됐다는 사실이다. 최근 대법원의 재심 판단 여부로 관심을 끌고 있는 익산 택시기사 사건의 출발점도 <그것이 알고싶다>였다.

'여험(여성혐오) 사태'를 다룬 MBC PD수첩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점을 상기해보자. 오히려 정치와 사회를 정면으로 다뤘던 탐사프로그램이 망가지는 사이, 자기 장르를 확고히 해나갔던 <그것이 알고싶다>가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순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향후에도 '인분 교수 사건'을 계속 취재하겠다고 약속했다. 제작진은 이미 장 교수가 권력을 이용해 복귀와 보복을 꿈꿀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밝혔다. 후속 취재가 이뤄져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방송 직후 아래와 같은 글을 적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2차 피해가 가해지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사건을 통해 조금 드러났지만, 저 말고도 그에게 당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도 저처럼 보복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부디 방송과 처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의 한이 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트친'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진심어린 위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잘 이겨내고 사회에 보답하겠습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인분교수, #그것이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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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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