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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란 무엇인가. 이는 어려운 취업현실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열정이란 이름을 빌미로 한 고용주의 노동 착취 및 저임금 노동을 말한다.

이 단어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한창 젊은층의 뜨거운 감자로서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 나는 이 단어가 뉴스에서나 보도 되는 극히 소수의 고용주들의 행위로서 당장에 가까운 미래엔 내가 겪을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 단어가 다른 형태의 이름으로 변모하여 내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다섯명의 비보이팀원이 서로 모여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고생했다고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
▲ 고생했다!! 다섯명의 비보이팀원이 서로 모여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고생했다고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
ⓒ Bae Dongw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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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재능기부'

내가 재능기부를 신종 열정페이라고 느끼게 된 사건은 한 축제에 초청공연을 갔을 때였다

나는 대학교 댄스 동아리 소속이다. 그 동아리에서 EXO나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 방송댄스도 하지만 주로 스트릿 댄스 장르 중 비보이라는 주 장르로 하며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 팀장을 맡게 되어 비보이팀을 만들고 주로 다른 대학교 찬조 공연이라던지 학교 내의 축제나 각 단과대별 행사와 중·고등학교 및 외부행사 초청 공연을 한다.

비보이 퍼포먼스팀이긴 하지만 대학 동아리다 보니 전문 댄스프로팀처럼 높은 페이를 받으며 공연을 하진 않는다. 보통 20만~30만 원 많으면 50만 원 정도의 페이를 받으며 공연을 했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과거의 이야기가 됬다. 최근 들어 이 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아리 회장한테서 공연해주실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무슨 학교 축제란다 거리를 계산해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빨리가더라도 학교에서 2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거리이고 학교 축제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메리트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돈을 보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공연진의 입장으로서는 중요한 부문이라 페이를 물어봤다 페이는 그 돈을 받아서 우리가 무얼 하겠다기 보다는 '공연팀에 대한 예의이자 우리들의 자존심'이다.

동아리 회장은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10'이라고 말했다. '10'?  차라리 위문공연이라며 YMCA나 유니세프등 각종 비영리 단체에서 봉사시간을 받으며 무보수로 공연한 적은 있지만 우리가 공연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들인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도 자존심 상하는 금액이였다. 긴 고민끝에 다른 공연팀 팀장들과 합의하여 본래 공연으로 인한 이익을 위한 단체도 아니고 공연이 좋아 모인 사람들이니 가겠노라고 뜻을 전했다.

그러고 나서 5일 정도 후 아주 당황스러운 연락이 왔다. 페이를 현금으로 줄 수 없으며 10만 원 어치 문화상품권이나 외식상품권으로 주겠단다. 게다가 더 웃긴건 문화상품권이라면 그나마 쓸 곳이 많기라도 하지만 외식상품권으로 줄 확률이 더 많다는 말이었다.

기가 찼다. 맘 같아선 담당자에게 당장 전화해서 뭐라고 한 소리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나인지라 속으로 삭히고 갑자기 왜 그런 연락이 왔느냐고 동아리 회장에게 물어보았다. 담당자측 말을 요약해보면 이러했다. 영리행사 공연이 아니기도 하고 학교 축제인데 '재능기부' 형식으로 해주면 안되겠냐 라는 것이였다.

재능기부... 나는 이단어가 이런곳에서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봉사활동도 좋아하는 편이라 봉사활동 사이트에 가면 재능나눔사업으로 재능기부자를 모으는 공고를 보며 참 좋은 단어라 생각했었는데 공연진한테 재능기부를 들먹이며 이런식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담당자 분한테 봉급을 주시는 분이 오늘은 아이들을 위한 축제였으니 페이를 적게 주고 외식상품권으로 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셨을지도 궁금했다. 대학 동아리라고 해도 이 보통 한 팀당 하나의 퍼포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주 2~3회 많으면 5일 이상씩 하루에 4시간 이상을 투자하며 준비하는 공연이다.

공연진은 비상이 걸렸다. 전례없는 매우 우스운 상황이였다. 공연을 안하자니 공연을 보며 좋아할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하자니 거기까지 가는 시간을 포함하여 문상으로 조차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페이가 문제였다. 애초에 이윤이 남는 공연은 아니다 공연진이 20여 명 정도 되는데 가는 교통비로만도 10만 원은 충분히 넘는다.

심사숙고 끝에 아이들을 위해 공연을 다녀왔다. 하지만 보통 공연이 끝난후 모두 고생했다며 웃으며 돌아오는데 그날은 그러지 못했다. 같이 공연을 준비한 후배와 선배들께 팀장으로써 괜히 죄송했다. 이건 비단 웃고 넘어갈 우리 동아리만의 해프닝이 아니었다. 이 단어를 이렇게 쓰기 시작한다면 사회적으로 상당히 큰 여파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 '헬조선'

위 사례는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지쳐있다. 자신들의 나라를 '헬조선'이라 스스로 칭하고 서슴없이 내뱉는 비정상 적인 사회의 모습이 당연시 되고있다. 아무도 헬조선이라 칭하는 사람들을 질타하지 않으며 그저 좋아요만 누를뿐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전에 한 아이돌 멤버가 철없던 시절 'korea is gay'라고 말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네티진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탈퇴까지 하게된 그 시절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라는 단어가 있다. '가진자의 도덕',우리나라의 기득권층분들은 "젊음이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젊은이들은 싸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는 그 어느때 보다도 가진자의 도덕이 필요한 시기다. 윗물만 맑으면 아랫물에 사는 사람들은 그 물로 밥도 해먹을 수 있고 갈증을 해소할 수도 있으며 물놀이를 하며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젊은이들이 바라는 사회는 누구나 쉽게 취업하는 사회도 성공하는 정도의 사회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자신이 한 노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바란다.

       
 정월대보름엔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다.
▲ 보름달 정월대보름엔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다.
ⓒ Bae Dongw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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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미래의 정월 대보름에는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자신의 젊음 만큼 아름다운 보름달을 보며 비는 소원이 '올해는 취직하게 해주세요'가 아닌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 수 있는 날이 다가오기를 바라본다.


태그:#열정페이, #재능기부, #비보이, #공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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