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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약속한 날에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오는 길이라 조금 늦을 수 있겠다며 약속시간 조정을 요청했다. 조정한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방문하니, 서진원(40) 우리술연구소 소장은 쌀가루를 빻느라 정신이 없었다.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도 서 소장의 작업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문을 연 지 일주일밖에 안 돼 내부 정리가 안 됐고 들여와야 할 장비도 부족한 사무실이지만, 쌀가루를 빻고 찌느라 발생한 뽀얀 연기가 포근하게 느껴졌다. 서 소장에게서 우리 술의 매력이 뭔지 들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시음한 청주(淸酒)의 달짝지근한 맛이 쉬이 잊히질 않는다.

전통방식으로 담근 술, 전국 1등 차지해

서진원 우리술연구소 소장이 쌀가루를 빻아 찜통에 쪄낸 후 식히고 있는 모습이다.
 서진원 우리술연구소 소장이 쌀가루를 빻아 찜통에 쪄낸 후 식히고 있는 모습이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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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술대회가 있어서 출품하고 오는 길이었어요. 술 이름이 옛 문헌에 있는 백수환동주(白首還童酒)인데 백발노인이 마시면 머리가 검게 돼 회춘한다는 술이죠. 그 술을 복원하는 대회예요. 대상 받으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죠."

일반 누룩이 아닌 녹두 누룩으로 빚는다는 이 술은 녹두를 주성분으로 하는 특별한 술이다. 전국 대회가 있다고 해 처음으로 출품해 봤단다. 하지만 그의 술맛은 이미 두 달 전 전국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서울 방배동에 있는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동문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씩 '삼해주(三亥酒)'를 만드는 대회를 연다. 삼해주란 십이지(十二支) 중 열두 번째인 돼지날(해일:亥日) 중 정월 첫 해일에 시작해 12일에 한 번씩 3회에 걸쳐 빚는 술을 말한다.

지난 7월 2일 열린 대회에 전국에서 동문 30여명이 참가했는데, 서 소장은 압도적인 표차로 1등을 차지했다.

"참가자와 시음하러 온 사람 100명이 투표했는데, 우리 술이 53표를 받았어요. 압도적인 이유요? 고문헌(古文獻) 방식으로 만들어서 개량적으로 만든 데와 비교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주효했던 거 같아요. 고문헌 방식이 현대 입맛에도 맞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술을 잘 빚는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이번엔 전문가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2005년 가양주모임 '술 빚는 사람들' 시작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현 인천평화복지연대) 남지부 사무국장이었던 서 소장은 2005년 처음으로 가양주 모임을 시작했다. 가양주(家釀酒)란 집에서 담근 술을 말한다. 정형서 우리술연구소 대표가 서울에서 술 담그는 법을 배우고 와 좋은 술을 만들어 먹자라는 취지로 인천연대 회원들을 대상으로 '술 빚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술이 아니라 식초 수준이었죠. 2010년부터 안정적으로 술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남구의 지원을 받아 가양주학교를 하기도 해, 모임 회원을 늘렸습니다. 가양주학교는 2011년부터 4년째 하고 있는데, 대기자가 많을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가양주학교가 끝난 후 한 달 주기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도 늘었다. 술이 익는 시간이 한 달이라 모임 주기가 그런 것이며, 모임 때마다 한 달 전에 담근 술을 갖고 오고 새 술을 또 담근다. 가지고 온 술을 음미하며 서로 비교하는 모임은 매번 축제이다.

'술 빚는 사람들'은 2008년부터 매해 문학산 정상에 주둔한 군부대의 개방을 요구하는 의미를 담아 문학산 축제를 벌였다. 군부대 때문에 정상을 오르지 못하고 있어 개방을 요구하는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부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학산에는 술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전설을 지닌 '술바위'도 있어, 두 가지 의미를 담아 축제를 했다.

가양주의 매력에 푹 빠져 재작년에는 전북 고창까지 가서 술 담그는 법을 배우고 왔다. 보름간 합숙교육이었다.

"건강하고 좋은 술을 마시는 게 좋죠. 또한 술이 익어가는 과정이 아름다워요. 효모가 발효하면서 보글보글 익어가는 소리를 내는데 항아리에 귀를 대면 비오는 소리처럼 들려요. 효모가 살아있는 걸 느낀다니까요."

남구 숭의동 평화시장에 둥지를 틀다

 기계를 이용해 쌀을 가루로 빻고 있는 장면.
 기계를 이용해 쌀을 가루로 빻고 있는 장면.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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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곳곳에서 강의하고 있는 서 소장은 개인이 술을 담그기는 쉽지 않아 안정적으로 술을 빚는 공방을 만들고 싶어 했다.

"술 빚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인천에는 없다보니 비싼 가격으로 서울로 배우러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술을 담그려면 쌀가루를 빻고 쪄야하는데 개인적으로 하기에도 어렵고요. 마침 올해 초에 남구에서 창작 공방 입주자를 모집하는 공고가 나와서 지원했습니다."

전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라는 숭의동 평화시장 상가는 현재 노인 13명만 살고 있고 비어있는 점포도 많다. 남구에서는 평화시장 활성화를 위해 점포 8개를 구입해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입주 신청을 받았다. 최장 3년 무상임대를 지원하는 남구는 매해 심사해 입주 단체를 선정한다.

"젊은 작가들이 모여들고 있어 무엇인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희는 한 달에 한 번씩 여기 사시는 어르신들과 동네 주민들을 모셔서 잔치를 할 예정이에요.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서 저희가 담근 술을 대접하는 거죠. 또, 어르신들이 좋은 술을 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경로당을 찾아가 어르신들께 술 담그는 법을 알려드릴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술연구소는 비영리 임의단체다. 내년 1월에는 인천시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해 더 많은 사람이 가양주의 매력을 느끼길 바라는 서 소장은 더 나아가 전통주를 만드는 협동조합 방식의 술도가 창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세법'이 개정돼, 하우스맥주는 2002년부터 판매하고 있다. 내년에는 하우스막걸리법이 통과될 예정이다. 그러나 1000리터 이상의 규모를 갖춰야만 허가가 나, 서 소장은 고민이 많다. 이미 가양주의 맛에 빠진 회원들의 요구가 높아 술집을 직접 운영할지도 고민하고 있다.

술이 건강에 좋다고?

8월 23일 숭의평화시장 창작공간 오픈식을 했다. 숭의평화시장 건물은 전국 최초 주상복합건물이다.
 8월 23일 숭의평화시장 창작공간 오픈식을 했다. 숭의평화시장 건물은 전국 최초 주상복합건물이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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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소장은 계속 '건강에 좋은 술'을 강조했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 건강에 약간 긍정적 작용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과연 술이 건강에 좋을까?

"가양주에는 장을 편하게 하는 유산균이 많아요. 현대인들은 항생제를 많이 먹어 장에 단조로운 세균만 있어 소화가 잘 안 되는데, 우리 술에는 좋은 세균들이 많아 장에 좋습니다. 판매하는 술과 다르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못 마셔요. 술에 취하면 진짜 졸리거든요. 다른 술보다 빨리 취하고 빨리 깹니다. 술 마신 다음날까지 속 아프고 못 일어났다는 사람을 못 봤어요. 어르신들이 마셔도 좋은 술이죠. 예전에 병들어 식사를 못하는 사람에게 공양했다는 술도 있어요. 쌀로 만들어 식사대용이 되기도 하고, 알코올이 있어 진통작용도 하니까요. 고문헌에는 술의 종류가 600여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사무실 리모델링 준공이 8월 13일에 확정돼, 8월 22일에 입주 오픈식을 했다. 전기시설이 들어온 지도 3일밖에 안 됐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갖춰 논 게 없어 마음이 급하다는 서 소장은 인테리어를 마무리하고 10월부터는 이곳 우리술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가양주 만드는 법을 확산해 집집마다 가양주가 익어갔으면 좋겠다는 서 소장은 그것보다 더 큰 꿈이 있다.

"고문헌이나 지금 발행되는 책들은 술을 만드는 방법만 나왔어요. 우리술연구소에서는 효모나 누룩이 어떤 작용을 해 발효되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할 겁니다. 인천에 있는 대학 미생물학과나 식품영양학과 등과 협력해 논문을 발표하고 가능하다면 출판할 계획입니다. 어떤 원리로 술이 익어가는지를 알면 우리 술의 장점에 더 신뢰가 가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서진원, #우리술연구소, #술 빚는 사람들, #가양주, #숭의평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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