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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의 한 장면.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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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 속 악당 조태오는 결국 수갑을 찬다. 명동 한복판, 형사 서도철은 이 재벌가 자제를 잡기 위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맞고 또 맞는다. 체포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시민들의 카메라에 굳이 찍히기 위해서다. 영화는 그렇게 일단락된다. 안도하는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여기서 끝날 수 없다. 최소한 조태오 같은 인물은 구치소나 교도소에 잠시 갇히기만 하는 벌을 받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5일 1000회를 맞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여준 현실이 이를 증명했다.

최소한 '돈'을 가진 그들은 1인실에 배정된다. 이른바 '범털'이다. 빈털터리인 '개털'들이 노역을 살고, 다인실에서 버둥거리고, 볼품없는 '콩밥'을 먹을 때, '범털'들은 '교정 호텔'에서조차 특권을 누린다. 지겹고도 지겨운 그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진리.

'범털'들은 변호사 접견으로 온 하루를 보낸다. 누구는 2년간 1382회의 변호사 접견을 했다. 종종 담장 밖에서 온 의료진에게 진료도 받는다. 엄격한 일과시간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휴식도 취하고, 생방송으로 TV도 본다. 새 옷을 입고, 특별한 명찰도 단다. 의료함을 가장한 식통에 담겨진 사식까지 먹는다. 그러다, 특사나 형집행정지, 집행유예로 석방된다.

'재벌'이라서다. 돈이 많아서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사면 해준 최태원 SK 회장이 그랬고, '땅콩 회항' 조현아가 그랬고, (한화 김승연 회장으로 추정되는) 또 한 명의 재벌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교정시설에서 재벌들을 비롯한 돈 좀 있다는 이들은 어김없이 호화(?)로운 생활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진리를 실천한 것이다. 그 앞에서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다시 한 번 한국사회의 '정의'를 물었다. 적어도, 재벌 앞에, 돈 앞에 '정의'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시 한 번 파헤친 '무전유죄 유전무죄'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의 한 장면.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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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이던 2000년 직전부터 2년간, 강원도의 한 교도소에 있었다. 수감이 아닌 군복무 때문이었다. 지금은 폐지된 법무부 소속 경비교도대로 군복무를 하며,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도 "담 너머는 들어갈 수 없었다"던 그 교정시설 안에서 본 실상을 생생히 기억한다. 국방부 시계만큼이나 법무부 시계도 더디게 갈 뿐더러, 환경이나 인식이 쉬이 바뀌지 않는 곳이 바로 교도소요, 구치소다.

'개털'과 '범털', '소지'와 '의무과장', '사식'과 '변(호사)접(견)' 등 익숙한 교도소 용어가 등장했던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며, 몇 가지 격한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개털'들이 겪는 멸시와 수모는 한국의 교도소 내 인권이 얼마나 취약하고 수준 이하인지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교도소 내에서 수용자들은 통칭 '도둑놈'으로 불린다. 어떤 죄를 지었건, 형이 몇 년이건 상관없다. 냄새나고 춥고 비좁은 교정시설 내 수감방은 다시는 들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분명하다.

그중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의료 시설이다. 약품의 종류도 빈약하거니와 대충인 진료는 기회조차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20%는 진료를 거부당했다거나  수감기간 동안 병을 키워 죽음을 맞게 된 사연을 들려준 건 결코 엄살이나 엄포일 수 없다. 2012년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2012~2016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에도 '수용자 처우 향상을 위한 행형법의 개정' 중 '의료처우 개선'은 핵심 추진 과제로 설정돼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법은 현실을 쫓아가지 못한다. 심지어 국내외에서 지탄을 받고 있는 인권위의 권고는 힘을 잃은 지 오래다. 교정시설의 외양과 시설 자체가 발전했다고 해도,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1000회가 파헤친 실소가 터져 나오는 상황들이 바로 그랬다.

"교도소에서 확인하게 되는 건 '돈에 대한 확신'"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의 한 장면. 석방 중인 조현아의 모습.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의 한 장면. 석방 중인 조현아의 모습.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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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에 이것저것 한정된 재료를 넣어 섞어 먹으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넘어갈 맛이라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최고의 찬사는 다 나왔던 것 같습니다." (조현아의 법정 제출 반성문 중에서)

그럴 리가. 교도소 '콩밥'에 최고의 찬사를 보낼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란 여유로운 표현이라니. 최고급 땅콩으로 승무원들에게 시비를 걸고, 와인까지 마신 상태에서 비행기를 회항시킨 장본인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해도 이상하다. 사람이 급변하면 죽을 때가 가까웠다고 했다. 심지어 우리 교정시설은 그런 '교화의 천국'도 아니다.

브로커까지 고용해 특권을 누린 조현아는 결국 143일 만에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재벌들은 반성도 빠르고, 우리 법무부와 법원은 그 반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반면, 교도소에서 중병이 악화된 한 재소자는 형집행정지를 받은 지 하루 만에 식물인간이 됐다. 재벌이나 정치인들이 병환을 이유로 그리도 흔하게 받는 형집행정지. '개털'들은 식물인간이 되기 직전에나 받을 수 있다.

'한화 김승연(조울증, 호흡곤란), 정치인 서청원(심혈관 질환), 기업인 박연차(어깨와 심장치료), 세중 천신일(고혈압과 척추질환), CJ 이재현(신장이식 부작용), 대우 김우중(고령 심장병), 대한항공 조현아(우울증, 외부 의료진 방문)'

<그것이 알고싶다>가 나열한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수감 중 병환 리스트다. 멀쩡한 사람도 골골댈 수 있는 것이 교도소나 구치소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들이 누린 특권을 생각하면, 그리고 '휠체어 포토타임'에 이은 형집행정지나 특사가 다반사인 우리네 현실을 떠올려보면, 서민들의 공분이 활활 타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히나 <그것이 알고싶다>가 첫머리에 올린대로 라면을 훔친 '잡법'보다 대부분 경제범이거나 특수범죄 가중처벌을 받는 재벌들이 비슷한 양형을 받고, 더 빨리 출소하는 현실은 이러한 분노를 부채질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 그 '돈'이라는 미끼를 무는 공범들이 버젓이 활약한다. 브로커가 활개하고, 구치소 의무과장이 편의를 봐주고, 일반 교정 공무원들이 설설 기는 시스템은 인권 앞에 돈, 정의 앞에 권력이란 당면한 현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무력감을 선사한다. 제작진과 만난 12번째 제보자의 경험담이 무게감을 가지는 까닭은 그래서다.

"거기 안에 계시는 분들이 양심적인 가치, 기준이 법보다 낮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범법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거를 이제 키워야 하는 게 교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안에서 기를 수 있는 마음은 돈에 대한 확신밖에 없어요. 돈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거를 들어오기 전보다 아마 더 뼈저리게 느끼고 나갈 거예요."

정의보다 불의가 먼저인 한국... <그것이 알고 싶다> 장수할 수밖에

지난 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현 진행자인 김상중의 모습.
 지난 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현 진행자인 김상중의 모습.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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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인 김상중은 이런 멘트를 날렸다. "담장 안, 그곳은 가두는 곳이 아니라 바꾸는 곳이여야 한다"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품었던 그릇된 생각을 지우고, 그 자리를 정의로 채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한국 사회의 '정의'를 되돌아보고자 대대적으로 1000회를 홍보했던 제작진이 사회의 밑바닥인 교정시설을 들여다 본 것은 꽤나 시의적절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8.15 특사가 찬반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베테랑>의 모티브가 된 '맷값 폭행' 범죄자의 친척인 SK 최태원 회장이 석방 후 '경제 살리기' 운운하며, '땅콩 회항'에 이어 '브로커 사건'의 당사자임에도 조현아씨가 버젓이 석방되는 대한민국. 지난달 31일 방송된 <힐링캠프>에 출연한 김상중이 1000회의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늘 반복해서 계속 얘기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또 분노하게 됩니다. 굉장히 미안하죠. (시청자들에게) 알려만 주고, 제대로 해결해주진 못하니까. <그것이 알고 싶다>가 계속 관심을 받는 건, 그런 (억울한)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반증일 겁니다. 그래서 계속 해결하기 위해서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거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고요. 상황이 주어진다면, 진실의 문이 열릴 때까지 계속 두드리면서 진행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일부 종편이 이른바 전문가들의 개인 의견을 빙자한 헛소리로 전파를 낭비하게 된 사이, 한국 지상파 방송의 탐사보도 기능은 급격히 약화됐다. KBS와 MBC가 그렇게 무력화되는 사이,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승승장구했다. 주로 과거 강력범죄를 조목조목 파헤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를 바탕으로 공권력과 검경과 사법 제도의 무능을 꼬집는 귀결로 나아가기 일쑤다.

땅콩회항이나 세 모자 사건, 인분교수 사건과 같은 현안(?)들을 제보에 힘입어 발빠르게 취재하기도 한다. 영화로 치면, 한 편의 스릴러와 같이 '장르성'에 기대는 듯 하지만 결국 과녁은 한국사회의 이면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그것이 알고싶다>는 '정의'라고 말한다.

결국 어떤 형태의 '불의'를 파헤치고, '정의'를 강조하는 이 보도프로그램의 수명은 길고 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완결된 스토리를 자랑하는 완성도도 한몫을 단단히 하지만, 한국사회가 여전히 '정의'보다 '불의'가 힘이 센 사회이기 때문에. 


태그:#그것이 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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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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