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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길을 잃고 회의 중인 아이들
▲ 어설픈 동굴 탐험대 중간에 길을 잃고 회의 중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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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동굴 앞에 도착해서 동굴내에서의 주의사항을 설명듣는 아이들
▲ 동굴탐험대-2 겨우 동굴 앞에 도착해서 동굴내에서의 주의사항을 설명듣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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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저녁 무렵의 교정에는 노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박쥐들이 날았다. 어떤 날은 집안에 날아들기도 했다. 흡혈 박쥐의 존재를 이해하기 시작하자 박쥐는 어느덧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물론, 어디에서 오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황금박쥐'처럼 경외의 대상인 경우도 있었다. 도시는 점점 밝아져 갔고, 그러던 어느 날, 마법의 피리 소리를 따라간 듯 박쥐는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그런 박쥐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동굴체험이었다. 동굴을 찾기 위해 떠난 아이들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저희들끼리 옥신각신해가며 점차 목적지롤 향하고 있었다. "절대 도와주면 안 된다"는 남 선생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면서 '아마'(아빠엄마의 줄인말)들은 묵묵히 뒤를 쫓았다. 그리고 마침내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탐험의 시작... 드디어 박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밧줄을 타고 십여미터 이상을 내려가야 하는 험난한 길이지만 여섯살 막내들도 무사히 내려갔다.
▲ 동굴 입구로 내려가는 험난한 길 밧줄을 타고 십여미터 이상을 내려가야 하는 험난한 길이지만 여섯살 막내들도 무사히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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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속으로 걸아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아서 아이들이 쭈뼛거리고 있다.
▲ 동굴 입구 암흑속으로 걸아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아서 아이들이 쭈뼛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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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을 자느라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박쥐떼. 소리와 빛에 민감해서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 동굴 천장에 매달린 박쥐떼 겨울잠을 자느라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박쥐떼. 소리와 빛에 민감해서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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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모산굴. 사람들이 종유석을 많이 훼손해 현재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종종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사용된다고 한다. 동굴의 입구는 지상에서 10여 미터 아래에 있었다.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입구에 도달할 수 있는, 접근이 쉽지 않은 자연굴이다. 여섯 살 꼬맹이부터 어른들까지 천천히 줄을 잡고 내려갔다. 동굴 안에는 황홀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안내를 맡아주신 남 선생님의 아버님(우리는 할아버지 탐험대장님이라고 불렀다)께서 천천히 우리를 인도해주셨고, 점점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꼬맹이들을 챙기면서 가느라 더디게 진행되는 동굴 탐험이었다. 랜턴 몇 개로 시야를 확보해 가며 조금씩 나아가던 그때, 천장에 시커먼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큰 소리가 나면 박쥐들이 겨울잠을 깬다고 주의를 주셨기 때문에 놀라움의 탄성은 안으로 삭이며, 불빛을 비췄다.

주먹 크기의 박쥐들이 삼삼오오 혹은 떼를 지어 천장에 매달려 잠들어 있었다. 수십 마리가 떼지어 있는  아래로 지나가려니 어른인 나도 머리카락이 솟는 기분이었다. 동굴은 100여 미터 정도로 그리 길지는 않았다. 동굴 안을 흐르는 작은 냇물은 발굴되지 않은 아래쪽의 또 다른 굴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하셨다.

언어의 한계가 아쉬울 정도로 경이로운 풍경

보는 이들을 저절로 고개숙이게 만드는 신비한 무엇인가가 깃들여져 있다.
▲ 동굴안으로 비추는 강렬한 빛 보는 이들을 저절로 고개숙이게 만드는 신비한 무엇인가가 깃들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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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안은 전기가 연결돼 등을 켤 수 있는 구조다. 남 선생님과의 상의 끝에 아이들에게 어둠의 분위기와 공간의 감각을 느껴볼 기회를 주자고 결론 내렸다. 달랑 랜턴 세 개 만  들고 들어 간 이유다. 태곳적 고요가 살아 있는 곳, 어둠의 무게가 느껴지는 곳, 그리고 천장에 박쥐가 우글거리는 곳. 도시의 아이들에게 이런 곳에서 오감을 열고 자연과 동화할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얼마나 주어질까.

박쥐를 처음 보는 아이들은 몸은 한껏 웅크렸지만, 호기심의 촉수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힘껏 뻗치고 있었다. 박쥐들과 아쉬움을 남긴 채 이별을 고하고 되돌아오는 길.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강렬한 빛은 저절로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종교인이 대부분인 '아마'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도 자연이 빚어낸 뭉클한 장면을 가슴에 꼭꼭 담아두려는 듯, 발걸음을 멈추고 진지해졌다. 나 역시 언어의 한계를 아쉬워하며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동굴 탐험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탐험대장님은 일부러 뒷산을 빙 둘러오는 길로 안내하셨다. 산길을 거닐며, 낙엽이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소리을 귀로 듣고, '까마귀 오줌통'이나 '도깨비 꽃' 같은 낯선 식물과 나무를 눈으로 보고, 산양의 먹이가 될 커다란 나뭇잎을 손으로 주우며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연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감맛이 꿀맛

버려진 감나무처럼 보였지만 홍시의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 홍시를 따 주시는 탐험대장님 버려진 감나무처럼 보였지만 홍시의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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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생긴 모양만 보고 손을 흔들던 아이들이 일단 맛을 보자 하나 더달라고 졸라댔다.
▲ 홍시를 받아 먹는 아이들 처음에는 생긴 모양만 보고 손을 흔들던 아이들이 일단 맛을 보자 하나 더달라고 졸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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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아무도 따지 않아 홍시에서 곶감으로 변해가고 있는 감나무를 발견했다. 하나만 따서 맛보자는 아이들의 의견에 탐험대장님은 흔쾌히 쭉정이처럼 생긴 감을 따주셨는데, 그 감 맛이 정말 꿀맛이다. 맛을 본 아이들은 서로 더 달라고 아우성을 쳤고, 따주는 분은 진땀을 빼셔야 했다.

시골에는 이렇게 감을 따지 않고 두는 곳이 많다고 한다. 감나무 가지가 약하기 때문에 섣불리 따다가 떨어지기 쉬운데, 노인들만 남아 있는 시골에서 감 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서 아예 손을 안 댄다는 것이다. 여하튼 홍시와 곶감의 중간 형태를 지닌 그 감 맛은 꿈엔들 잊힐 리 없다.

숙소로 돌아온 아이들은 오는 길에 주워온 나뭇잎을 산양에게 먹이로 주었다. 젖을 짜는 산양인데 그날 먹은 풀의 종류에 따라 다음날 젖에서 나는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솔잎을 많이 먹은 날은 솔 향이 나고, 콩 껍질을 먹은 날은 고소한 맛이 난다는 것이다. 기분 탓 일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다. 아이들 중 산양유를 먹고 자랐다는 아이 하나는 "엄마, 엄마" 하며 산양에게 친절히 먹이를 주고 있었다.

학원과 숙제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모습

정식 명칭은 쥐방울 덩굴이며, 까치 오줌 요강, 까마귀 오줌통이라 불린다. 한방에서 열매와 뿌리를 약재로 쓰며, 주로 혈압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 까마귀 오줌통 정식 명칭은 쥐방울 덩굴이며, 까치 오줌 요강, 까마귀 오줌통이라 불린다. 한방에서 열매와 뿌리를 약재로 쓰며, 주로 혈압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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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서 돌아오는 길에 주은 커다란 낙엽을 먹이로 주고 있다.
▲ 산양 먹이 주는 모습 동굴에서 돌아오는 길에 주은 커다란 낙엽을 먹이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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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점심을 지어 먹고, 깨끗이 청소를 한 후 남 선생님과 할아버지 탐험대장님, 그리고 도움 주신 가족분들께 고개숙여 인사드리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이틀간의 일정이 고된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은 바로 곯아 떨어졌고, 저마다의 꿈속에 빠져들었다.

어떤 아이는 꿈속에서 박쥐 떼의 습격을 받았을 것이고, 어떤 아이는 꿀맛 나는 홍시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을 것이었다. 또 어떤 아이는 산양을 타고 무지개를 찾아 떠났을 것이고, 다른 아이는 꿈속에서 모닥불을 오줌으로 끄다가 조금 실수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잠든 아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바로 행복함이었다.

시험과 학원과 숙제에서 벗어난 아이 본연의 모습. 사랑숲 마을학교가 지향하는 교육 목표이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고, 모든 걸 놀이 삼아 아이답게 자라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행복감과 자존감을 느끼며 미래의 주인공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겨울 들살이를 통해서 좀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단단한 자아를 가진 아이로 커나가는 과정을 그저 옆에서 지켜봐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요구하거나 바라지 말고. 그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다.

1박 2일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한가지씩의 추억은 만들었을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어른이 되서까지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 시골길을 걷는 아이들 1박 2일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한가지씩의 추억은 만들었을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어른이 되서까지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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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경 모산굴, #까마귀 오줌통, #동굴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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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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