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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원의 말승냥이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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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의 말승냥이가 철장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반기는 걸까? 이런 행동이 반가움의 표현으로 보였는지 "귀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말승냥이는 사람을 반기는 게 아니다. 관람객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철장 앞을 왔다갔다 하는 이 동물에게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동물원에 가면 영상 속 말승냥이처럼 틀에 박힌 행동을 반복하는 동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몸을 앞뒤로 흔드는 코끼리, 자신의 털을 뽑아대는 원숭이나 타조, 끝없이 원을 그리며 헤엄치는 돌고래 등이 그렇다. 이런 행동은 감금돼 살아가는 스트레스 때문에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으로 '정형행동'(stereotypy)이라고 한다. 일종의 정신이상 증세인 것이다.

야생동물 보호단체인 '주체크 캐나다(Zoocheck Canada)'의 설립자인 로브 레이들로가 쓴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는 야생동물을 동물원에 가두는 것의 문제점과 그것을 바로잡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동물원을 그곳 창살 뒤편에 있는 존재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갇혀 지내는 야생동물의 삶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 동물원을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 모두 병들어버린 동물원 동물들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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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과 달리, 동물원 동물은 인간에 의해 통제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무엇을 언제 먹을지, 어디서 살아갈지, 누구와 함께 살고 짝짓기를 할지를 비롯하여 무엇 하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심지어 얼마나 깊게 헤엄칠지, 얼마나 높게 날지, 얼마나 멀리 걸어갈지도 모두 동물원 소유주와 관리자들이 결정한다.

또한 동물원 동물들은 원래 서식지와 거리가 먼 환경에서 살아간다.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동물원이 철장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구시대적 모형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에는 야생과 같이 넓은 생활 공간도 없다. 가령 동물원 코끼리는 야생 코끼리와 비교했을 때 1000배나 작은 공간에서, 동물원 북극곰은 야생 북극곰과 비교했을 때 100만 배나 작은 공간에서 살아간다. 게다가 동물원에는 동물들을 정신적으로 자극하는 흥밋거리도 없다.

이렇게 비좁고 단조로운 환경에서 살다 보니 동물들은 정형행동을 하거나 하루 종일 잠만 잔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요소를 박탈당한 동물들이 무력감과 좌절감을 표출하는 나름의 방식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동물원은 사육 환경을 풍부하게 하는 프로그램(동물행동풍부화)을 도입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풍부화 프로그램은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좁은 공간에서 똑같은 장난감을 갖고 놀다보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동물원은 자연스러운 삶을 살기에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동물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감소시키기 위해 동물원에서는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그러나 모든 동물원이 이런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건 아니다. 국내 대다수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척박한 환경에 그저 전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 동물행동풍부화 동물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감소시키기 위해 동물원에서는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그러나 모든 동물원이 이런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건 아니다. 국내 대다수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척박한 환경에 그저 전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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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동물들은 신체적으로도 고통 받는다. 가령 동물원에는 관절염과 발 염증을 앓는 코끼리가 많다. 원인으로는 운동 부족, 과체중, 딱딱한 흙이나 콘크리트 바닥에 서서 생활하는 방식, 차고 습한 생활환경 등이 있다. 이 두 질환은 코끼리에게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킬 수 있지만, 야생 코끼리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북극곰은 기온이 영상 10도 이상이 되면 체온과다에 시달린다. 북극곰은 말 그대로 '북극에 사는 곰'이기에 한국과 같이 따뜻한 기후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이다. 우리나라 동물원의 북극곰들은 따뜻한 계절이면 본래 흰색이었던 털이 초록색으로 얼룩덜룩해진다. 높은 기온으로 인해 털에 녹조류가 자라서 생기는 현상이다. 게다가 북극곰은 지상에서 가장 넓은 활동 영역을 갖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갇힌 삶은 이들에게 더 큰 고통이다.

동물원이 노아의 방주일까?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인공적인 환경에 가두고 전시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비판에 대처하기 위해 동물원은 '노아의 방주'를 자처한다. 즉, 멸종위기 종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원은 정말로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동물원이 번식 프로그램을 통해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번식 프로그램은 야생동물을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 야생동물에 관한 국제협약 때문에 동물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없게 되자, 전시할 동물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구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책은 동물원에서 태어나 야생에 복원된 동물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 책은 오히려 동물원의 번식 프로그램이 커다란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번식 프로그램 때문에 동물원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동물들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동물원이 동물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에는 명백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동물원은 불필요한 동물을 매매·교환·대여하는 방식으로 처분한다.  

지난 8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는 사슴·흑염소 43마리가 '잉여동물'이라는 이유로 도축농장에 식용으로 매각되어 논란이 됐다. 동물원에서 보호받던 동물들이 인간의 편의에 따라 식용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 사건은 동물원이 근본적으로 동물을 '소비'하는 공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이 책은 북극곰, 코끼리, 고래, 유인원을 동물원 생활에 특히 맞지 않는 동물로 꼽는다. 지능이 높은 이 동물들은 동물원의 무료한 삶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 동물원의 오랑우탄 이 책은 북극곰, 코끼리, 고래, 유인원을 동물원 생활에 특히 맞지 않는 동물로 꼽는다. 지능이 높은 이 동물들은 동물원의 무료한 삶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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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설립 기준의 부재 역시 동물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도로변에서 운영되는 이른바 '길거리 동물원'이 동물복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길거리 동물원은 주로 개인이 운영하며, 환경이 열악하다. 게다가 이런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물들을 관리하는 방법을 잘 알지도 못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전시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동물을 만지며 놀게 하는 각종 '체험 동물원'이 그런 곳이다. 유치원이나 교내 축제 등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동물들을 데려가 전시하고 체험시키는 '이동 동물원'도 있다. 이런 동물원은 대부분 개인이 소자본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사육환경이 열악하다. 이동 동물원의 경우 운반의 편의를 위해 동물을 가두는 우리는 더더욱 작고 조악하게 마련이다. 

이런 동물원은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동물원 운영자들은 자사의 서비스를 '체험교육'이나 '동물과의 교감'으로 홍보한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하루 종일 낯선 사람들의 시선과 손길, 소음에 시달리는 동물들의 스트레스는 무시된다. 살아있는 동물들이 인형 취급을 당하는 셈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감이지 일방적인 관계 맺기가 아닐 것이다.
 
디트로이트 동물원이 코끼리 전시관을 폐쇄한 이유 

서울 시내에 등장한 이동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들.
 서울 시내에 등장한 이동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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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은 동물들의 감옥일 수밖에 없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책에는 변화를 모색하는 진보적인 동물원도 소개돼 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 동물원은 관절염과 발의 염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코끼리 '완다'와 '윙키'를 전시장에서 은퇴시켰다. 그리고 코끼리가 본래 살아가는 서식지처럼 울창한 숲으로 이뤄진 보호구역으로 보냈다. 이듬해에는 81년 동안이나 운영되던 코끼리 전시관의 문을 완전히 닫았다. 이런 파격적인 결정은 "진정 코끼리를 위하는 일은 그들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는 론 케이건 디트로이트 동물원장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애리조나-소노라 사막 박물관은 원래 서식지가 소노라 사막인 토종 동식물만을 전시한다. 생태에 부적합한 기후로 고통 받는 북극곰이나 판다와 같은 동물은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동물원'이라 불리고 있다.

이 책에는 상업성을 지양하고 보존 사업에 집중하는 동물원도 소개돼 있다. 멸종위기 동물을 번식시켜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영국령 저지섬의 저지 동물원, 아프리카들개를 번식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캐나다의 마운틴 뷰 보호번식 센터 등이 그렇다. 동물들에게 최대한 자연스럽고 쾌적한 삶을 제공하면서 동물보호의 필요성을 일반에 알리고 있다.

상업적인 시설에서 은퇴했거나 구조된 동물들을 보호하는 동물원도 있다. 한약재로 쓰이는 쓸개즙을 위해 잔인하게 사육되던 곰들을 구조하여 보호하는 중국의 곰 구조 센터, 서커스에서 은퇴한 코끼리들에게 평생의 쉼터를 제공하는 미국의 테네시 코끼리 보호구역이 그런 동물원에 해당한다.

세상을 보다 자비로운 곳으로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는 것이다. 이 책이 제공하는 동물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동물원 방문을 한층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관람객의 변화는 동물원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동물원에 가는 어린이는 물론 부모와 교사들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전 세계 동물원을 1000번 이상 탐방한 슬픈 기록> (저자 로브 레이들로/역자 박성실/책공장더불어/2012.05.18./10,000원)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로브 레이들로 지음, 박성실 옮김, 책공장더불어(2012)


태그:#동물원, #동물복지, #로브 레이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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