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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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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최근 소설 <칠드런 액트>는 고등법원 판사 피오나가 35년간 함께 산 남편으로부터 스물여덟 살의 여성과 연애를 원한다는 통보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혼을 원하는 거네." "아니, 난 모든 게 그대로이길 원해. 속이지 않고." "그러면 우리 관계는 끝장이야. 그만큼 단순한 문제야." "(피오나는) 자신이 잃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현대식의 체면이 아닌지...(중략)... 모두가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중략) ... 안달을 내며 마지막 한 방을 노리는 남편, 품위를 지키는 용감한 아내, 멀찌감치 물러서 있는 애꿎은 젊은 여자." 

이혼은 '사회적 죽음'이 되는 사회에서 그는 왜?

그렇다. 이혼은 단순하지 않다. 사랑이든 재산이든 사회적 신망이든 관계망이든, 잃을 것이 많을수록 복잡하고 떠들썩하고 어렵고 고통스럽다. 잃을 것이 많지 않은 장삼이사라도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당사자라면 비난과 질타를 각오해야 하고, 유책당사자가 아니라 해도 '동정'은 "사회적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연말 직접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개인적 치부'를 고백하며 이혼 의사를 밝혔다. 공개되는 것이 두렵지만, 한쪽은 숨어 지내야 하고 다른 한쪽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두 가정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옳지 않기 때문에 결자해지하기 위해서, 비난과 질타를 달게 받을 각오로 용기를 냈다고 한다.

불륜과 혼외자 및 별거 사실, 이혼 의사를 밝힌 이례적인 방식도 그러하거니와 그룹 회장의 이혼 문제는 주가 변동과 그룹 지배구조에도 직결되는 문제이니, 그들의 이혼사는 개인사가 아니라 비상한 사회적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편지의 후폭풍은 거세다. SK텔레콤 주가가 6% 이상 빠지는 등 계열사들의 주식이 타격을 받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진의에 대해서는 추측이 분분하나, 이혼의 결심을 굳혔다면 공개 편지 방식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유책배우자인 최태원 회장이 소송을 통해 이혼을 성사(?)시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심경을 털어놨다. 사진은 최 회장이 최근 세계일보에 보낸 편지 전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심경을 털어놨다. 사진은 최 회장이 최근 세계일보에 보낸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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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이혼법제에서는 노소영 동의없는 이혼은 어려워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위헌을 선고하였으니, 최태원 회장의 불륜사실과 혼외자 존재의 고백을 간통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간통죄로 처벌할 수 있었던 헌재 결정 이전이라 해도 간통죄는 이혼을 전제로 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이혼법제에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있으나, 우리나라는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5년 9월 15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유책주의를 다시 확인했다.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상대 배우자에게 민법 제840조의 이혼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 다만, 상대방도 이혼을 원하거나,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표면적으로 이혼에 불응하고 있기는 하나 이혼의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만 파탄주의를 적용해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인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가정을 지키겠다'고 대응했다. 입학 연령에 이른 6세의 혼외자도 자신이 키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도 있다. 최태원 회장이 이혼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이다.

최태원 재산의 50%는 노소영 재산

10여 년 전부터 이혼을 논의했고, "이미 오래 전에 깨진" 결혼생활을 지키겠다는 노 관장의 진의에 대한 추측도 분분하다. 노 관장이 SK텔레콤을 재산분할로 요구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도 나온다.

SK텔레콤은 지난해 7월 국정원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제작업체인 'Hacking Team(해킹팀)'에 SK텔레콤 망을 쓰는 국내 스마트폰의 해킹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부정했지만, 캐나다 비영리 연구팀이 해킹팀과 국정원 사이에 오간 이메일 내용을 근거로 폭로한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재벌 총수의 사면을 없을 것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지난 8.15 특별사면 대상에 최태원 회장을 포함 시켰다.

SK텔레콤과 노소영 관장의 관계는 특별하다. 선경그룹(현 SK그룹)이 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 정부 시절 최대의 이권사업으로 불렸던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냈으나, 대통령 사돈 기업에 대한 특혜시비가 일자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다시 1994년에 한국이동통신 지분 23%를 4271억 원에 사들여서 SK텔레콤을 통신시장 절대강자로 키웠으니, 최태원 회장의 입장에서는 처가에 빚진 것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SK 텔레콤에 대한 노소영의 재산분할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SK텔레콤과 관련한 최태원 회장의 보유지분은 1988년 결혼 전부터 보유한 특유재산이 아니고 혼인 중 형성된 재산이므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다. 아내가 가사노동만 했다 해도 25년 정도의 결혼생활을 유지했다면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도는 50% 정도 인정된다.

최태원 회장은 4조2천억 원 대의 자산을 보유한 국내 5위 부호다. 그가 결혼 전 보유했던 재산(특유재산, 약 1조원으로 추정)을 제외하고 모두 재산분할의 대상이다.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지주회사 SK(주)의 지분 23.4% 중 절반이 노소영 관장에게로 이전될 수도 있다. 최태원 회장 여동생 최기원의 SK(주) 지분을 합하면 19.16%로 대주주 지위를 유지할 수 있어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SK그룹의 지배구조 자체에 커다란 변동이 생기는 것이다.

최태원 SK회장이 김아무개씨를 위해 마련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반포2차 아펠바움 아파트
 최태원 SK회장이 김아무개씨를 위해 마련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반포2차 아펠바움 아파트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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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고통, 그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것


최태원 회장은 이 모든 위험을 각오하고 언론을 통해 '외도'로 낳은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에게 가고 싶다며 노소영 관장에게 이혼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사회적 죽음'을 각오하고 이런 선택을 시도 하고 있는 것일까? 노소영 관장 지인의 말(MBN 보도)처럼 상대 여성의 압박에 의한 것이었을까. 압박에 의했다 해도 쉽지 않은 결행이었다. 최 회장으로서는 다른 자녀 셋은 모두 장성하였으니, 자신을 포함하여 양쪽의 불행을 끝내고 어린 자녀의 양육과 아이 엄마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여겼을까?

어린 한 아이의 엄마는 최태원의 선택에 고마워하고 감격해할 것이다. 그러나 장성한 세 아이의 엄마는 슬픈 피오나와 같은 갈등에 처했다. <칠드런 액트>의 피오나는 남편의 '새 여자' 통보에 단호히 "우리 관계는 끝장"이라고 맞받아쳤으나 "모두가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다를 바 없다"며 망설인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11살 소년 샘은 이렇게 갈파한다. "사랑보다 더한 고통도 없다."(Worse than the total agony of being in love?).

최태원 회장은 그런 사랑의 고통 속에 있는 것일까?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파장은 간단치 않다. 사랑의 고통이 불법행위를 만나면 더 복잡해진다. 이혼절차의 진행 중에 일부 언론이 이미 제기한 대로 최태원 회장이 '아이의 엄마'에게 아파트를 마련해준 과정에서 SK자회사들을 동원한 불법행위가 밝혀진다면, 그의 8.15특별사면이 허사가 될지도 모른다.


태그:#최태원 , #이언 맥큐언 , #칠드런 액트, #유책주의, #SK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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