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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세월호 침몰현장에서 수색작업이 진행 중인 모습.
 지난해 4월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세월호 침몰현장에서 수색작업이 진행 중인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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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3일 경찰청은 다섯 장짜리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악성 유언비어 87건을 적발했고, 이 가운데 56건은 내사에 착수, 14명을 검거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악성 유언비어 단속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윤아무개(41)씨는 자신이 '강력한 단속'의 대상일 줄 몰랐다. 하지만 2014년 4월 24일 인터넷 방송 채팅창에 "김포 UDT 회장님과 오늘 만났는데 체계도 없고, 지원도 없고, 내일 모레 제대할 애들만 물 좋을 때 내려보내고 물살 셀 때만 민간 잠수사 들어가라고 했다더라"고 남긴 게 화근이었다. 검찰은 이 글이 해군과 해경이 부실 대응하고 있다는 '허위 사실'을 퍼뜨려 구조 담당자인 김문홍 당시 목포해양경찰서장과 제병렬 해군 55군수지원전대장(대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지난해 8월 윤씨를 기소했다.

그런데 고소장이 이상했다. '피해자' 김문홍 서장과 제병렬 대령은 세월호 참사 구조·수색 활동을 함께 했다는 점 말고는 별다른 친분이 없고, 소속도 다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고소 내용은 '허위 사실'이 누구를 비난하느냐 정도만 달랐을 뿐, 띄어 쓰기는 물론 제출일 역시 똑같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윤씨와 변호인은 두 사람에게 직접 묻기로 했다. 재판부는 증인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 3월 24일 신문을 진행했다.

허위사실 정도만 다를 뿐 세세한 표현은 동일

세월호 참사 당시 윤아무개씨 등 누리꾼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김문홍 목포해경서장(위)과 제병렬 해군 대령(아래)이 고소한 내용. 그런데 두 사람의 고소장은 문제삼은 '허위사실' 정도만 다를 뿐, 세세한 표현은 동일했다. 재판 때 증인으로 나온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고소장을 작성하지 않았고, 각각 해경과 해군을 대표해 고소한 것이라고도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윤아무개씨 등 누리꾼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김문홍 목포해경서장(위)과 제병렬 해군 대령(아래)이 고소한 내용. 그런데 두 사람의 고소장은 문제삼은 '허위사실' 정도만 다를 뿐, 세세한 표현은 동일했다. 재판 때 증인으로 나온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고소장을 작성하지 않았고, 각각 해경과 해군을 대표해 고소한 것이라고도 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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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인 : 이게 증인이 제출한 고소장인데, 직접 작성한 게 맞습니까?
김문홍 서장 : 직접 작성은 안 했습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 센터에서 현재 인터넷 상에 해경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들이 너무 많이 나와 있어서 고소장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했다고 서해지방청 수사 계장으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고소 내용은) 부하 직원에게 받았는데, 특이 사항이 없어서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고소장에서 문제 삼은 부분도) 직접 보지는 못했고, 우리 잠수 요원들에게 (인터넷 등에) 저런 글이 올라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피고인이 작성한 게시글이 무슨 내용인지는 아나요?
김문홍 서장 : 예,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명예훼손 내용도 모른 채 고소를 진행했다는 김 서장의 말에 윤씨 변호인은 '개인으로 고소하진 않은 것이냐'고 물었다. 김 서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해경 구조단을 대표했다는 얘기였다. 본인이 해군 본부 법무실장에게 고소 방안을 문의했다는 점을 빼면, 제병렬 대장의 답변은 김 서장과 비슷했다. 그는 윤씨와 합의할 생각도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 8월 17일, 검찰은 제 대령과 김 서장의 고소 취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윤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정해진 수순대로, 8월 28일 법원은 공소 기각을 선고했다.

윤씨는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난 1년 동안 경찰 조사 한 번, 검찰 조사 두 번 받고, 법원에 왔다 갔다 하느라 일도 제대로 못했는데 공소 기각에 너무 허탈했다"고 말했다.

"무죄가 나오면 좋았을 텐데 그냥 없던 일로 하자니까... 누구한테 그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하죠?"

그는 또 자신이 자율방재단 단장을 UDT 회장으로 잘못 알았을 뿐, 인터넷에 올린 글은 세월호 관련 촛불집회에서 직접 들은 얘기라고 했다. 실제로 UDT 동지회는 지난해 4월 24일 "잠수 장비를 싣고 팽목항에 도착했지만 해경 거부로 구조 작업을 못하고 돌아왔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윤씨는 "(부실 구조 비판은 국민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얘기 아니냐"며 "(수사기관의 대응은) 진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겁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입막음 소송에 정부 비판 점점 위축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도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 때 정부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막으려는 입막음 소송"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찰이 '유언비어 유포 대응'과 관련해 일베(보수성향 온라인커뮤니티) 글 등을 포함해 단속하겠다고 했지만, 그 대상 중에는 정부 비판이 껴있었다"며 "(해경 명예훼손혐의 재판 1심에서 무죄가 나온) 홍가혜씨 사례처럼, 이번 일도 무리한 기소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분위기'다. 대법원은 국가를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자 정부는 공무원 개인을 내세워 대응해왔다. 검찰이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을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일이 대표 사례다. 지난해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가토 산케이 전 <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장이 줄줄이 기소 당했다(관련기사 : 산케이 기소, 사이버 망명... 이런 열풍에 익숙해진 까닭).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말하자 검찰은 '사이버 상 허위 사실 유포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기까지 했다. 장 활동가는 "이 기조가 계속 가는 것 아닌가 싶다"며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 2014년 인터넷 자유 보고서가 '한국에서 대통령을 비판해 처벌 받은 사람이 최소 3명'이라고 발표하는 등 국제 사회 역시 이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세월호, #명예훼손, #표현의 자유,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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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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