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지난해 3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참고인으로 검찰조사를 받으려고 변호인단과 함께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지난해 3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참고인으로 검찰조사를 받으려고 변호인단과 함께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국가정보원 증거조작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변호인단이 또 다시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아래 합신센터)의 불법성을 확인하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5단독 허윤 판사는 장경욱·천낙붕·김용민 등 변호사 5명이 합신센터의 변호인 접견 제한은 위법하다며 제기한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허 판사는 '피고 대한민국'이 변호사들에게 모두 1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도 했다.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유씨가 북한이탈주민들의 정보를 북에 넘겼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던 2013년 2월, 변호인단은 동생 가려씨를 만나려고 국정원에 6번이나 접견 신청을 했다. 유씨가 합신센터 조사과정에서 '오빠는 간첩이 맞다'고 한 동생의 증언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던 만큼, 변호인단은 가려씨를 반드시 만나야 했다.

국정원은 이들의 접견 신청을 불허했다. 본인이 원하지 않을 뿐더러 유가려씨는 피의자신분이 아니므로 변호인 접견권을 보장해야 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법원, 합신센터 불법조사에 거듭 제동

하지만 가려씨 상황은 피의자나 다름없었다. 그는 합신센터에서 오빠의 간첩 혐의에 관한 진술서와 확인서를 수십 차례 써야했고, 12번이나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또 한국에 들어온 직후 합신센터로 보내져 2012년 11월 5일부터 줄곧 독방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이 방은 밖에서만 문을 열 수 있는 잠금장치가 달려있었고, 달력도 없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합신센터 외부와 연락하는 일 역시 불가능했다.

변호인단은 합신센터의 변호인 접견 불허는 위법하므로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준항고를 제기했고 유씨가 합신센터에서 나올 수 있도록 인신구제청구도 냈다. 그런데 국정원은 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 슬그머니 유씨를 풀어줬다. 이미 가려씨가 자유로워진 뒤였지만 법원은 2014년 2월, 변호인단의 준항고를 받아들였다. 합신센터에서 북한이탈주민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분명 문제라는 법원의 첫 판단이었다.

변호인단은 유우성씨 공판 과정에서도 유가려씨 일을 언급하며 국정원이 합신센터에서 유씨의 진술을 받아낸 과정 자체가 불법이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변호인단 말대로 유가려씨는 불법구금을 당했고, 변호인 도움도 받지 못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였다고 인정했다(관련기사: 유우성 간첩혐의 무죄, '여동생 불법 구금' 인정).

허윤 판사도 "(이때) 유가려씨는 구속된 피의자와 같은 지위에 있었다"며 "그가 변호인 접견을 원하지 않는다는 형식적 의사를 표시한 적이 있더라도, 변호인 접견·교통권 불허는 위법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 국정원이 별다른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변호인들과 만나지 못하게 한 데다 ▲ 이 기간 동안 유가려씨로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한 진술을 받아낸 점 등을 볼 때 불법성이 작지 않다고 봤다.

김용민 변호사는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개인적으로 기쁘기도 하지만, 이번 판결로 합신센터를 사법적으로 통제할 길이 열렸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합신센터 안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침해가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지만, 적절한 견제나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문을 연 합신센터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머무르는 곳이다. 국정원은 이곳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탈북배경, 가족사 등을 조사한 다음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으로 보낸다. 이때 북한이탈주민은 최대 6개월 동안 합신센터 독방에서 지내며 조사를 받을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이탈주민들의 법적 지위는 불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이 구금상태로 합신센터에서 조사받는 일은 수사에 가깝다. 하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은 변호인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합신센터가 영장 없이 북한이탈주민들을 가두고, 헌법이 정한 변호인 조력권 등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관련기사: '한국판 관타나모' 합동신문센터, 헌재 심판받는다).

소송 때면 꼼수 쓰는 국정원?

김용민 변호사는 합신센터뿐 아니라 소송에 대응하는 국정원의 '꼼수'도 지적했다. 기관의 책임을 따질 때는 국가 뒤에 숨지만, 자신들이 직접 나서기 어려우면 직원들을 내세운다는 얘기였다.

2013년 국정원 수사관들은 김 변호사 등 변호인단이 유가려씨 문제로 기자회견을 열자 이 일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일부는 자신이 원고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고, 결국 소송의 기본 요건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당했다. 유우성씨 변호인단은 국정원이 '국가는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판례 때문에 수사관들을 내세운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관련기사: 국정원 이긴 유우성 변호인들이 황당해한 까닭).

그런데 이번에는 법적 근거 없이 유가려씨의 변호인 접견을 제한한 국정원 직원이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수사관 개개인들의 위법행위를 국가가 다 물어주는 셈"이라며 "결국 세금 낭비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개인의 책임을 물어야 할 때 (수사관들이) 쏙 빠지는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그:#유우성,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