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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 위에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정명, 한규협씨가 불법파견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9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료진이 농성장을 찾아 부상을 입은 한규협씨를 치료하는 모습.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 위에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정명, 한규협씨가 불법파견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9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료진이 농성장을 찾아 부상을 입은 한규협씨를 치료하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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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위 전광판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한규협입니다. 9월 11일인 오늘은 저와 같은 기아차 비정규직인 최정명씨와 함께 "하늘감옥"이라 부르고 있는 전광판 위 옥상에 올라간 지 93일째 되는 날입니다. 지난 6월 11일 목요일, 뜨거운 여름 날씨 속에서 "정몽구 회장이 책임지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하라"라는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지상 70m 위로 올라간 지 3달이 다 된 지금, 쌀쌀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희는 기아자동차를 만드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기아차에는 저희와 같은 약 3500여명의 비정규직들이 여러 형태의 공정과 작업을 정규직과 같이 담당하며 기아차를 만들고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사내하청이라는, 기아차 공장 안에 또 다른 하청 회사에 속한, 정규직과 같은 라인에서 동일한 작업을 하며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많은 이슈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100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 노동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정규직 임금의 50~60% 밖에 받지 못하는 노동자,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해 일회용처럼 쓸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쓰고 때가 되면 버리는 짓을 하나 봅니다.

콘센트 하나 꽂을 때도 기아차 직원 허락 받는데...

제가 다니는 기아차(현대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0년간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원에 총 7차례 소송을 걸었습니다. 자동차 공장 안에서 사내하청은 불법이고, 이에 따라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에 대해 법원은 "파견근로법 제5조에 근거한, 명백한 불법이다"라는 내용으로, 7차례 모두 동일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지난해 9월 25일 1심 소송에서 같은 판결을 받고, 소송자 전원이 정규직 판결을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대기아차 원청에서는 저희들에 대해 아무런 일언반구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현대기아차 실질적 최고책임자인, 정몽구 회장이 책임지고 법원 판결 이행하라"라는 요구안을 가지고 공장 안에서, 정몽구 회장 집 앞에서, 한남동 기아차 본사 앞에서 수많은 노숙농성과 집회를 해보았지만 대답은커녕,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의문과 억울한 감정, 분노 등이 뒤섞이며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왜 현대기아차라는 거대 재벌은, 법원 판결까지 무시한 채 여전히 사내하청이라는 비정규직을 쓰고 있는가. 불법파견의 실제 사용주인 정몽구 회장은 왜 아직까지 처벌받지 않고 있는가. 도장공장에 일하고 있는 나는, 작업에 필요한 콘센트 하나라도 꽂으려면 기아차 직원의 허락 없이는 꽂을 수 없는, 철저한 기아차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데, 그러면 나는 기아차 직원인가, 사내하청 비정규직인가.

알리고 싶었고, 반드시 10여 년 동안 묵혀 있던 문제를 해결해야만 되는 이 비상식적인 현실에서, 최정명씨와 같이 국가인권위 건물로 무작정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올라간 지가 벌써 3달이 돼 곧 있으면 100일이 됩니다.

법원 판결대로 정규직화 이행하십시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최정명, 한규협(모자 쓴 이)씨.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최정명, 한규협(모자 쓴 이)씨.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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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달 동안은 정말 황당한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명백한 불법파견 현행범 정몽구 회장을 구속하라고 했더니, 단체협약도 무시한 채 진행된 사내하청 바지사장들의 징계 해고가 따라 왔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노조 상근자임에도 불구하고 해고를 당했습니다. 법원 판결에 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행하라 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탄압과 인권 유린 뿐이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옥상임에도 사측과 광고회사에 의해 2차례나 물, 식사, 통신조차 차단되어 1주일간의 강제 단식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정몽구 구속", "정규직 전환"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더니 농성자들 머리 밑에까지 전동가위를 들이밀며 플래카드를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법 지키라고 올라간 광고탑에서 저희는 오히려 생명의 위협과 최소한의 인권적 권리조차 무시되는 상황에 놓인, 서럽디 서러운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오히려 힘을 더 꽉 주며 버티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맞은편에서 '힘내라 최정명, 한규협 문화제'가 진행되는데, 매회가 갈수록 더 많은 시민들이 오셔서 지지해 주시고 외쳐 주십니다. 매주 화요일 SNS를 통한 응원 인증샷 데이 날에는 저 위쪽 강원도에서부터 바다 건너 제주까지, 전국의 많은 분들이 '힘내라'는 응원을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위에서는 밑으로, 밑에서는 위로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하고 같이 이야기 해주는 이 상황이 감동적이지만, 또 한편에서는 하루 빨리 이러한 비상식적 상황이 지속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는, 씁쓸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저희들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국가질서와 사법정의마저 무시하는 불법파견 현행범 정몽구 회장을 처벌하고, 법원 판결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이행하라." 수많은 시민들의 응원과 힘을 받아, 최근에는 중단되었던 정규직화 이행에 관한 기아차 원청과의 특별교섭도 다시 재개가 되었고, 이제 곧 있을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몽구 회장을 증인으로 세우려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거대 재벌과의 싸움, 쉽지 않을 거라고 많이들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나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다섯살 된 막둥이 딸의 아버지로서, 또는 대한민국 1000만 비정규직 중 한 명으로서, 또 다시 현재와 같은 삶과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런 부끄럽고 몰상식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건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백무산 님의 시 '장작불' 중에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 늦게 붙는 놈은 마른 놈 곁에 /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저희의 싸움이 하나의 불씨가 되어, 하나의 거대한 장작불이 되도록,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연대가 절실합니다. 반드시 사회 정의가 실현되고, 비상식적인 상황이 지속되지 않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런 모두의 마음을 모아 9월 12일 오전 9시 서울 한남동 정몽구 회장 집 앞에서 출발하는 9.12 희망버스에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사전 행사로 오전 8시, 정몽구 회장에게 항의 규탄하는 조깅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서울의 저희 고공농성장에서 거제 대우조선, 부산 생탁-택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을 잇는 9.12 희망버스가 모든 비정규직들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이나마 전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9.12 희망버스가 모든 노동자민중에게 칼을 들이대는 박근혜 정부에게 저항의 시작을 알리는 힘찬 경적 소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9.12 희망버스, '특별한 가을 여행' 일정>
기아차 비정규직 최정명·한규협 국가인권위 광고탑 고공농성, 94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강병재 고공농성, 157일
부산시청 생탁-택시 송복남·심정보 고공농성, 150일

■ 9월 12일(토) / 서울 기준(전국 각지 출발)
09:00 서울 한남 오거리 집결
(사전행사) 08:00 한남오거리(정몽구회장 집 앞) - 조깅하다 만나는 '몽구'
09:30 서울 버스 출발
15:30 거제 대우조선해양 고공농성장 - 연대마당
16:30 대우조선해양 4만 비정규직 만남 마당 - '희망의 배' 나누기
19:30 부산시청 생탁-택시 고공농성장 실천행동
20:30 희망버스 연대한마당
22:00 비(非)생탁 막걸리 축제
23:00 고공농성 150일, 잠들지 못하는 밤

■ 9월 13일(일)
09:00 김무성 새누리당대표 영도 의원사무실 규탄마당
- 노동시장 구조개악 중단!
- 생탁, 택시, 버스, 풍산, 만덕공동체 등 부산지역 민생 현안 외면 규탄!
- 콜트콜텍 노동자 허위발언 및 명예훼손 고발, 수사 촉구!

참가비 : 4만 원(서울 출발 기준)
문의 : 010-9633-0314
메일 : hopelabor@jinbo.net

희망버스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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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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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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