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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새누리당은 야당이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회의원 수 증가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 의원 수 증가'라는 논리로 철통 방어에 나선 상태다.

의원정수 늘리기가 불가능하다면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중을 조정해서라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에도 역시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만큼은 안된다는 완강한 태도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그 지역에 할당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한국 정치의 병폐 중 하나인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실시됐을 경우 "정치적 대표성의 왜곡 극복이 가능하고, 사표 등 유권자 의사가 왜곡되지 않는다는 점, 군소정당의 의회 진입으로 경쟁이 확대되는 점, 정당 책임정치 실현에 도움이 되고, 정치 신뢰회복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기대된다"라고 평가했다.

야당뿐 아니라 학계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도 정치 발전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강한 반대로 인해 이 제도가 내년 20대 총선에서 빛을 볼 가능성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호의적이었던 새누리당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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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해 새누리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경원시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당내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긍정적인 여론도 많았다. 특히 당 공식기구인 보수혁신특별위원회도 보고서를 통해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에 찬성하기도 했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보수혁신특위는 보고서를 통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보수혁신특위는 당시 "사회 양극화에 따라 소수자 배려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비례대표 정수가 적어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라며 비례대표 확대 필요성을 언급한 뒤 "비례대표는 권역별 정당명부식 정당투표 제도로 선출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현재 야당의 주장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특히 보수혁신특위 위원장이었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과거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지난 2012년 대선 경선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 문제를 해소할 방안으로 "권역별 비례 대표제 도입을 검토해 볼 만 하다"라고 밝혔다.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병석 의원도 최근 "우리나라 정치발전과 혁신을 위해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국회 차원의 논의 자체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데는 '정치적 유불리'가 자리 잡고 있다. 현행 선거제도가 계속 유지되는 게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정치적 유불리

새정치민주연합 영남지역 시·도당위원회 위원장과 당원들이 4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영남지역 시·도당위원회 위원장과 당원들이 4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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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지난 5월 발간한 '대외비' 보고서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현행 선거법의 최대 수혜자'다.

이 보고서에서 19대 총선 득표 결과를 기준으로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해 분석한 결과, 새누리당의 의석 점유율은 영남에서 7.73% 감소한 반면, 호남에서는 0.84% 증가에 그쳐 전체 점유율은 45.82%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수 의석이 무너지게 되는 결과다.

여권 관계자는 "현행 선거제도대로 내년 총선이 치러진다고 가정하고 역대 총선 득표율 등을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새누리당 승리가 확실한 지역구는 90~100개인데 반해 새정치민주연합은 40~50개에 불과하다"라며 "비례대표를 새누리당이 25석 정도 가져간다고 계산하면 접전 지역구 100개에서 새누리당은 35석 정도만 승리해도 과반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 새누리당의 과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결국 새누리당이 과반 확보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면서까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인 셈이다.

새누리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선거 룰이라는 것은 여야 간 유불리가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합의할 수 있는데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새누리당에) 마이너스가 분명한 안"이라며 "이런 제안을 받자고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새누리당에 불리한 안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안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

지난 7월 1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5년도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위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당시 모습.
 지난 7월 1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5년도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위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당시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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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입법조사처가 2012년 19대 총선 결과를 6개 권역별로 나눠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새누리당은 합당한 자유선진당 의석까지 포함해 147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정치연합도 117석으로 실제 총선 결과(127석)보다 10석이 줄어들었다. 반면 실제 총선에서 13석에 그쳤던 진보정당(통합진보당)은 33석을 얻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새누리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하에서도 비록 의석수가 과반에 못미치긴 했지만 1당을 차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박동천 전북대 교수는 지난 3일 토론회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실시될 경우 단독 과반수 확보는 어렵겠지만 원내 제1당이 될 확률은 (야권 진보정당의 약진으로) 2대 1 정도로 우위에 있다"라며 "독일 기민당의 경우처럼 보수성향의 군소정당 의석을 모아 집권도 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새로운 제도 하에서 진보정당의 약진과 이를 통한 야권의 연합정치의 확장 가능성이 싹트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틈이 날 때마다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새누리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확보해 정권 재창출을 이루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공천권을 내려놓겠다며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시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공천권을 내려놓겠다면서 개혁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여론전에 나서면서도 현재의 선거제도가 주는 기득권은 포기할 수 없다는 두 얼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새누리당이 자당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강요할 방법은 없다. 다만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다른 대안을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는다면 정치 발전을 위한 '변화' 보다는 기득권 지키기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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