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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은 세계 지성 11인을 만나 공존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문명, 그 길을 묻다>에 담았다. 인터뷰이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제레미 리프킨, 하워드 가드너, 노암 촘스키, 리처드 윌킨슨, 지그문트 바우만, 장 지글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웬델 베리, 웬톄쥔, A.T.아리야라트네 순이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은 세계 지성 11인을 만나 공존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문명, 그 길을 묻다>에 담았다. 인터뷰이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제레미 리프킨, 하워드 가드너, 노암 촘스키, 리처드 윌킨슨, 지그문트 바우만, 장 지글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웬델 베리, 웬톄쥔, A.T.아리야라트네 순이다.
ⓒ 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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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방학 날에는 해방감과 함께 책 한 권이 딸려왔다. 이름하여 <탐구생활>. 등교 대신 매일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끔 만들어둔 과제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방학 동안 <탐구생활>은 미뤄두기 일쑤였다. 방학이 중반을 넘어갈 즈음부터, 밀린 <탐구생활>은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해야 할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게다.

공존을 위한 세계 지성들과의 릴레이 인터뷰 <문명, 그 길을 묻다>
▲ 책표지 공존을 위한 세계 지성들과의 릴레이 인터뷰 <문명, 그 길을 묻다>
ⓒ 이야기가있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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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불안한 나날이다. 넘기지 못할 음식물이 식도를 막은 듯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북스러움이 스민다. 하루에도 몇 번 '지금 우리는 옳게 가고 있는 건가'라는 상념이 머리를 스친다. 이런 이질감이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는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안함을 표출한다.

마치 고도성장만 이루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채찍질에 스스로를 '소모'하며 달려왔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에 가까워졌고, 별로 수긍은 가지 않지만 '국격'은 높아졌단다. 궁금하다. 지금 우리가 브레이크 없이 달리고 있는 길은 어디로 향하는가.

저널리스트 안희경은 바로 그 답을 찾아 22만 리에 달하는 인터뷰 여정을 떠났다. 책 <문명, 그 길을 묻다>(이야기가 있는 집)는 그 결과물이다. 거인들의 목소리가 가슴을 친다. 그래, 현재의 상태를 제대로 아는 것이 곧 대책을 실천하는 시작이다.

'식인적인 세계질서'가 아이들을 '암살'한다

결론부터 살짝 공개하자면, 아직 늦지 않았다. 다만, 행동은 각자의 몫이다.

인터뷰의 시작을 연 미국 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처음부터 '돌직구'를 날린다.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단지 50년뿐이라고 강조한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은 남은 시간동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생산에 맞춰 소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에 71억 인구가 있지만 120억 인구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된다. 그럼에도 매일 기아로 5만7000명이 죽는다. 그는 "아이들이 암살당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범인은 "동족을 잡아먹는 식인적인 세계질서"다.

장 지글러 제네바대 교수도 비슷한 점을 지적한다. 그는 UN의 194개 주권국 가운데 121개국은 식량자급도, 식량주권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식량자급 국가는 아니지만 식량주권을 획득한 나라다.

식량자급은 '국경 안에 있는 인구에게 영양을 공급할 만큼의 식량을 생산한다는 의미'이고, 식량주권은 '식량자급의 실질적인 능력과 달리 금융적·경제적으로 인구를 먹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별을 망쳐놓고 다른 별을 찾겠다고요? 이것은 답이 아닙니다. 지구의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별은 이 은하계에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은하계에서 별을 찾아야 한다고요? 그 먼 곳까지 언제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불가능에 도전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지금 우리 별을 망가뜨리는 모든 일을 중단하는 데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 제래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저자

"우리 모두가 발전소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장 지글러는 기업의 이윤 문제를 설명하며 '살인'이라는 단어를 거듭 사용했다.
 장 지글러는 기업의 이윤 문제를 설명하며 '살인'이라는 단어를 거듭 사용했다.
ⓒ 안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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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래드 다이아몬드는 찬란했던 문명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이유가 '리더의 역할 때문'이라고 했다. 마야의 왕들은 백성들이 굶주리고 헐벗어가고 있는데도 품격 있는 생활을 놓지 못했고, 결국 배고픔에 지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OECD 19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따져볼 때 상위 1퍼센트 기준에서는 3위, 상위 10퍼센트에서는 2위에 해당하는 높은 집중도를 보인다. 한국보다 심각한 국가는 영국과 미국뿐이다. 책에 따르면 자살하는 사람 5명 중 1명은 생활고가 원인이었다.

나눌 몫이 적어지면 없는 사람부터 낙오되기 마련이다. 1퍼센트와 99퍼센트가 대결하는 갈등구조 속에서 함께 감내해야 할 불편한 현실은, 결국 돈 없는 사람들이 모두 떠안게 된다.

엘리트주의가 빚어낸 일종의 위계는 사회를 고착화시킨다. 가장 아래 위치한 약자는 경멸의 대상이 되고 그 힘이 강할수록 상층부의 삶은 더욱 탄탄해진다. 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여러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

그중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지적한 에너지 문제는 특히 흥미롭다. '과연 재생에너지만으로 거대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의문에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전 세계에서 40분 동안 모은 태양광으로 1년치 세계 전기 수요의 일곱 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부는 바람의 20퍼센트만으로 전체 경제가 요구하는 에너지의 7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구에는 활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원은 많이 있습니다.

우리 별의 1제곱인치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이 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단정은 기본적으로 거대 기업이 에너지를 좌지우지하려는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항상 의심합니다. 유럽은 하는데, 왜 한국은 못하겠어요?" - 제레미 리프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경영대학원 교수

국가는 늘 전력이 부족하다고 떠들어댄다. 국민들에게 '절전'을 강요한다. 마치 우리의 무절제한 전력 사용이 국가를 망하게 할 것만 같다. 그러면서 화석 연료의 대안으로 핵발전소를 홍보한다. 아, 어서 빨리 핵발전소를 지어 전력을 충당해야 해!

그러나 책에 따르면 세계에 있는 노후한 2000개의 핵발전소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필요한 에너지의 6퍼센트뿐이다. 이를 20퍼센트로 올리기 위해서는 현재 노후한 핵발전소를 모두 철거하고 40년 동안 매달 3000개의 핵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 이 결과를 설명하며 제레미 리프킨은 "핵발전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 모두가 발전소의 주인"이 돼 '에너지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 모두가 발전소의 주인"이 돼 '에너지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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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은 몇몇 회사에게만 이득이 돌아갑니다. 우리는 모든 사회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조합으로 소유할 수 있는 우리만의 에너지를 생산해야 합니다. 지금 독일이 하는 것처럼 말이죠. 모든 한국인이 자기 집 마당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이를 'Power to the people', 즉 '국민에게 권력을 쥐여줬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에너지 민주화를 통해 가능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 제레미 리프킨

보통 우리의 인식 속에 전기를 만드는 일은 기업이나 중앙정부의 절대 권력이 관장하는 일이라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돈을 내고 소비'만'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절약'뿐이었다. 하지만 리프킨의 말대로 '에너지 민주화'가 이뤄진다면 어떤 권능을 얻은 기분일 게다. 저자가 이런 느낌을 전하자 리프킨은 "그래요, 우리 모두가 발전소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라고 화답했다.

"국가가 자기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리처드 윌킨슨은 "소득 불평등이 가장 중요한 내재적 동기를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리처드 윌킨슨은 "소득 불평등이 가장 중요한 내재적 동기를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 안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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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서글펐다. 이제 돈으로 생명도 사는 시대란 생각이 들었다.

런던, 시카고, 뉴욕에 사는 부자의 기대 수명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20년이나 더 길다고 한다. 더 좋은 의료 시술 때문이 아니다. '불평등' 때문이다. 층층이 보태어져 내려오는 스트레스의 무게가 하층에 있는 사람들의 정신력을 갉아먹고 육체의 면역체계인 저항력까지 무너뜨리는 것이다.

리처드 윌킨스 노팅엄 의과대학 사회역학 명예교수는 복지 선진국의 한 부모 가정 사례를 설명하며 '자기 아이들'이란 표현을 썼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가. 국가는 마땅히 국민들에게 당장의 안전을 보장하고 가까운 미래에 버팀목이 돼줘야 한다.

"평등과 건강, 사회의 결속은 함께 갑니다. 살인율과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한다면, 거기에는 실업률이 증가했다거나 하는 등의 사회적인 원인들이 꼭 있습니다. 특히 한 부모 가정 연구에 대해 말해주고 싶은데요. 보통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발달이 좋지 않은 현상을 보일 때가 있어요.

가장 심각한 원인은 대부분 경제적인 데서 나옵니다. 한 부모 가정이 더 가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조사 결과 스웨덴과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한 부모 밑에 있는 아이들도 매우 높은 수준의 웰빙을 누렸습니다. 국가가 자기 아이들을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 리처드 윌킨스

인터뷰의 마지막 주자 '스리랑카의 간디'라 불리는 아리야라트네는 '세월호 참사'를 보며 함께 울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눈물을 흘려줬다. 정작 우리는 어떤가. 자식 잃은 부모를 향해 비하하고 경멸하는 일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혹시나 그가 알게 될까 낯 뜨겁다.

A. T. 아리야라트네는 "세월호가 물에 잠길 때 나도 울었다"고 말했다.
 A. T. 아리야라트네는 "세월호가 물에 잠길 때 나도 울었다"고 말했다.
ⓒ 안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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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물에 잠길 때 나도 울었어요. 세계가 함께 울었습니다. 뒤늦게 드러나는 보도를 보니 역시 구조의 모순 때문이었습니다. 대체 그 어린 목숨이 잠길 때까지 조직의 꼭대기에서는 무엇을 한 겁니까? 언론은 누가 주무른 걸까요? 조직의 꼭대기를 좌우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돈, 권력을 부르짖는 사람들인 겁니다. 권력과 돈이 그들의 종교가 된 거예요." - A. T. 아리야라트네, 스리랑카 최대 민중 조직 '사르보다야 운동' 창시자

그렇게 미국에서 시작한 저자의 22만 리 길은 스리랑카에서 끝이 났다. 단 한 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발언들이다. 저자가 "이 문명이 살 길은 어디인지, 길은 있는지에 대해 묻고자" 시작한 인터뷰는 11인을 거치며 "온 생명이 공존하는 그 길이 곧 인간이 하루라도 더 숨 쉴 수 있는 길"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장을 덮었지만 개운하지 않다. 뒷맛이 쓰다. 몸에 좋은 약일수록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이 쓰라림을 오래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다만 부탁하건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떨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시라. 이대로도 정녕 괜찮은가.

자, 이제 미뤄두고 미뤄둔 <탐구생활>을 시작할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문명, 그 길을 묻다> (안희경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펴냄 / 2015.07 / 1만6800원)



문명, 그 길을 묻다 -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안희경 지음, 이야기가있는집(2015)


태그:#안희경, #문명 그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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