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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학교 가지 말고 놀아라" 한국 부모들 견뎌낼까라는 기사를 읽었다. 국내에 애프터스쿨이 생긴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 기사의 제목대로라면 나는 지금 무엇을 견디고 있다는 건데, 그게 뭘까.

우리 사회에서 논다는 것은 실로 견뎌야할 만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놀기 위해서도 내세울 만한 자격이 필요하다면, 이 얼마나 억지스런 훈계인가. 아이들조차 그냥 놀아서는 절대 안 되는 이 험악한 분위기에 씁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나는 견디는 부모일까?

생애 처음 홀로 비행기를 타는 아이의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하기만 했다.
▲ 출국 검색대 앞에 홀로 선 아이 생애 처음 홀로 비행기를 타는 아이의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하기만 했다.
ⓒ 우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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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출국장으로 홀로 나서는 아이가 잘 다녀오겠다며 갑작스레 눈물을 보였다.
▲ 잘 다녀올게요 비행기 출국장으로 홀로 나서는 아이가 잘 다녀오겠다며 갑작스레 눈물을 보였다.
ⓒ 우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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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식을 마친 아이는 홀로 비행기를 탔다. 그 흔한 패키지 해외여행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아이 손에 여권을 들려주며 잘 다녀오라는 포옹을 나누었다. 아이가 먼저 자청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의 협박에 가까운 회유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선택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던 녀석은 앞으로의 진로에 딱히 다른 희망을 꾸지 않았다. 주어진 성적대로 가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자신의 미래에 별 관심이 없었다. 공부 대신 다른 무엇을 덤벼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차라리 열심히 놀기라도 했으면 싶었다. 그러나 녀석은 어중간하게 무기력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의 우정에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도 재능이라면 재능일 수 있었다. 십년 가까운 학교생활 통지서에서 일관되게 이어온 칭찬도 그랬다. 오죽 쓸 말이 없으면 그런 걸 다 칭찬할까. 그런 생각도 살짝 들기는 했다.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는 짓궂은 장난을 탐미하기 시작했다. 수업의 분위기를 흐리는 주동자는 아니어도, 열심히 그 뒤를 쫓아가는 조무래기쯤은 되었다. 더불어 상위권의 내신을 위해 튼실한 바닥을 깔아주는 발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녀석은 엄마의 잔소리에 논리적인 반박을 할 줄도 알았다.

"대학 졸업해 인턴 사원하기도 힘든 세상이잖아. 권력 있고 가진 자들이 자기 편할 대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데, 난 노예가 되기 싫다구."

아이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공부를 잘 하라는 것이 아니라 공부 하는 습관을 익히라는 나의 잔소리에 언제나 얼굴을 붉혔다. 그게 그거지, 라는 비아냥거림으로 나의 말문을 차갑게 끊어버렸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부모로서 듣는 그 외침은 어쩐지 불편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세상임을 모르지 않았다. 사실 모든 아이가 용이 될 필요도 없었다. 교육은 용이 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교육은 세상의 다양한 틈을 비집고 헤쳐나갈 용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아이의 가슴에서 자라난 '전근대적인 외침'에 나의 눈동자는 몹시 흔들렸다. 어느새 아이는 세상에 대한 비관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아이는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공부한다고 뭐가 달라져? 달라질 게 있는 세상이야, 요즘 세상이? 아르바이트나 계약직만 늘어나는데, 현실이 그렇잖아?"

헬조선(Hell朝鮮)의 지옥불이 아이의 항변에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삐딱한 십대의 눈에 비친 세상은 깨진 유리창처럼 날카로웠다. 아름다운 꿈은 옛날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것일까.

"공부한다고 달리질 게 있는 세상이야?"

달려가 거머쥐어야 할 목표는 단 하나였다. 잘 사는 것. 돈에 구애받지 않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 그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아이들은 쉼없이 굴러가는 바퀴가 되어야 했다. 녀석의 가슴에 타오르는 반감은 그런 세상을 향한 나약한 저항이었다.

학교는 새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만, 정작 그 새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확인해야 할 목표물은 분명했지만, 그 목표를 어떤 가치로 해석할지는 무관심했다. 나는 아이에게 새를 잡는 방법보다 새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묻고 싶었다.

무조건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새를 잡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세상의 숲으로 사냥을 나서지만 빈 손으로 돌아서야 할 때도 많았다. 새를 쫓아가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지만, 새를 많이 잡는 것보다 새를 잡아 무엇을 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했다. 생각의 가치에 따라 한 마리의 새는 열 마리의 몫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1년간 학교를 쉬자고 제안했다. 1년 동안 무얼 할지 교육청에도 기웃거려 보고,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호주에 사는 친척 집에 보낼까. 혼자 배낭여행을 할까. 이런 나의 계획에 주변 사람들은 거침없는 일침을 쏟아냈다.

"혹시 아이가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나요?" "요즘 아이들이야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지. 그게 무슨 큰 흉이 되나요?" "왜 아이를 바보로 만들어요. 요즘 재수는 기본인데, 한 해 쉬면 그만큼 손해잖아요."

국내에서는 이제 막 애프터스쿨에 대한 관심과 여론이 들끓던 중이었다. 혼자 배낭여행을 하기 바랐지만 아이는 그럴 자신은 없다고 말했다. 며칠을 수소문한 끝에 해외에 본거지를 둔 한 청소년 캠프 단체를 알아냈다. 그곳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곳이었다. 살아보는 것은 여행과는 달라 빠듯한 살림에서 절약하면 감당할 만큼은 되었다.

1년 동안 실컷 놀아서 녀석이 심심해진다면, 그것으로 흡족하리라 여겼다. 심심해서 이거라도 해볼 요량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도 부모 뜻대로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부모의 마지못한 권유에 이끌려 세상의 빈 틈에 서게 된 녀석이 어떤 풍경을 바라본다면 그것으로 다행이었다.

봄이 오기 전에 떠난 녀석은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며칠 전 전화 통화에서 녀석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집에 철학책 있나? 집에 가면 철학책 좀 볼까해. 나 그동안 느낀 게 참 많아. 학교 가기 전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내가 엄마 점심 해줄게."

무엇보다 점심식사를 해주겠다는 녀석의 말에 박장대소를 하며 좋아했다. 녀석이 차려주는 밥상이 어떨지 무척 기대가 되면서도, 며칠이나 갈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녀석이 철학책을 볼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것 자체가 작은 희망의 징조였다.

내가 둘째에게 1년 놀자고 꼬시는 이유

내년이면 중학교를 졸업하는 둘째에게 나는 달콤한 유혹의 말로 작업을 걸고 있다. "한 1년 펑펑 노는 거 어때?" 깐깐한 둘째는 좀처럼 고개를 끄떡이지 않는다. "국내에 노는 학교가 생긴다는데 입맛 당기지 않아?" 그래도 녀석은 "예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씩 녀석을 찔러볼 것이다. 노는 게 최고라는 뽀로로의 미소를 아직도 사랑하는 녀석이라 승산은 있어 보인다.

"다 때려치우고 실컷 놀아보는 거야. 노는 것의 정수가 무엇인지 이번 참에 만끽해 보는 거지. 어른이 되기 전에 즐기는 특별한 휴가를 떠나보자구."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열심히 아이 마음을 흔들고 있는 중이다. 큰아이가 없는 동안 내가 견뎌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슴 한 편에서는 정말 하고 싶은 선택을 할 수 있어 많이 기뻤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 아닌가.

요즘 아이들은 놀고 싶다고 종알대면서도, 정말 놀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아이는 없다.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자연스레 습득해 버린 탓일까. 만약 주위에서 번쩍 손을 들어 놀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나는 크게 박수치며 웃어주고 싶다. 넌 놀 줄 아는 용감한 아이라고!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애프터 스쿨(After School)은 덴마크에서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일 년 동안, 자아에 대한 성찰과 진로를 탐색하자는 의미에서 시작된 자율적인 학교이다.



태그:#학교 , #애프터스쿨,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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