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려서 곁님하고 아이들을 먹이는 틈틈이 <치킨로드>(책과함께,2015)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을 쓴 앤드루 롤러 님은 '닭' 아닌 '닭고기'가 어떻게 수백 억 마리나 우글거리면서 지구별 곳곳을 넘나드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합니다. 오늘날 지구별에서 사람들은 닭을 얼마나 괴롭히면서 고기하고 알을 얻는가 같은 뒷얘기도 파헤치고, 먼먼 옛날부터 지구별 여러 나라와 겨레에서 닭이라는 짐승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하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어느 순간이 되었든 지상에는 200억 마리가 넘는 닭이 살고 있으며, 이 숫자는 인간의 세 배에 달한다. (9쪽)

닭은 고대 이집트에서 희귀하고 신분 높은 새였는데, 이 사실은 192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54쪽)

겉그림
 겉그림
ⓒ 책과함께

관련사진보기

요즈음 비로소 알려졌다고 하는 닭하고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만히 돌아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요즈음 들어서야 비로소 알려졌을까요? 아마 그러할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집트라는 나라에서는 예부터 닭이 '희귀하고 신분 높은 새'인 줄 잘 알았을 테지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잘 몰랐어도 말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도 닭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어요. 아시아 여러 나라도 닭을 아무렇게나 다루지 않았지요. 평화를 사랑하는 수수한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닭을 비롯해 돼지도 소도 말도 다른 모든 짐승도 함부로 다루거나 아무렇게나 부리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조촐히 살림을 지으면서 수수하게 삶을 가꾸던 사람들은 닭을 비롯한 모든 짐승을 알뜰히 보살피고 고이 돌보았어요.

닭이 낳는 알 하나를 고맙게 받아들였고, 닭 한 마리를 오래오래 키웠습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어서 병아리가 까도록 했습니다. 어미 닭이 지낼 둥우리를 사람들이 정갈하게 엮어 주었고, 살림집하고 닭우리는 한울타리에 깃들었어요. 추운 겨울에는 사람하고 닭이 한지붕 밑에서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게르만의 무덤에서 일본의 사원에 이르기까지, 닭은 1세기 초에 아시아와 유럽을 통틀어서 빛, 진리, 부활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한편 티베트 불교 신자들은 닭이 탐욕과 욕정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여 피했다. (81쪽)


이 섬(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은 거대한 석상을 조각하지 않을 때에는 곡식을 재배하고 닭을 돌보는 정교한 방식에 따라 닭장을 지은 듯하다. 수백 개에 달하는 닭장이 섬 전체에 퍼져 있다. 이 닭장은 빈틈없이 쌓아올린 돌무더기인데, 닭장마다 돌문이 달린 자그마한 입구가 있다. (109쪽)

닭하고 얽힌 여러 나라 이야기를 읽으며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닭을 알뜰히 돌보던 겨레는 모두 평화롭습니다. 닭을 고이 보살피던 수수한 사람들은 전쟁무기 따위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산업 사회에서는 닭을 공장이나 감옥 같은 곳에 잔뜩 가두어서 달포도 채 안 되는 동안에 '고기닭'으로 살찌워서 내다 팔아요.

'공장 축산'이 널리 퍼진 오늘날 산업 선진국마다 군대와 전쟁무기가 어마어마하며, 산업 선진국(과 산업 후진국) 어디나 군대와 전쟁무기를 없앨 뜻이 없어 보입니다. 평화로 나아가지 않는 모든 나라는 고기닭도 고기돼지도 고기소도 아주 끔찍한 곳에서 무시무시하게 '뽑아'냅니다.

닭 한 마리를 알뜰히 아끼면서 돌보던 지난날에는 닭 한 마리가 열 해도 살고 스무 해도 살았습니다. 이무렵에는 고기 한 점을 함부로 먹지 않았어요. 고기 한 점을 아주 고맙게 먹었을 뿐 아니라, 기쁘게 먹었지요. 오늘날에는 수수한 평화가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고기를 날마다 먹어'도 고마움이나 기쁨을 느끼거나 누리는 사람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지 싶습니다.

백신, 항생제, 비타민, 기타 보조 의약품은 모두 현대 싸움닭 생활의 필수품이다. 닭의 항문에다 고춧가루를 집어넣는 전통적인 방식은 사라지고 대신 값비싼 스테로이드와 다른 체력 강화제가 자리를 잡았다. (141쪽)

1835년에 7200만 개의 달걀이 (아일랜드에서) 잉글랜드로 운송되었다. 이 수치는 기근을 겪던 1840년대 내내 증가하여 1850년대 초반이 되자 추정치로 1억 5천만 개에 이르렀다. (190쪽)


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른바 채식이냐 육식이냐는 대수롭지 않아요. 아시아를 이룬 수수한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키운 짐승은 모두 '풀을 먹고 자랐'습니다. 풀을 먹고 자란 짐승 살점은 '고기'라 하지만, 막상 이 집짐승 살점은 '풀로 이루어졌'어요. 수수한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고기를 먹을 적에는 그냥 풀을 먹는 삶하고 같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산업 사회에서는 '닭도 돼지도 소도' 풀을 못 먹어요. 오직 사료와 항생제와 촉진제만 먹는 오늘날 '고기짐승'입니다. 고이 사랑스레 가꾸어 고맙고 반가운 밥(풀이든 고기이든)을 누리는 삶이 사라지면서, 오직 돈으로 재거나 따지는 문명과 문화예요.

"저는 산업 닭으로는 절대로 요리하지 않습니다." 블랑은 프랑스인 특유의 분노하는 표정을 지으며 오로지 최상의 재료만을 자신의 요리에 사용한다고 말했다. (359쪽)

오늘날의 양계 산업은 예전에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규모와 범위로 실험을 하고 있다. 오염된 수로, 노동자에게 위험한 환경, 식품 안전에 관한 우려, 형편없는 동물 복지 문제 등은 활기찬 국제무역의 그림자 속에 대부분 은폐되어 있다. (399쪽)

양계산업 같은 이야기는 미국과 유럽과 한국 모두 똑같다고 할 만합니다. 아름다움이 사라지면서 산업이 되고, 사랑스러움이 사라지면서 문명이 됩니다. 기쁨이 사라지면서 경제발전이 되고, 즐거움이 사라지면서 현대사회가 됩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손수 밥을 차려서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밥상을 누리는 자리에서 늘 스스로 묻습니다. 오늘 하루도 맛있는 밥인가? 오늘 하루도 기쁜 밥인가? 오늘 하루도 노래하는 밥인가? 오늘 하루도 웃음잔치 같은 밥인가? 이 물음에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면 언제나 맛있는 밥입니다. 이 물음에 스스로 고개를 젓는다면 아무래도 맛없는 밥이 되고 맙니다.

실상을 보고 충격 받은 한 텍사스의 동물학자는 미국의 일반적인 산란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여긴 닭 정신병원입니다." (378쪽)

치엥 응안이라는 작은 공동체의 지역 공무원은 소규모 커피 농장을 하며 애완 야생닭 한마리를 기르는 한 농가로 우리를 안내했다. "닭은 20년도 살 수 있죠." (406쪽)

스무 해를 살 수 있는 닭이라면, 닭 한 마리를 스무 해 동안 기르면서 꾸준하게 달걀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스무 해에 걸쳐 어미 닭은 꾸준히 새끼를 낳을 테며, 새끼는 어른 닭으로 자라서 다시 새로운 새끼를 낳을 테지요.

다만, 집닭을 키워서 고기를 얻는 얼거리라면 오늘날처럼 '대량생산·대량소비'는 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더 많은 돈'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닭고기를 '대량생산·대량소비' 해야 할까요? 맛있고 튼튼한 닭고기를 누리면서 아픈 데가 없이 즐거운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맛없고 안 튼튼한 닭고기를 값싸게 먹는 길이 도시사람한테 즐거운 삶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닭고기나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너무 싸게' 먹는 길을 걷는 바람에 외려 더 아프고 더 고되며 더 따분한 삶이 되지는 않을까요?

인문책 <치킨로드>는 닭 한 마리가 이 지구별에서 사람들하고 어떻게 어우러지면서 살았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러면서 책 끝자락에서 '닭 농장'은 '닭 정신병원'이라 할 만하다는 얘기를 살며시 비추고, '스무 해를 살 수 있는 닭' 이야기를 가만히 보탭니다. 닭고기를 먹고 싶은 이웃한테 어떤 닭을 어떻게 먹을 때에 즐거운 노래가 흘러나올 만한가 하고 조용히 묻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어떤 밥이나 닭을 먹어야 즐거울까요? 우리는 어떤 고기나 풀을 먹어야 삶이 아름다울까요? 예부터 '띠' 가운데 하나로 섬기던 닭인데, 오늘 우리는 어떻게 닭을 이렇게 하찮거나 아무렇게나 다루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닭고기나 달걀을 고맙게 여겨서 먹던 우리 삶은 언제부터 이렇게 확 달라지거나 송두리째 바뀌었는가 하고 곰곰이 되새기면서 책을 덮습니다.

덧붙이는 글 | <치킨로드, 문명에 힘을 실어 준 닭의 영웅 서사시>
(앤드루 롤러 글 /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펴냄 / 2015.11.5. / 195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 함께 올립니다.



치킨로드 - 문명에 힘을 실어준 닭의 영웅 서사시

앤드루 롤러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2015)


태그:#치킨로드, #앤드루 롤러, #닭, #문명사회, #공장식 축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