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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지방자치제가 반쪽이나마 부활되어 기초의회와 광역의회의원 선거가 처음 실시된 이후 충남 태안군의회도 어언 24년의 연륜을 갖게 됐다. 1995년 6월 27일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들을 동시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되고 온전한 형태의 지방자치제가 실현됨으로써, 태안군의회 또한 지방자치시대의 총아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지난 24년 동안 지역의 수많은 인재들이 태안군의회에 진출하여 군정에 참여했고, 의회에 진출하려는 지망생들은 매 선거 때마다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선거 때는 인재들의 과잉 현상도 체감하게 되고, 유권자들은 친소 관계 속에서 인재들의 함량을 저울질하느라 고심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직접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태안군의회 또한 지난해 7월 1일부터 제7대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7월 15일 태안군의회는 태안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임위 설치 운영에 관한 입장을 발표했다. 지역여론에 굴하지 않고 상임위를 운영할 뜻을 밝혔다.
▲ 태언군의회 기자회견 지난 7월 15일 태안군의회는 태안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임위 설치 운영에 관한 입장을 발표했다. 지역여론에 굴하지 않고 상임위를 운영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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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인재들이 기초의회에 진출하려는 동기는 대개 '공약'으로 표출되지만, 선거운동 과정의 행동 양식에서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일차적으로는 하나같이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을 하고 싶은 선한 의지를 내비치지만, 결정적인 것은 개인의 '출세' 욕구다. 현실적인 이익과 결부되는 입신양명 욕구가 없다면 차마 그 어려운 '전쟁'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크건 작건 출세에 대한 욕구는 거의 본능에 속하는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유권자들을 하늘같이 섬기겠다고 다짐하며 극진하게 허리를 굽히던 태도는 선거 후 현실적인 권한과 예우가 등치되면서 알게 모르게 잠식해 버리기도 한다. 아울러 법으로 보장된 권한과 예우의 영역을 확대재생산하려는 의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것의 한 예가 최근 태안군의회에서 조례로 확정한 상임위원회 설치 건에서 극명하게 노출되었다. 태안군의회는 고참 재선의원들의 발의로 지역주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개 상임위원회를 설치한다는 조례를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태안군의회의 전체 구성원은 8명이다. 전국의 모든 시·군 기초의회들 중에서 가장 적은 규모다. 8명 규모의 의회에 3개 상임위원회를 설치한다면 의원들이 중복되는 운영위를 제외하고 한 개 상임위의 구성원은 고작 3-4명밖에 되지 않는다.

3개 상임위 설치에 관한 명분이 없지는 않다. 법률상 기초의회도 상임위를 설치할 수 있다는 것, 전국의 기초의회 중 75% 가량이 상임위를 운영한다는 것, 상임위 운영이 의원들의 전문성과 세밀성을 높이고 의정 활동의 효율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일단은 이해 가능한 일이다. 의원들의 전문성과 세밀성 제고, 의정 활동의 효율성을 위해 국회도 광역의회도 상임위 체제로 운영되며, 의원 수가 많은 시·군 기초의회들도 상임위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태안군의회 상임위원회 폐지를 주장하는 지역의 원로들과 30여 개 사회단체 대표 200여 명이 지난 7월 15일 태안문예회관 소강당에 모여 <태안군의회불합리조례폐지촉구군민회>창립총회를 열었다.
▲ 군민회 창립총회 태안군의회 상임위원회 폐지를 주장하는 지역의 원로들과 30여 개 사회단체 대표 200여 명이 지난 7월 15일 태안문예회관 소강당에 모여 <태안군의회불합리조례폐지촉구군민회>창립총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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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법률상 기초의회도 '상임위를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은 강제 조항이 아니다. 의무 사항이 아니라는 말이다.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은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같다.

전국의 기초의회 중 75% 가량이 상임위를 운영한다고 해서 태안군의회도 반드시 따라가야 할 필요는 없다. 상임위를 운영하지 않고 있는 25%가량의 기초의회들을 본받거나 보조를 맞추는 것이 태안군의회 처지에서는 마땅하다.

이웃 서산시의회는 의원 수가 13명이다. 의원 수로 보나 살림살이 규모로 보나 상임위 설치는 당연하게 보인다. 우리 태안군과 비슷한 청양군의회도 상임위를 운영한다고 하지만, 청양군의회가 그런다고 해서 우리 태안군의회도 따라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상임위 설치가 의원들의 전문성과 세밀성을 제고시키고 의정 활동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은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보장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10명 이내의 의원들은 소규모 정예라는 긍지와 책무를 가지고, 일당백일 필요가 있다. 다방면으로 공부를 해서 식견을 넓히고, 의원 전원이 모든 군정 사안에 대해 토론과 논의를 거쳐 조율을 해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모습이다.

고작 3명꼴인 상임위는 모양새부터 불안하다. 3명 중 한 명이 결석하면 2명이 쑥덕쑥덕할 수도 있다. 3명의 상임위는 이해관계를 지닌 어떤 대상에게 완전히 노출이 된 상태를 면할 수도 없다. 8명의 전체 의원들과는 달리 3명의 의기투합을 이끌어내기는 식은 죽 먹기일 수도 있다. 한 개 상임위의 결정 사항을 본회의에서 충분히 검토한다고는 하지만, A상임위의 결정 사항을 B상임위가 반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3명 상임위는 위험 요소를 많이 지니지 않을 수 없다.

3개 상임위를 설치함으로써 별도의 운영비가 주민혈세로 지출된다. 상임위원장에게는 의회 부의장에 준하는 활동비(체크카드)가 지급된다고 한다. 3개 상임위의 연간 운영비가 2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가뜩이나 쪼들리는 군 재정 형편으로는 과중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상임위를 설치하지 않고도 태안군의회 의원들은 다방면으로 전문성과 세밀성을 키워갈 수 있다.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표를 줍는 처지이니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며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이야 비난할 수 없지만, 현장 투어 못지않게 도서관에 박혀 공부하는 모습도 보여야 하는 것이다.

<태안군의회불합리조례폐지촉구군민회>는 '군민의 소리' 인쇄물을 발간 배포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태안군의회 운영위 폐지를 청원하는 서명 작업에 돌입했다.
▲ ''군민의 소리' 발간 배포 <태안군의회불합리조례폐지촉구군민회>는 '군민의 소리' 인쇄물을 발간 배포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태안군의회 운영위 폐지를 청원하는 서명 작업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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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태안군의회 의원들의 모습은 부정적인 면도 많았다. 의원들 간에 감정적인 법정 싸움이 오래 지속되어 지역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군민들을 피로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7대 들어서도 연수라는 이름의 해외여행을 자제하겠다고 공언해놓고는 몇 달 후 슬그머니 그 약속을 파기한 일도 있었다.

대통령도 공약들을 마구 파기하거나 잊어먹는 일이 비일비재한 나라에서 기초의회 의원들의 공약이야 대수로울 게 없지만, 좁은 지역사회에서 얼굴 부끄러울 일은 없어야 한다.

제7대 태안군의회는 상임위 설치로 말미암아 대다수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심각한 양상이다. 입법 예고 때부터 반대 여론이 비등했는데도 태안군의회는 고집을 꺾지 않아 주민들은 여러 단체들이 참여하여 <태안군의회불합리조례폐지촉구군민회>를 결성하고 8개 읍·면 주민들을 대상으로 서명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비용과 노고가 소요되고, 시간 손실이 쌓여간다. 태안군의회 상임위 운영을 반대하는 절대 다수 주민들의 여론이 여러 경로로 포착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태안군의회는 속히 결자해지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태안군의회와 지역사회를 위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과 <태안미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안군, #태안군의회, #태안군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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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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