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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한글을 깨치고 수필집을 낸 광양의 다섯 어르신들. 왼쪽부터 유금순, 장회심, 송봉애(교사), 김춘자, 유영희, 백본심 어르신이다.
 갓 한글을 깨치고 수필집을 낸 광양의 다섯 어르신들. 왼쪽부터 유금순, 장회심, 송봉애(교사), 김춘자, 유영희, 백본심 어르신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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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꿈만 같소. 내가 글을 읽고, 시도 쓴다는 게. 몇 년 전까지 ㄱ,ㄴ도 몰랐는디." 유영희(73) 어르신의 소감이다.

"지금은 테레비 자막도 읽어부요. 내가. 멍청한 세월 살았는디, 심봉사가 눈 뜬 기분이 이랬을까 싶소." 장회심(75) 어르신의 너스레다.

"아는 사람이 보기엔 보잘 것 없겄죠. 근디, 우리는 큰 자부심 느끼요." 백본심(74) 어르신의 말이다.

갓 한글을 깨친 어르신 다섯 명이 함께 수필집을 냈다. 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에 다니는 어르신들이다. 주인공은 백본심, 유영희, 김춘자(69), 장회심, 유금순(70) 어르신이다. 제목은 <내 인생의 봄>이다.

광양노인복지관에서 한글을 공부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펴낸 수필집 〈내 인생의 봄〉의 표지. 어르신들의 생활글이 실려 있다.
 광양노인복지관에서 한글을 공부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펴낸 수필집 〈내 인생의 봄〉의 표지. 어르신들의 생활글이 실려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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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에 다니는 어르신들이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 지난 12월 9일 수업시간이다.
 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에 다니는 어르신들이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 지난 12월 9일 수업시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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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 용지 크기 180쪽으로 엮어진 이 책에는 다섯 어르신의 생활글과 시가 실려 있다. 남편과 자식에 대한 이야기, 농사일기, 여행 등을 주제로 한 글이다. 글자를 몰라서 겪어야 했던 한도 서려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어귀도 보이지만, 내재된 끼와 감성만은 철철 넘쳐난다.

'오매, 저녁 하늘 좀 보아라./ 구름이 화폭을 그려놓고 있는 저/ 해 좀 보아라./ 둥근 해는 먹기에도 고운 대봉감 색깔처럼 고와 불겠다./ 지는 해는 왜 저리 예쁠까?/ 저 화폭 속 저 것은 대나무 같다./ 야, 야, 저것은 허수아비 같다./ (중간 생략)/ 그래도 우리는 예쁜 모습으로 늙는다./ 죽음이 우리 얼굴에다 화폭을 그려도/ 살아온 세월이 아니겠어./ 우리의 훈장이야 예쁘다 예뻐.'

백본심 어르신의 시 '저녁 하늘'의 일부분이다. 감나무 밭에서 일을 하다가 하늘의 구름을 보고 쓴 글이다. 상대적으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지만,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스로 위안도 삼는다.

'물이 없다면 살 수가 없겠지만/ 물이 너무 무서워 텔레비전을 볼 수가 없네./ (중간 생략)/ 꽃다운 저 생명을 어찌한단 말인가?/ 목이 메어 텔레비전을 볼 수가 없네./ 꽃 같은 우리 아이들/ 피여 보이지 못한 우리 아이들의 꿈/ 바다야! 바다야!/ 대답해라. 아이들의 꿈을 건져줘라.'

백 어르신이 쓴 시 '통곡의 바다'의 일부분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난해 4월 16일 텔레비전을 보면서 든 생각을 글로 옮겼다. 자식을 키운 부모의 안타까움과 애절함이 절절이 녹아있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는 어르신은 금세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다.

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에 다니는 어르신들의 수업 모습이다. 지난 12월 9일이다.
 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에 다니는 어르신들의 수업 모습이다. 지난 12월 9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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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월호 침몰사고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눈물이 먼저 난다는 백본심 할머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지금도 세월호 침몰사고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눈물이 먼저 난다는 백본심 할머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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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첫눈이/ 하얗게 쌓였어요./ 장독이 하얀 모자를 쓰고/ 매화나무 가지에도/ 하얀 눈꽃이 피었어요./ 빗자루로 눈을 쓸고/ 하얀 눈꽃을 바라보았어요./ 내 마음도 하얗게 되었어요.'

유영희 어르신의 시 '첫눈'이다. 첫눈 내리는 날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선명하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소녀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나는 학교에 가는 날이면 신이 납니다./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책가방 메고서 학교에 갑니다./ 우리 선생님 반겨줄 거라는 생각에 더 신이 납니다./ 친구들 건강한 몸으로 다 같이 모여서 공부하고/ 선생님 말씀 귀가 닳도록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려도/ 나는 공부시간이 좋습니다./(뒷부분 생략)'

'공부시간'을 주제로 한 유영희 어르신의 생활글 앞부분이다. 한글을 배우러 가는 어르신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다.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도 배어있다. 입만 열면 '감사, 감사'를 달고 사는 어르신의 겸손도 묻어난다.

광양노인복지관에서 열리는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에 다니는 어르신이 연필을 들고 책을 보고 있다. 지난 12월 9일의 모습이다.
 광양노인복지관에서 열리는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에 다니는 어르신이 연필을 들고 책을 보고 있다. 지난 12월 9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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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의 출석부. 어르신들의 출석률이 아주 높다.
 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의 출석부. 어르신들의 출석률이 아주 높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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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 생략)/ 학교에서 사이시옷에 대해 배웠다. 어려워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선생님이 눈치를 채셨는지 반복해서 설명을 해 주셨다. 돌아서면 잊어 버려도 한자 한자 배운 글자가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글자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한다.'

김춘자 어르신의 생활일기 '장날'이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어르신의 모습이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그려진다. 자상한 선생님의 모습도 떠오른다.

'(앞부분 생략)/ 요즘 가끔 거울을 보면 "아! 내가 언제 이렇게 늙어 버렸을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서글플 때도 있다. 나이 들어 몸이 불편한 영감을 봐도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어렵고 힘든 세월 열심히 일하여 4남매를 낳고 길러 모두 결혼 시키고 나니 빈 둥지처럼 되어 버렸고 남은 것은 초라해진 영감과 나 둘뿐이었다.(뒷부분 생략)'

글자를 깨치면서 "벅찬 감동을 느낀다"는 장회심 어르신의 글 '내 인생의 봄'의 일부분이다. 어르신은 "공부를 해도, 한쪽으로 들어오고 다른 한쪽으로 바로 나가버린다"면서 "다섯 살만 젊었어도, 배운 것을 일주일은 기억할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역시 계절은 변함이 없다. 어젯밤에 첫 얼음이 얼었다./ (중간 생략)/ 어제 김장 무와 배추를 뽑아 놓기를 잘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다 얼었을 텐데. 무가 뿌리가 너무 굵고 좋다. 무를 깨끗이 다듬어 겨울에 먹을 것을 고무통에 넣어두고 무청을 삶아서 시레국 재료로 쓰려고 널어놓았다.(뒷부분 생략)'

유금순 어르신의 글 '계절'의 일부분이다. 무청을 널어놓고,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르신은 소소한 일상을 농사일지 형식으로 글을 써오고 있다.

수필집 〈내 인생의 봄〉을 펴낸 다섯 어르신과 송봉애 교사가 지난 12월 9일 유당공원에 섰다. 유당공원은 광양시노인복지관 바로 앞에 있다.
 수필집 〈내 인생의 봄〉을 펴낸 다섯 어르신과 송봉애 교사가 지난 12월 9일 유당공원에 섰다. 유당공원은 광양시노인복지관 바로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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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과정의 송봉애 교사가 꽃을 들어보이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2월 9일 모습이다.
 광양시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과정의 송봉애 교사가 꽃을 들어보이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2월 9일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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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늦깎이 공부를 하고 책을 냈다는 건, 자녀들에게도 화제다. "막둥이가 춤을 춥디다. 우리 엄마 장하다고." 백본심 어르신의 얘기다. "며느리도 칭찬합디다. 아들은, 그 나이에 학교에 다닌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우리 엄마 대단하다고." 장회심 어르신의 자랑이다.

다섯 어르신을 포함해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의 교사로 봉사하며 수필집으로 엮은 송봉애 씨는 "문해교육을 하면서 어르신들의 글에서 잠재된 끼를 발견하고 책으로 엮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다소 정제되지 않은 문법이 있고 표현 방식도 서툴지만, 그 분들의 소리와 글자에 최대한 충실했다"고 말했다.

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에는 어르신 3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같은 자음과 모음 연결하기로 시작해 받아쓰기, 그림과 문장 잇기 등을 통해 글자를 깨쳤다.

지금은 초등교육의 마지막 단계로 그림 감상법, 비유와 묘사를 통한 시 써보기 등을 하며 중등과정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일주일에 3일, 하루에 2시간씩 공부한다. 송봉애 씨가 수업을 책임진다.

광양시노인복지관에서 진행되는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과정에서 한 어르신이 안경을 쓰고 책을 보고 있다. 지난 12월 9일이다.
 광양시노인복지관에서 진행되는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과정에서 한 어르신이 안경을 쓰고 책을 보고 있다. 지난 12월 9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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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의 수업시간. 송봉애 교사의 말에 어르신들이 귀를 쫑긋 세워서 듣고 있다.
 광양노인복지관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 과정의 수업시간. 송봉애 교사의 말에 어르신들이 귀를 쫑긋 세워서 듣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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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광양노인복지관, #송봉애, #백본심, #문자해득과정, #내인생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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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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