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가사 中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타고 다니던 지하철인데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는 이 지하철이 움직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보다 훨씬 더 신기한 일들이 많았다.

늦은 밤 지하철 운행이 끝나고 나면 캄캄한 선로 위를 달리며 안전 점검을 하는 직원들이 있다. 그들은 손으로 펌프질 하면 움직이는 조그만 레일 바이크를 타고 선로 위를 달리며 곳곳을 점검한다. 차량 기지창에 입고된 정비 차량만 야간 시간에 정비를 하는 줄 알았는데 역사 천장에 설치하는 역사용 IVTS 설치작업을 하러 나갔다가 전체 구간에 많은 사람들이 잠도 자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낮 시간에 운행되는 지하철은 모든 승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낮 시간에도 승객들을 태우지 않고 시범운행하는 열차가 있다. 해당 열차는 정상적인 노선을 달리지만 실내에 소등을 한 채 역사에 멈추어도 출입을 개방하지 않는다. 역사에 그런 열차가 들어 올 때는 시범운행 하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방송이 나오기는 하지만 평소 일반 사람들이 그런 열차를 만나긴 힘들다.

시범운행 열차에 IVTS가 설치된 경우엔 시범운행 열차를 타고 노포-신평 전 구간을 왔다 갔다 해보기도 했다. 기지창에 전동차가 세워진 채로 행선 안내 설정기와 방송기를 켜 임의로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것보다 실제 노선을 달리는 열차 안에서 IVTS가 정상 작동되는지 확인할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부산지하철 1호선 전동차에 설치된 IVTS
▲ IVTS 부산지하철 1호선 전동차에 설치된 IVTS
ⓒ 미르파크의 기차여행 이야기 블로그

관련사진보기


부산지하철 1호선의 구간인 노포에서 신평까지는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모든 승객들이 하차를 한 뒤, 회차구간 진입한다. 열차가 멈추면 기관사는 좁은 기관실에서 나와 반대편 기관실로 이동한다.

우리가 노포역에서 회차 점검을 하는 날이면 반대편 기관실로 이동하는 기관사들과 만나게 된다. 기관사분들과 우리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런 날들이 하루 하루 쌓여가면서 기관사분들과 조금씩 가까워졌고 시범운행 하는 열차의 기관석에 동승해 퇴근을 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은 총 45편성의 열차가 있다. 그 중 상당수의 열차가 노포 차량기지 소속 열차이고 일부가 신평 차량기지의 열차다. 노포 차량기지에 소속된 열차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가 상주하는 사무실이 노포 차량기지에 마련되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이 설치된 열차가 신평 차량기지의 소속 열차도 있었기 때문에 해당 열차에 작업이 있는 날이면 신평 차량기지로 이동을 하곤 했다.

신평 차량기지에도 우리 사무실이 있었다. 하지만 평소엔 사람이 상주하지 않고 신평 작업이 있는 날만 찾아가다보니 오랫만에 찾는 날이면 먼지가 소복히 쌓여 있곤 했다. 그런 날은 낮에 일찍 넘어가 청소부터 해야 했다.

그래도 나는 신평에서 작업하는 날이 좋았다. 그 이유는 신평역 앞에 있던 '뼈다귀 해장국' 가게 때문인데 20년을 살면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여태 먹어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오래 근무한 선배님들은 그 해장국집이 아무리 맛있어도 예전부터 꾸준히 먹어왔기 때문에 가끔은 다른 음식을 먹고 싶었을 테다. 그런데도 막내인 내가 그 집 해장국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나와 함께 신평 작업에 가는 날엔 더이상 묻지도 않고 나를 그 가게로 데려가곤 했다.

외식의 '신세계'...7kg 불어 났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어려운 환경에서 살다보니 우리집은 '외식'이라는 게 없었다. 나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뭔지 물으면 학교 다닐 때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던 '분홍 소시지'였다. 당시 친구들이 가족들과 함께 주로 하던 외식 메뉴는 '돼지갈비'였는데 어릴적부터 제대로된 고기를 먹어본 적 없던 나는 소시지나 햄이 아닌 진짜 '고기'를 먹을 줄 몰랐다.

중학교 시절 나와 15살 차이가 나는, 나와는 성씨가 다른 작은형이 농구를 좋아하던 나에게 옷을 선물해 주겠다며 나를 부산 남포동으로 데려갔다. 지금은 우리 작은형수님이 되어 있는, 당시 형의 여자친구에게 나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우리 형수님도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신 분이라 그런지 우리 집안 사정을 잘 이해해 주고 우리와 한 가족이 되었다.

그 날, 부산 남포동 시내에서 처음으로 패스트푸드 햄버거 가게에 갔다. 카운터 앞에선 나에게 뭘 먹을 거냐고 묻는 종업원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메뉴라고는 '감자튀김'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고 작은형이 나서서 주문해준 음식이 '불고기버거세트'였다. 그렇게 나는 세상의 문명과는 떨어져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직장에 취업을 하면서 거의 매 끼니를 바깥 음식으로 먹기 시작했으니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내 몸무게는 55kg이 채 되지 않았다. 뱃살은커녕 윗통을 벗으면 갈비뼈가 보일 정도였다. 살아오며 '맛있다'라고 생각한 음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먹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신세계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 스무살, 그 회사에서 근무한 7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몸무게는 7kg이 늘어 60kg을 돌파했다.

29편성은 귀신 붙은 열차야

지각할 것 같아도 29편성 열차는 그냥 보냈다
▲ 귀신붙은 열차 지각할 것 같아도 29편성 열차는 그냥 보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총 45편성의 열차 중 당시 우리 제품이 설치될 열차는 33편성이었다. 1~28편성 그리고 30~34편성에 우리 제품을 설치했다. 연속으로 33편성의 열차에 설치 하지 않고 29편성 열차를 건너뛴 것에 대해 나는 왜 그런지 궁금했다. 이유를 묻는 내게 과장님이 해주신 말씀은 충격 바로 그 자체였다.

오랫동안 지하철 관련 업계에 종사해온 과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29편성 열차는 업계에서 일명 '귀신 붙은 열차'로 유명하다고 했다. 당시 지하철 역사에는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지하철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사람이 선로에 떨어져 인명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특히 29편성 열차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명 피해를 입었고 그 뒤로 29편성 열차에는 죽은 사람들의 원혼이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제품도 29편성은 설치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씀 하셨다.

물론 나를 놀리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29편성 열차에도 IVTS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과장님의 그 말씀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출근길에 지각할 것 같아도 29편성 열차가 들어오면 보내고 다음 열차를 타곤 했다. 그만큼 나의 스무살은 지금과 달리 순수했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태그:#지하철, #차량기지, #기관사, #외식, #귀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