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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공원에 도착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기다리는 가족들.
 일찌감치 공원에 도착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기다리는 가족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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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서 심심하지 않으세요?"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한국사람 없는 호주의 낯선 시골 동네에 산다고 하니 외로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던지는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아뇨, 시드니에 살 때보다 바빠요."

호주 시골의 퇴직 생활은 생각보다 바쁘다. 골프장을 끼고 있는 곳이라 일주일에 두어 번은 골프장에 나간다. 잔디도 깎고 뒷마당에 심은 감나무 두 그루와 꽃나무에 물을 준다. 자그마한 채소밭도 가꾼다. 그리고 한 달에 두어 번은 주위에 있는 동네 혹은 국립공원을 찾아 나선다.

한 가지 더 바쁜 일이 생겼다. 타리(Taree)와 포스터(Forster)에 있는 콘서트 밴드에 가입한 것이다. 학창 시절 밴드부에서 색소폰을 연주한 경험을 살리기로 했다. 거금을 내서 악기도 샀다.

동네 사람 틈에 끼어 연주한다. 연주하는 곡이 쉽지 않다.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재즈와 스윙 음악이 대부분이다. 오래된 영화 주제곡도 연주한다. 호주 사람에게는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친근한 음악이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음악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연습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한국 가요라면 쉽게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연말연시다. 주위가 떠들썩하다. 동네의 이런저런 그룹마다 파티 일정이 잡혀있다. 시골에는 퇴직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그룹이 많다. 볼링, 타이지, 요가, 낚시, 사진, 테니스 등 퇴직해서 즐기기에 좋은 그룹이다. 몇 개의 클럽에 가입해 활동하는 아내도 파티에 참석하느라 분주하다.  

동네 밴드에 가입한 나도 바쁘다. 연말을 맞아 시골 동네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해 연주한다. 양로원이나 실버타운에서 초청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의 연주 일정이 잡혀있다. 생소한 곡은 물론 친숙한 크리스마스 캐럴도 스윙으로 편곡해 빠르게 연주한다. 쉽지 않다. 거의 매일 연습한다. 집안은 색소폰에서 나오는 캐럴 음악으로 시끄럽다.
 
시골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동네 축제다. 동네 넓은 잔디밭에 트럭을 세워 놓고 무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시골에서는 가장 큰 공공건물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파티하기도 한다. 물론 밴드만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나와 서투르지만 진지하게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다. 동네 합창단도 정성 들여 만든 의상을 입고 관중을 즐겁게 한다. 우리 밴드도 연습한 곡으로 파티 분위기를 띄운다. 파티가 끝나면 제법 큰 규모의 불꽃놀이를 하는 곳도 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쿠퍼눅(Coopernook)과 이웃 동네인 윙햄(Wingham)에서 수수한 옷차림으로 뮤지컬 가수가 부르는 노래였다. 수준 높은 곡을 진지하고 멋지게 표현한다. 이 동네와 관련이 있는 가수일 것이다. 휴가철 시골에 내려와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이웃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축제 분위기로만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동네에서는 예수님 탄생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대한 메시지를 동네 할머니 혹은 목사님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쿠퍼눅에서는 오두막을 만들고 당나귀까지 데리고 와서 예수 탄생의 모습을 재현하며 메시지를 전한다. 윙햄에서는 목사님의 기도로 파티를 끝내기도 한다. 교회는 텅텅 비었지만, 기독교 정신이 생활 속에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파티의 절정은 산타클로스의 등장이다. 산타는 선물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나타난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반긴다. 티노니(Tinonee)라는 동네에서는 산타가 소방서 트럭을 타고 요란하게 와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기도 한다. 간단한 선물이지만 산타가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기뻐한다. 예수님 자리를 산타가 대신했다는 불평도 하지만 산타의 나누는 모습에서 사랑을 본다. 

시골에서 맞는 두 번째 연말연시다. 지난날을 돌아본다. 새해를 바라본다. 2016년도 나름대로 바쁘게 살 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얼마 전 캐나다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피난민을 위해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프랑스 시인의 시를 노래로 불렀다는,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며, 이해하는 것은 나누는 것이라. To live is to love, To love is to understand, To understand is to share!' 

새해 아침이다. 지난해와 다름없는 아침이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산과 바다의 모습도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조금 변하고 싶다. 가진 것은 없어도 이웃과 나누는, 조금은 바쁜 산타로 살고 싶다.

2016년, 삶의 황혼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음악을 좋아하는 동네 사람이 밴드를 결성해 이곳저곳 다니며 음악을 나눈다.
 음악을 좋아하는 동네 사람이 밴드를 결성해 이곳저곳 다니며 음악을 나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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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호주 동포 신문 '한호 신문'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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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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