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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청년은 치매가 있는 할머니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열아홉 청년은 치매가 있는 할머니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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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과 늦은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사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이니 오히려 저녁식사에 가까웠지만 그도 나도 아침을 먹지 않았으니 아침이라고 하기에도, 점심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단지 허기를 면하는 식사였습니다.

"평소에도 아침을 안 먹니?"
"네, 최근에 아침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나도 오늘이 첫 식사이긴 하다만…. 나는 어지간히 산 사람이고 너는 여전히 성장을 해야 할 나이에 아침을 먹지 않으면 곤란하지."
"아니에요. 선생님도 더 사셔야죠."

"고맙다. 내가 몇 살쯤으로 보이니?"
"60대로요."

"그럼 몇 년쯤이나 더 살면 좋을까?"
"20년이요."

"그럼 80세쯤까지 살 수 있다는 거네. 요즘은 의술이 좋아져서 점점 수명이 늘고 있다는데?"
"오래 사는 것은 좋지 않은 거 같아요."

"아니, 19살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말인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게한 계기라도 있어?"
"할머니가 나를 고생시키고 있거든요."

"편찮으셔?"
"치매세요."

"연세가 얼마나 되셨지?
"83~84세쯤 되세요. 정확히는 모르고요."

"나를 고생시킨다니? 너보다 부모님이 더 힘드실 텐데…."
"누나와 저 둘이 살아요. 할머니와. 그런데 할머니는 저와 한 방을 쓰시거든요."

"아빠와 엄마는?"
"부모님은 제가 젖먹이 시절에 이혼하셨어요. 아빠와 함께 살지만 아빠는 직장 때문에 지방에 가계세요."

"이런. 누나는?"
"대학생이에요."

"몇 학년인데?"
"모르겠어요. 저보다 4살이 많아요."

"그럼 너뿐만 아니라 누나도, 할머니도 아침식사를 못하겠구나."
"그렇지요. 라면을 끓여먹고 학교가야 하는데 아침에 너무 바빠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누나도 그렇게 바빠?"
"네. 알바하고 늦게 들어오니까요."

"두 명 모두 학교에 가고 나면 치매할머님의 식사는 누가 드려?"
"노인복지사가 오세요. 낮 12시 오셔서 3시간 돌보세요."


"할머님은 그때 첫 식사를 하시겠구나."
"그렇지요."

"할머니는 누나와 한 방을 쓰지 않고?"
"할머니가 저를 더 좋아해요. 저를 키웠거든요."

"할머니께서 너를 기억하시나?"
"못해요.

"어떻게 알지?"
"저를 보고 저를 데려오라고 하시거든요."

"그러실 정도면 네가 많이 힘들 것 같은데…."
"잠을 거의 안 주무세요. 그리고 제가 아침에 일어나면 제 옷과 책을 다 싸놓고 빨리 집에 가자고 조르세요."

"그럼 어떻게 말씀드려?"
"그러려니 해요.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니까요."

#2

"아버지는 자주 오셔?"
"주말마다 오셨는데 현재는 한 달째 안 오셨어요."

"전화는 자주해?"
"안 해요."

"너라도 전화를 자주 드리지 않고?"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아요."

"엄마는 간혹 얼굴이라도 보고?"
"작년 추석에 한 번 만났어요."

"그럼 연락은 닿고 있구나."
"누나랑은요."

"그런데 너와는 작년에 처음 만났다는 거냐?"
"네. 누나는 저보다 4살이 많아서 엄마를 기억해요. 그렇지만 저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작년 추석에 부여의 큰 집에 갔는데 누나가 어디 좀 같이 가자고 해요. 그곳에 어떤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저를 보더니 울기만해요. 누나가 엄마래요."

"너는 눈물이 안 나던?"
"전혀요."

"왜?"
"저는 무감각했어요. 제 가슴속에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거든요."

"그럼 누나가 미리 엄마 만나러간다고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네."
"아니요. 그래도 갔었을 거예요. 단 한번은 엄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는 싶었거든요."

"그럼 누나는 그동안 간혹 혼자 엄마를 만났겠구나."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것 때문에 아빠에게 혼나곤 했거든요."

"왜 혼나?"
"아빠는 엄마를 절대 못 만나게 하거든요. 이혼하면 자식을 누가 키울 건지를 법으로 정해야 된대요. 그런데 아빠가 키우기로 했고, 아빠는 엄마가 누나와 저를 만나지 못하도록 접근금지명령을 청구하기도 했데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궁금한 게 있어요. 아빠와 엄마가 왜 이혼했는지가 알고 싶어요."

"그렇게 궁금하면 아빠에게 물어보지 않고?"
"못 물어보겠어요."

"왜?"
"혼날 것 같아서요."

"그럼 작년에 엄마 만났을 때 물어볼 수도 있었잖아?"
"그 사람에게는 물어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럼 그때 엄마와는 아무 말도 안하고 헤어졌니?"
"식사를 함께했어요."

"어디 식사가 넘어갔겠나?"
"그 분은 울음을 그치고 나서는 금방 괜찮아졌어요."

"너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전혀요."

"그럼 이유식을 먹기 전부터 너를 키우신 할머니가 완전히 엄마 같겠구나?"
"그렇지도 않아요. 우리 집에는 거의 말이 없어요. 누나는 자기 일로 너무 바쁘고 아버지는 멀리 계시지만 오셔도 거의 말씀이 없으세요. 제가 불만인 것은 아버지는 일곱 형제에 막내예요. 그런데 누구도 할머니에 관심이 없어요."

"너무 가난하거나 형편들이 여의치 않는 모양이구나."
"그렇지도 않아요. 다섯 분은 모두 평범하게 살아요. 단지 한 분만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미국으로 가서 살고 있대요. 오래전의 일이지만 아버지도 큰아버지에게 2억 원을 떼여서 지금도 그 빚 때문에 고생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 할머님은 젖먹이인 너를 키워야 했기에 막내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다른 아버지의 형제들은 그 후로 너희 집에 계시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았겠고…. 앞으로 네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치매라는 것이 좋아지기는 어렵거든. 진전을 지연시킬 수는 있어요."
"할머니는 저의 서너 살 시절만 기억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늘 어두워지니 빨리 저를 집에 데려오라곤 하시거든요."

"비로소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했던 네 말을 이해할만 하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네가 많이 힘들겠구나."
"하지만 돌아가시면 더 힘들 것 같아요."

그는 라면국물에 밥을 말면서 슬쩍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습니다. 나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재빠르게 눈가도 닦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가족, #치매,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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