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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정부에서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반대하는 편에서는 유엔이 권고하는 기준으로 보나 국정 역사 교과서를 유지하는 몇몇 국가의 면모로 보나 국정과 검정 가운데 검정이 올바른 방식이라며 반론을 펼친다.

수십 개 대학, 수백 명의 역사 교수가 국정화 반대와 국정화 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하며 반대 의사를 표했지만, 정부는 역사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연구자를 모아 집필하되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발행 전에는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맞섰다. 이렇듯 각자가 바라는 방향은 선명하지만 도무지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각자가 가진 답안과 해법을 점검하는 일 아닐까 싶다.

사교육과 역사 교과서의 역사

우리 역사교육의 역사_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 역사교육이 걸어온 길 / 역사교육연구소 지음 / 휴머니스트
 우리 역사교육의 역사_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 역사교육이 걸어온 길 / 역사교육연구소 지음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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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국정과 검정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박정희 정부는 국사교육을 강화하며 국가주의 역사교육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지속하려 했고, 몇 년 전 논란을 빚은 뉴라이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바탕으로 역사 서술을 시도하기도 했다. 역사교육연구소에서 펴낸 <우리 역사 교육의 역사>는 역사교육이 시대의 정치, 교육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었으며, 따라서 역사교육이 제도화되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해야 현재를 성찰하고 새로운 미래를 탐색할 지평을 열 수 있다고 말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사회와 동떨어져 내용적 정합성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대, 중세, 조선을 거쳐 근대 개혁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역사교육의 흐름을 일별하며 그간 이어진 역사교육이 오늘날 역사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일은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마땅하다.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_초등학교에서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 김한종 지음 / 책과함께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_초등학교에서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 김한종 지음 /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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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책은 역사교과서 집필자이자 역사교육 연구자로 관련 논란으로 법정에도 섰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김한종 교수의<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다. 앞선 책이 역사교육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번 책은 보다 구체적이고 본격적으로 현실 사회와 역사교육의 상관관계를 밝힌다.

해방 전후부터 최근까지 70년에 걸친 근대 역사교육은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과 민족 전통의 대립에서 시작해 지배층 위주 서술과 지나친 반공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비판까지, 숱한 논쟁을 거치면서도 역사를 구성하는 이들의 삶에 그리고 다원화 사회와 민주주의라는 이해에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역사를 이용하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역사교육을 둘러싼 갈등 역시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마침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정권이 바뀌면 교과서 내용도 달라져야 하나'다. 어느 쪽이든 이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역사를 쓰고 읽는 새로운 시도

교과서로만 역사를 배우는 건 아니다. 오늘 벌어지는 일을 뉴스로 접하는 일도 역사의 시간을 연장해 현대를 만드는 방법이고, 지나간 시간을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 소설을 읽는 일 역시 어제의 빈 시간을 채우며 역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의 변화와 시도에 힘이 될, 더불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주요 내용인 한국 현대사 이해에 도움이 될 역사교양서 신간 두 권을 더불어 소개한다.

해방 후 3년_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해방 후 3년_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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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국현대사 연구자 조한성의 <해방 후 3년>은 제목 그대로 1945년 8월 15일 광복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3년 동안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을 담은 책이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를 세우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상상과 기획이 서로 마주치고 비껴갔는지, 여운형(조선인민당), 박헌영(조선공산당), 송진우(한국민주당), 김일성(북조선공산당), 이승만(독촉국민회), 김구(한국독립당), 김규식(좌우합작위원회), 일곱 명의 인물과 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오늘날 이들에 대한 기억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듯 당시 이들의 생각과 활동도 한 데 모이기 어려웠고, 이를 실행하는 방식은 암살부터 협상까지 그야말로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책을 읽다 보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제대로 걷지 못한 길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럼에도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약간의 안도와 어렴풋한 자긍심이 머릿속을 맴돈다.

민중을 기록하라_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현대사 : 전태일에서 세월호까지 / 공선옥 외 21명 지음 / 실천문학사
 민중을 기록하라_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현대사 : 전태일에서 세월호까지 / 공선옥 외 21명 지음 /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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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책은 <민중을 기록하라>다.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70년대 황석영, 80년대 문익환, 90년대 공지영과 송경동, 2000년대 공선옥처럼 현장에서 당대를 기록한 르포 스무 편과 시 한 편으로 전태일부터 세월호까지 이어지는 질곡의 한국현대사를 다시 읽는 기획이다.

엄격한 의미의 역사 서술이 아니기에,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객관적 기록자 역할보다 사명감을 앞세운 부분도 적지 않지만, 엮은이는 이 역시 "당대의 정직한 지적 현실이자 우리 문학의 한 자산"이라 평한다. 이 책에 실린 기록은 역사라기보다는 현실에 가깝다. 아마도 작가들은 역사가 현실을 떠날 수 없고, 문학이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기록했을 것이다. 작가가 아니라도 전제는 크게 다르지 않을 터, 기록하기 전에 읽음으로써 제 할 몫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쓴 박태근님은 알라딘 인문 MD입니다.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이글은 월간<참여사회>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역사교과서, #국정화, #박정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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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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