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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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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편들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남자를 편들 생각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자를 편들자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더 큰 분란이 일어나는 걸 그냥 놔두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17일 <오마이뉴스>에 톱으로 "전통대로라면 명절 음식 남자가 만들어야"라는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지난 2014년 8월 17일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을 인터뷰한 내용을 다가오는 추석에 맞춰 다시 올린 내용입니다.  

황교익이 주장한 내용 중에는 다가오는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는 데 있어 남녀 간에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내용이 있어 이를 분명히 밝히고 싶은 생각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부녀자들에게 명절은 갈등과 스트레스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는 주부 중에서 이 기사의 내용을 인용해 남자들을 공격하게 되면 또 다른 논쟁이 벌어질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 여자들에게 음식을 시키면 안 된다니?
"조선시대 때 제사음식은 다 남자가 만들었다. 대신 차례에 여자들은 빠졌다. 그런데 지금은 명절 고생은 여자들이 다 하고 남자들은 차례상 앞에서 생색만 내지 않나. 이것도 근본을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풍경이다."

위 내용은 해당 기사 중 일부입니다. 황교익은 '조선시대 때 제사 음식은 다 남자가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를 읽고 필자가 갖고 있는 책 중에서 이런 내용을 확인할 만한 책을 꺼내어 두루 찾아봤습니다.

황교익씨가 언급한 <주자가례>, <국조오례의>, <경국대전>, <제례등록>, <사례편람>, <종가의 제례와 음식> 등 족히 100권은 넘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남자가 제사음식을 만들었다는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필자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황교익씨가 문헌적 근거 등으로 확인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제사와 관련한 책 수십 권 어디에서도 제사음식을 남자가 만들었다는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와 관련한 책 수십 권 어디에서도 제사음식을 남자가 만들었다는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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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사와 설·추석에 지내는 차례 정도로만 구분되지만 조선시대에는 제사 종류가 참 많습니다. 사시제, 초조제, 선조제, 기제, 세일사(시향) 등으로도 구분되고, 왕가제사와 일반인들이 지내는 대부사서인 제사로도 구분되었습니다.

왕가 제사는 날 것 올리는 생제, 일반인 제사는 익힌 음식 올리는 숙제

왕가(王家)에서 지내는 제사는 제사음식을 익히지 않고 생으로 올리는 생제(生祭)였습니다. 전사관(典祀官)에 소속된 남자 관원(官員)들이 제기(祭器)를 닦아 진설하고 제사가 다 끝나면 철찬(撤饌)까지 하였습니다.

따라서 왕가의 제사만을 놓고 본다면 제사 음식을 다 남자들이 준비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지내는 대부사서인 제사는 음식을 익혀 올리는 숙제(熟祭)입니다. 부녀자들이 제기를 씻고 제수를 장만하고 철찬 역시 부녀자들이 했습니다. 남자는 진설만 합니다. 다만 생(牲, 제사용 소·양·돼지 등)을 도살하는 일은 남자가 했습니다.

요즘 우리가 지내는 차례는 익힌 음식을 올리는 숙제입니다. 따라서 조선시대를 따른다 해도 제사음식은 부녀자들이 만드는 게 당연합니다.  

유교론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들먹이고 있는 <주자가례> 제사와 오늘날 우리가 지내고 있는 제사가 다른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주자가례>에서는 아헌관(제사를 지내는 순서에서 두 번째로 술을 올리는 사람)이 주부(제주의 아내)입니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부녀자가 술잔을 올리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은 확인되지만 제사음식을 남자가 만들었다는 건 확인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불알 떨어진다고 야단을 맞던 게 우리네 정서입니다. 정서적으로도 제사음식은 남자가 만들었다는 것에 쉬 수긍할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 때도 제사음식은 여자가 만들었다

꼭 같은 말을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말의 무게는 달라집니다. 황교익씨는 음식을 전제로 하는 '맛 칼럼니스트'입니다. 일반인들이 "조선시대 때 제사음식은 다 남자가 만들었다"고 하는 것과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가 그리 주장하는 것은 분명 무게가 다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차례음식 준비는 부녀자들을 갈등하게 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부녀자가 이 기사에 담긴 주장을 보면 내가(부녀자) 하지 않아도 될 일로 고생을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더 받을 지도 모릅니다. 

시대가 달라지고 세태 또한 달라졌습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불알이 떨어진다고 호통을 치는 시대도 아닙니다. 어려운 일은 서로 돕고, 힘든 일은 서로 나누어 하는 것은 좋지만 또 다른 갈등을 야기시킬 수도 있는 근거가 불확실한 주장은 이제라도 바르게 알려져야 할 것입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주자가례, #황교익, #국조오례의, #경국대전, #사례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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