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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노을이 되고 싶다

서쪽으로 달려가서
빛무리로 퍼져 내린 저 노을처럼
이 세상이 추악하고 더럽게 생각될 때면
한바탕 욕지거리라도 해 주고
서쪽으로 달려가서 노을이 되고 싶다

노을이 되기 위해 달려가는 동안
강이 흐른다면
강변에 앉아 흔들리는 마음속을
다스려도 좋으련.
누구는 누구는 살면서 그만한 사랑과 환희가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강물은
말없이 흐를 것이지만

때로 가슴팍이 미어지는 슬픔과 분노가 없다면
사람 사는 맛이 있을까
사랑과 환희로 가슴팍이 빠개지는
저 깨끗한 노을의 나라로 날아가서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날들을 내려다보며
흐를 것은 흐르게 하고
멈출 것은 멈추게 하는
노을 속의 바다가 되고 싶다.

- 백학기의 '노을' 전문

시인, 영어교사, 신문기자, 소설가, 영화감독으로 변신으로 거듭해오다가 등단 35년만에 시선집을 낸 백학기 시인.
▲ 백학기 시인 시인, 영어교사, 신문기자, 소설가, 영화감독으로 변신으로 거듭해오다가 등단 35년만에 시선집을 낸 백학기 시인.
ⓒ 백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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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사에서, 기자로, 배우로 '7년마다' 한 번씩 직업 바꿨던 그. "누구는 누구는 살면서 그만한 사랑과 환희가/찾아오지 않겠느냐고 강물은/말없이 흐를 것이지만" 문학과 영화라는 두 기둥은 끝끝내 부여잡고 살아온 그.

그렇게 이순이라는 강물 속으로 젖어들고 있는 그는 올해 나이 57세. 그런 그가 자신의 시집 3권을 한데 묶은 시전집 <가슴에 남아 있는 미처 하지 못한 말>(도서출판 더클)을 펴냈다. 문단 데뷔 35년, 첫 시집을 낸 지 30년만의 일이다.

"흐를 것은 흐르게 하고/멈출 것은 멈추게 하는/노을 속의 바다가 되고 싶다"던 그는 인생의 이 대목에서 한 박자 쉬고 싶었던 것일까? 1985년에 낸 첫 시집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문학과 지성사), 두 번째 시집 <나무들은 국경의 말뚝을 꿈꾼다>(1990년, 청하), 세 번째 시집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2002, 새로운 눈)에 실린 200여 편의 시를 묶어냈다.

여기에 '이후'라는 제목으로 불교에서 본성을 찾는 과정을 우화로 그린 심우도(尋牛圖)를 소재로 한 연작시 '흰소'10편과 부록으로 <신동아> 논픽션 수상작 '내 가슴에 남아있는 천하의 박봉우'를 보탰다. 이번 시전집은 그가 세월에 따라 얻은 인생의 깨달음과 관조에 의해 추동됐다. "누구나 가슴에 남아있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있기 마련"이라던 그는 심우도에 심취해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문학열병 영화광으로 명성

20대 중반에 펴낸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는 분단된 한반도의 슬픔을 깊은 역사의식으로 풀어낸 서정시로 구성했고, 두 번째 시집 <나무들은 국경의 말뚝은 꿈꾼다>는 사랑과 상실의 아픔을 나타냈으며,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는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사물에 비유한 허무의 세계를 그렸다.

문학열병만 앓는 것도 아니었다. 도청 공보실에서 영사기를 들고 마을을 돌며 영화를 통해 농어민들을 계몽하는 일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그는 늘 흰색 양복에 유행을 앞서가던 구두를 신고 있던 아버지를 따라 네 살 때부터 극장을 드나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영화 이야기꾼'으로 통했다.

교내 백일장 등 수많은 백일장 대회를 휩쓴 글 솜씨와 함께 '영화광'이라는 명성을 학창시절 내내 달고 다녔다. 중 2 때 처음으로 접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그가 열 번도 넘게 본 영화. 대학시절부터 그는 개봉 첫날 첫 시간 영화를 보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시 같고 소설 같은 삶의 나날들. 그 사금파리는 더 어쩌지 못하고 1999년 야간대학원과 연기학원에서 영화 실기를 익혔다. 발성법, 표정, 무대동작 등을 배우며 어느새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급기야 불쑥 사직서를 냈다. 박철수아카데미 연출 1기, 영화 <스물넷>으로 충무로 데뷔했다. <녹색의자> <길> <프락치> <야수> <오프로드> <은어> <탱고>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한중합작드라마 <오성대반점>(32부작) 조연배우로 캐스팅된 후 중국 베이징에서 활동했다. 한중드라마 <너는 내 운명> 부감독, <천국까지 99마일> <흰 자작나무숲의 시간> 시나리오를 집필하더니 마침내 <체어2014> <완전한 인생>의 감독을 맡았다. 여기에 전주영상위 아시아영화유치단장, 전주영상위 운영위원, 무주산골영화제 부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85년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문학과 지성사) 첫 시집 이후 30년만에 백학기 시인이 선 보인 시선집
▲ 백학기 시인의 시선집 85년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문학과 지성사) 첫 시집 이후 30년만에 백학기 시인이 선 보인 시선집
ⓒ 백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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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느끼고 깨닫는 존재론적 상황 시로 묘사

이제 도인(?)이 되어 돌아온 것인가? 이번 시전집에 수록된 <이후>에 별도로 묶은 '흰소' 연작시 10편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 그는 "'흰소' 연작은 우리가 인생(삶)을 살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존재론적 상황을 심우도(尋牛圖)에 비유해 시적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 산이다// 백년여관도 보였다/ 시냇가에 심은 교회도 보였고/ 고려수산도 지척이다//가까이 /호남탕 굴뚝도 보였다// 인근 초등학교 교정에서/뛰노는 아이들 소리가/삼천대천세계를 울린다//한때는 처녀였고/ 한때는 어머니였던/연지암 비구니 스님이/절마당에 물을 뿌리고 있다// 물은 물이다"

우리네 삶의 근원적 표상의 세계를 시화(詩化)해, 돈오점수(頓悟漸修)기법으로 먼 산 위에서 조망하듯 그려내고 있다. 백학기의 강물은 길고 그렇게 예까지 멀리 흘러 왔다. 이번 시선집 후기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떠돌며 살아온 인생, "다시 광야로 가야하리라"

"그동안 그동안 나는 충무로를 떠돌았다/어렸을 적 꿈이자 오랜 소망인/영화판에서 성공은 못했으나, 불운하진 않았다//전집은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내게 되매,/고금(古今)과/천지(天地)가/더욱 깊고 아득해진다.//하여,/이후(以後)라고 흰소 연작 10편을/별도로 묶었다./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시를 읽다 보니 어느새 흰소를 찾아/예까지 왔다.//다시 광야(曠野)로 가야 하리라"

충무로를 떠돌았지만 불운하지 않았다는 그는 다시 광야로 가겠다고 한다. 그가 그에게 이렇게 스스로 물으면서 말이다. "문득 회한의 깊은 그림자들로 인생이 다시 깊어져/성숙해진 이마를 바로 세우고/강물이 될 때까지 바라보고 있는가/물고기 같은, 구름 같은 세월도 흘러가는 것을 보는가/살아온 날들보다/살아갈 날들을 위해 정갈한 마음이 되고 있는가//강물이 될 때까지/강물이 될 때까지"라고(백학기의 '강물이 될 때까지' 중에서).

백학기 시인은 고창 출신으로 전주고와 원광대를 나왔다. 1981년 <현대문학> 2월호에 '삼류극장에서 닥터지바고를', 같은 해 <한국문학> 5월호에 '가난의 삼단논법'으로 신인상을 타며 등단했다. 이후 교사로 근무하다 전라일보 기자, KBS 홍보실을 거쳐 소설가로 데뷔했고 불혹을 넘겨 영화계에 입성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에서 객원교수이다.

오는 3일 오후 5시 서울영풍문고에서 출간기념회가 열린다.

덧붙이는 글 | 박상건 기자는 시인이고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태그:#백학기 시선집, #백학기시인, #영화감독, #박상건,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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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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