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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강원 원주지역 어린이집의 모습이다.
▲ 원주지역 어린이집 지난 6월 10일 강원 원주지역 어린이집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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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복지부가 0~2세 자녀를 둔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종일반 이용을 제한하는 '맞춤형 보육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종일반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서는 취업이나 구직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제한과 함께 말이죠. 지난 2012년부터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전 나이의 아이에 대해 무상보육이 시행됐습니다. '맞춤형 보육'은 여기에서 후퇴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전면 무상보육으로 인해, 몇 년 전부터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 이용에 대한 수요가 전업맘의 아이들에게까지 확대됐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집에서 받는 양육수당보다 높게 책정되면서, 기관에 보내지 않는 게 손해라는 분위기가 조성됐죠. 결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입학 경쟁률은 워킹맘과 전업맘 할 것 없이 치열해졌습니다.

2015년 현재도 어린이집은 0세 보육비 40만6000원이 지원되는 반면, 가정 양육비는 20만 원이 나옵니다. 유치원 5세 보육비도 23만7000원이 책정됐지만, 가정 양육비는 10만 원만 지급됩니다(23일 복지부가 "가정양육수당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조정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전업맘'과 '워킹맘' 양쪽의 피해의식을 완화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지난 2년간 기관의 입학을 앞두고 치열한 경쟁률이 문제가 되자, 같은 날 입학원서 접수 및 중복지원을 금지하는 등 다양한 해결책이 나왔습니다. 2016년도 기관 입학을 앞두고 '맞춤형 보육정책'도 2016년도 기관 입학을 정하는 11월 전에 발표됐습니다. 이에 사립과 공립의 모집 시기를 이원화하겠다며 문제 해결에 고심하는 모양새입니다.

'맞춤형 보육정책'이 과연 치열한 기관 입학의 경쟁률과 맞벌이 부부 자녀에 대한 기관 수요 부족을 해결해줄까요?

무상보육 시행 후 불거진 문제, '맞춤형'도 해결불가

무상보육이 시작된 이후 기관은 종일반·반일반에 상관없이 같은 지원금을 받습니다. 수용 가능 인원이 정해져 있는 기관의 입장에서는 같은 지원금인 경우 아침 일찍 기관에 맡기고 저녁 늦게 부모가 데려가는 맞벌이 부부 아이보다, 늦은 아침에 밑겨 일찍 데려가는 전업맘의 아이를 더 선호합니다.

아이들이 몇 명밖에 남아있지 않자 부모들은 경쟁적으로 아이들을 기관에서 일찍 데려오기 시작합니다. 내 아이 혼자만 덩그러니 교실에 남아있을 생각에 마음이 편할 부모는 없으니까요. 제 경우도 그랬습니다. 기관에 아이를 맡기려고 하면 우선 "부모가 맞벌이냐?"는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통상적인 절차지만, 저에게는 "5시 이전에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들렸습니다.

쌍둥이 남매의 경우, 2011년에는 오후 6시에 데리러 가도 별 말이 없던 기관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전면 무상교육이 이뤄진 2012년에는 달랐습니다. 오후 5시만 되면 "할머니(친정엄마), 방글이·땡글이만 남았어요" 하며 데려가기를 바라는 듯한 전화가 왔습니다.

몇 번 전화를 받은 친정엄마는 쌍둥이 남매가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 가는 아이가 될까 봐 오후 4시 50분이 되면 부랴부랴 아이들을 데리러 가시곤 했죠. 유치원(사설)으로 옮긴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후 5시만 되면 쌍둥이 남매를 포함하여 늘 몇 명밖에 남아 있지 않는 답니다.

동네마다 오후 5시 하원이라는 기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법에서 정하는 종일반 12시간 보육이 지켜지는 기관을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제 주변에는 한겨울에 어린이집 문을 열자마자 난방도 시작하지 않은 기관에 아이를 놓고 나와 마음이 아팠다는 워킹맘, 친구들이 대부분 집에 가고 혼자 놀던 아이를 데리러 가자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는 아이의 워킹맘도 있습니다.

기관에서 주로 평일에 각종 외부 행사, 발표회나 면담을 하다보니 부모의 참석이 어려운 아이가 소외감이 들기도 합니다. 장기간 방학은 또 어떻구요.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육아해야 하는 워킹맘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상보육 시행 이후, 어떤 형태이든 오후 5시쯤에는 아이들을 데려가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기관의 처지에서, 맞춤형 보육을 한들 오후 5시 이후까지 아이들을 보육해야 할 이유는 크게 없어 보입니다. 이미 수년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기관의 경우, 맞춤형 보육이 실시되어도 여전히 아이들은 5시에 하원 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아이를 종일반에 보내는 워킹맘의 경우, 12시간 보육의 혜택을 누리기는 힘들 것입니다. 맞춤형 보육이 이뤄지면 반일제와 종일제 지원금을 달리 책정한다고는 종일반의 경우, 12시간 보육이 보장되는지 두고두고 확인해 볼 일입니다. 오후 5시 이후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빨리 데려 가라고 하는 기관이 없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이야기죠.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가 국·공립 어린이집의 경우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의무적으로 야간보육반을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하네요. 국·공립 어린이집이 전체 보육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수준인 상황에서, 이런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부가 만든 나쁜 경계, '맞춤형 보육'이 고착화할 것

지난 2013년 11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2013 워킹맘 엑스포에서 행사장을 찾은 여성들이 일자리 상담을 받고 있다. 

경력 단절 여성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개최된 이번 박람회는 여성 일자리 정책 및 새로운 일자리·창업 정보 제공 등 다양한 부대행사로 구성됐고, 23일까지 계속됐다.
▲ 워킹맘 엑스포 개최 지난 2013년 11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2013 워킹맘 엑스포에서 행사장을 찾은 여성들이 일자리 상담을 받고 있다. 경력 단절 여성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개최된 이번 박람회는 여성 일자리 정책 및 새로운 일자리·창업 정보 제공 등 다양한 부대행사로 구성됐고, 23일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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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만 되면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 기관의 이런 상황을 뻔히 아는 전업주부가 풀타임(9 to 6) 근무를 기본으로 하는 정규직 취업이 가능할까요? 전일제로 직장에 다니는 부부의 경우,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기관에 오전 9시 이후에 맡기고 오후 5시 이전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입니다.

근본적으로 기관의 운영 방법을 바꾸지 않는 한 맞벌이 부부의 육아 수요 부족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이 발생한 전업주부가 아이를 기관에 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일자리를 알아보기 녹록지 않은 상황이 됩니다. '맞춤형 보육'이 시행되면 재직증명서의 발급이 어려운 프리랜서나 시간제로 일하는 반(半)워킹맘, 근무지를 집으로 해놓는 개인사업자인 반워킹맘은, 종일반 보육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어찌어찌 기관을 통해 늦은 시간까지 보육을 해결했다 한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다시 일찍 하교하는 구조 때문에 어렵게 잡은 직장을 포기하고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가는 일도 허다합니다. 오죽하면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은 워킹맘을 전업맘으로 전환시키는 블랙홀"이라고 할까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던 워킹맘이 전업맘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가능 높은 시기가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합니다. 이런 보육 및 교육 구조라면 전일제 근무가 기본인 정규직으로 엄마들이 취직하는 길은 요원해집니다.

결국, 정부의 '맞춤형 보육정책'은 워킹맘의 부족한 보육 지원, 전업맘의 경력단절을 모두 고착화할 뿐입니다. 현실의 구체적인 '니즈(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은, 결국 전업맘과 워킹맘이라는 나쁜 경계를 만들어 엄마들에게 육아하기 더 힘든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육아가 힘든 건 전업맘이나 워킹맘이나 매한가지이니까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전업맘이든 워킹맘이든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정책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죠. 하지만 발표하자마자 모두가 불만을 쏟아내는 정책은 이상하지 않은가요?

"너(워킹맘)는 돈을 벌고 있으면서도 보육기관을 통해 종일반이라는 혜택을 받았으니 전업맘의 세계에서 소외당해도 마땅해."

"너(전업맘)은 시간적 여유로 육아나 교육에 대한 정보 우위를 선점하니, 보육기관의 혜택에서 제외되어도 마땅해."

주위를 보면, 전업맘과 워킹맘은 서로를 향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급한 불 끄기에 급급한 이런 식의 편 가르기 정책으로 서로 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가중하는 건 아닐까요.

가족을 유지하는 형태는 100가족이 모두 제각각의 100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죠. 워킹맘도 사실은 일하는 것 못지않게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합니다. 전업맘 역시 도돌이표 같은 가사나 육아보다 사회에 나가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개중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비용보다 월급이 적어도 맞벌이를 유지하는 부부도 있을 테지요.

정부의 '맞춤형 보육'정책이 발표되자 여성 관련 단체에서는 일제히 이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워킹맘과 전업맘이라는 나쁜 경계를 만들고 싸움을 부추기는 정책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업맘'은 집에서 노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관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건강보험공단 기자실에서 어린이집 맞춤형 보육정책 추진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복지부, 영유아 맞춤형 보육정책 설명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관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건강보험공단 기자실에서 어린이집 맞춤형 보육정책 추진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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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를 키우는 일의 가치,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회 인식과 남들과 비교하는 시선에 따른 피해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전업주부가 가사와 육아를 위해 생산해내는 가치에 대해 환산해 보신 적이 있나요?

한국 여성개발원에서 2005년도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정에서 주부가 하는 가사노동의 경제적인 가치는 월 111만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다면 10년이나 지난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높겠죠.

실제로 제가 회사에 다니기 위해 가사도우미와 육아도우미에게만 들어가는 비용이 한 달에 140만 원에 달합니다. 일주일에 가사도우미는 2회-5시간, 육아도우미는 5회-5시간을 4주로 환산한 비용이며 여기에 유치원이나 학원에 들어가는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답니다.

전업맘은 집에서 결코 한가로이 놀고 있지 않습니다. 매일의 식사, 빨래, 집안의 청결 유지를 위한 청소부터 아이들 보살핌은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된 노동을 요구합니다.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고 커피숍에서 수다나 떤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매일 이웃과 만나 수다를 떨 만큼 가사와 육아는 한가롭지도 만만하지도 않거든요. 막연히 다른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 바가 아니라 제가 직접 경험해 봐야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2년 전, 친정엄마의 병으로 휴직하면서 10개월간 전업맘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첫 두 달은 익숙하지 않은 집안일과 육아에 적응하느라고 몸살을 앓았죠. 직장을 이직하면 적응 기간이 필요하듯, 가사와 육아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사를 하찮은 일로 여기지만 가사와 육아란 적응 기간이 필요할 정도로 일종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일인거죠.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업맘과 워킹맘 양쪽 다 경험해봄으로써 어느 쪽의 일도 가볍다고 말할 수 없음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답니다.

대개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에서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집이 휴식공간이 되지만 전업주부는 집이 24시간 퇴근할 수 없는 일종의 직장인 셈이랍니다. 어쩌다 한 번, 집이라는 직장에서 퇴근하여 커피숍에서 이웃과 만나 아이들의 크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생활의 지혜들을 나누며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합니다. 이를 수다라고만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물론 회사에서 돌아와도 여전히 제2의 일터인 가정으로 다시 출근한 셈이 되는 워킹맘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내가 겪지 않는 상대방의 삶의 영역에 대한 상호 존중이 필요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일을 하고 안 하고 뿐만 아니라 소득 수준 및 아이의 연령에 따라 꽤 오랫동안 보육비 차등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요. 남자도 여자와 같이 아이 출산 및 육아에 따라 장기간의 휴가가 보장된다고도 합니다. 오랜 기간 촘촘히 보육을 지원해주는 복지정책은, 육아가 여자만의 일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해야 하는 일, 나아가 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세워져 있는 거죠.

회사의 일과 가사, 육아에 대한 올바른 가치에 대한 잘못된 의식, 기관에 보내지 않으면 보육비 지원에서 손해 보게 된다는 피해 의식, 출산이나 육아로 인한 휴가나 휴직은 내일의 인재를 키우는 것이 아닌 바로 경력단절이라는 의식 그리고 그 의식들이 고스란히 반영된 현실성 없는 보육정책.

이런 현실은 전업맘과 워킹맘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기만 하네요.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갈등보다 온 마을의 힘을 합친 협동이 필요하다고 하는 데 말입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나연 시민기자의 네이버 개인블로그(blog.naver.com/nyyii)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쌍둥이육아, #까칠한워킹맘, #맞춤형보육정책, #워킹맘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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