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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업성고 학생들이 야외 현장 체험학습 현장에서 환호하고 있다.
 천안 업성고 학생들이 야외 현장 체험학습 현장에서 환호하고 있다.
ⓒ 업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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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쯤.충남 천안 업성고등학교(천안 서북구 업성동) 복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빠른 박자의 음악이 흘러 나왔다.요즘 유행하는 걸 그룹의 노래다.갸우뚱하는 기자에게 이문희(56)교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수업 시작 종이에요. 우리 학교에서는 수업 끝나고 시작하는 벨 소리를 가요로 바꿨어요. 하루 평균 26번인데 매번 곡이 다 달라요.학생들과 교사들이 원하는 노래로 선곡해요."

아이들의 수업 시작이 즐거워질 것 같았다.

"맞아요. 아이들이 따라 불러요."

왜 수업 시작과 끝을 가요로 대신 할 생각을 했을까?

"학교생활이 즐거워야죠. 신나야죠. 행복해야죠."

대중 가요가 수업 시작 종, 태극기와 함께 교기 '펄∼럭'

이문희 천안 업성고 교장
 이문희 천안 업성고 교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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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장은 지난해 9월 이 학교로 부임해 왔다. 내포중학교에 이어 두 번째 교장을 맡은 학교다.업성고는 7년 전인 지난 2008년 개교했다. 천안 시내와 8km 가량 떨어진 변두리에 자리 잡아서인지 처음에는 학생들이 학교 진학을 꺼렸다.

그래서일까. 이 교장이 부임 초 만난 학생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이 교장은 아침마다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았다. 학생들과 교직원에게 "어세 오세요!","행복하세요!", "반갑습니다!"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아이들이 며칠 지나니까 저보다 더 밝은 얼굴로 인사하더라고요. 발걸음도 경쾌해졌고요."

학교 운동장 앞에는 태극기 옆에 업성고를 상징하는 교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길러 주고 싶었어요. 교기를 만들어 내걸었어요. 교가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원을 이용해 만들었어요. 매일 점심시간마다 틀어줘요."

그러고 보니 이 교장이 입고 있는 옷에도 학교 이름이 새겨 있다. 이 교장이 웃으며 "제 업무복이에요" 한다. 학교 화장실도 모두 고쳤다.

"요즘 관공서나 고속도로 화장실 가면 쾌적하잖아요. 음악도 나오고…. 평소 아이들이 이용하는 학교 화장실이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화장실을 싹 바꿨습니다."

파마, 염색도 허용 "자기표현 잘 하도록 하는 게 존중의 시작"

학교 공간 곳곳에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작은 미술관이고 공예관이다. 이 학교는 전시 그림처럼 노랑색, 빨강색으로 머리를 염색할 수 있다. 두발 자유화 학교다.
 학교 공간 곳곳에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작은 미술관이고 공예관이다. 이 학교는 전시 그림처럼 노랑색, 빨강색으로 머리를 염색할 수 있다. 두발 자유화 학교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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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찾아갔다. 하지만 이 교장의 얘기를 듣다 보니 갈수록 흥미가 더해갔다. 학교를 소개하는 안내책자를 넘기다 특이한 게 눈에 띄었다. 보직교사 중 '민주시민교육부장'이 있다. 이건 또 뭐지? 이 교장은 "아마 모르긴 해도 전국 학교 중 민주시민교육부장이 있는 학교는 우리 학교 밖에 없을 걸요?" 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참여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는 민주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율성을 존중하는 학생으로 자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년에는 통일을 위한 평화 통일교육에도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해요. 공리주의자들이 말한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은 학교 현장에서는 맞지 않아요. 다수가 행복하기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게 당연시돼서는 안 된다고 봐요. 가난하고 소외된 1, 2명까지도 배려하고 이해하며 함께 공존해 가는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안 업성고는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해 두발을 자율화했다.
 천안 업성고는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해 두발을 자율화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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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이 교장에게 두발 자유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최근 대전에서는 중3 학생이 두발자유화를 옹호하는 유인물을 학생들에게 나눠줬다가 '선동죄'로 교내봉사 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학교에는 노랑머리를 한 학생, 빨강머리를 학생이 더러 있어요. 두발을 자유화했거든요. 자기표현을 잘 하도록 하는 게 존중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원칙은 있어요.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고,교사의 교권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하지만 학생들이 파마하고 머리카락 색깔을 바꿨다고 수업에 지장을 주나요?"

대전지역 고교 10곳 중 7곳이 학생들의 두발 길이를 단속하고 있다. 염색이나 파마 등 두발 변형을 허용하는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다. 업성고는 두발 자유화를 결정하기에 앞서 학내에서 세 차례의 공청회와 설문조사를 거쳤단다.

이 교장은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학교 분위기를 위해 할 일이 뭔가를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수 끝에 행복나눔학교 선정 "교육 본질 회복해 보고 싶다"

천안 업성고등학교
 천안 업성고등학교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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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얘기가 궁금증을 넘어 점점 유쾌해지기 시작했다. 업성고는 최근 행복나눔학교(충남형 혁신학교)에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탈락했다. 행복나눔학교를 굳이 '재수'까지 하면서 하려고 한 까닭이 궁금했다.

"교사들 스스로 내년을 '수업 개선 원년의 해'로 정했어요. 교장인 제가 주도한 게 아니라 교사들 스스로 다시 해보자고 한 거예요. 교사 80% 정도가 행복나눔학교에 찬성했어요. 아이들이 더 즐겁게 공부하게 하고 싶어요.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도 교육청이 행복나눔학교에 지원하는 예산 전부를 학습자료 마련이나 수업을 혁신하는 데 쓸 생각입니다. 지금도 교사들이 수업하는 데 필요하다고 하면 학교 홍보예산을 줄여서라도 지원을 해줍니다."
 
그는 "더디지만 꿈꾸는 교육의 본질을 화복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재수까지 하면서 행복나눔학교를 신청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이 학교에서는 수업 혁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사연수는 물론 수업 형태를 토론과 조사로 바꾸고 있다. 학습단위도 일자형에서 협력 학습이 가능한 ㄷ자형과 모둠형으로 개선했다.
  
이 교장은 부임 첫날 교사들에게 '선생님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을 고객처럼 모시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관리자인 교장의 역할은 "교사들을 모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교사들이 '이거 한번 해보겠습니다', '저거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면 대부분 다 수용합니다. 그래서 전국 체험 1위 학교입니다. 매주 60∼70명의 학생들이 다른 지역으로 체험학습을 떠납니다. 이런 거 하려고 교장 하는 거 아닙니까?"

금요일 저녁은 '훼밀리 데이' "'저녁이 있는 삶' 만들어 주고 싶다"

천안 업성고에서는 항상 엘리베이터를 운행하고 있다.
 천안 업성고에서는 항상 엘리베이터를 운행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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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노력은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자율학습의 질이 높아졌다. 다양한 체험과 동아리 활동으로 자기 적성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었다. 올해에도 많은 학생들이 수시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했다.
 
"선생님을 존중해주니까 아이들도 존중받더군요. 요즘 아이들에게 아침밥 먹고 등교하라며 '9시 등교제'를 시작했지만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도 찾아주고 싶어요. '저녁이 있는 삶'이 학생들부터 적용돼야 한다고 봐요. 사교육 문제,학습량 부족 논란 등 난제가 많기는 하지만요."

업성고는 금요일만큼은 오후 5시면 학교가 텅 빈다. 금요일은 '훼밀리 데이'다. 아이들이 가족과 대화하고 식사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교사들은 연수를 한다.

이날도 교사들은 시청각실에 모여 '행복나눔학교 어떻게 할것인가'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업성고는?
2008년 3월 개교했다. 학생 수는 학년당 12학급으로 모두 1240명(교사 76명)이다. 천안 유일의 자율형 공립고로 진로 적성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수준별 이동수업, 진로와 연계된 각종 동아리 활동,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체육예술분야 선도학교로 자리를 잡았다.천안 지역 다른 고등학교가 학급당 38명인데 비해 업성고는 28명이다.소모둠 맞춤형 수업을 하고 있지만 행복나눔학교에 선정돼 내년부터는 좀더 수업혁신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행복나눔학교, #혁신학교, #업성고, #충남도교육청, #두발자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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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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