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주도에서는 12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한다.
▲ 수선화 제주도에서는 12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한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 생각했는데, 동장군의 기세가 한껏 올라 13일 서울 아침의 기온이 영하 9도를 찍었다. 겨울이 겨울다워야 해충들도 얼어죽고, 겨울을 제대로 견딘 씨앗이나 나무들도 더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니 겨울에 추운 건 환영해야 할 일이겠다.

그러나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 추위에 소녀상을 지키겠다고 노숙을 하는 이들이나 연탄 한 장이라도 아껴보려고 아궁이를 꽉 막고 최소한의 온기로 겨울을 나는 이들을 생각하니 동장군이 물러가고 어서 따스한 봄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겨울에 피어나는 꽃들을 생각하니 적당히 추웠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 진다.

제주도, 따뜻한 남도라고는 하지만 바람과 습도로 인해 체감온도는 장난이 아니다. 물론, 육지보다야 따뜻한 남도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제주도에서는 한 겨울에도 꽃이 핀다. 물론 간혹 바보꽃들도 있지만, 제주도는 365일 꽃 피지 않는 날이 없다.

겨울꽃 중에서 가장 화사로운 꽃 동백, 낙화가 아름다운 꽃이다.
▲ 동백 겨울꽃 중에서 가장 화사로운 꽃 동백, 낙화가 아름다운 꽃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어느 겨울 제주도, 노지에 무우와 배추가 초록의 빛을 간직한 채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밭 주인은 가격이 조금 올라가면 수확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 촌놈은 한 겨울 노지에서 초록의 빛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김장철이면 땅을 파서 장독대를 묻고, 무우나 고구마 같은 것들을 땅 속에 묻어놓고 한 겨울에 꺼내어먹던 서울촌놈이 그냥 노지에 방치된 무우나 배추를 처음 봤으니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그런 신기함이 일상으로 바뀔 무렵, 제주도에는 동백말고도 겨울에 피어나는 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해안가에 피어있는 갯쑥부쟁이나 돌담 양지바른 곳에 피어있는 꽃들과 제때가 아닌데 피어난 냉이나 광대나물 등 바보꽃이 아닌 꽃이다.

제철을 잊고 피어난 바보꽃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한겨울을 제철 삼아 피어나는 꽃을 만난다는 것은 재미를 넘어 신비했고, 경외감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작고 연약한 꽃들이
한 겨울 추위를 벗 삼아 피어나는데
나는 너는
겨울이라고 피어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고난 속에서 피어난 꽃
더 진하고 향기 깊듯이
나는 너는
더 진하고 향기 깊게 피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옹기종기 털목도리를 하고 피어난 비파, 5월 경에 비파를 닮은 노란 열매가 열린다.
▲ 비파나무 옹기종기 털목도리를 하고 피어난 비파, 5월 경에 비파를 닮은 노란 열매가 열린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올해는 계절적인 겨울로는 따스했지만, 역사의 계절로 치면 혹한의 겨울이었다.

'무슨 이따위 나라가 다 있나?' 싶었다.

OECD 국가를 상대로 무슨 조사만 하면 좋지 않은 것은 죄다 상위권이요, 좋은 것은 죄다 하위권이다. 그런데 이런 통계자료보다 체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아예 역사인식도 없는 지도자를 만나, 다시 일제시대로 복귀한 듯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지도자들은 격이 없고, 생각이 깊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일한다. 우매한 백성들은 그들에게 이용당하는지도 모르고 맹종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부정과 부패가 능력이 되어버린 시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일랑 관심도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은 인간의 탈을 쓰고 활보하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이들에게는 민낯을 요구하는 시대는 참으로 불행하지 않은가?

제주도 동쪽 해안가에 납작 엎드려 피어난 사철푸른 나무, 겨울에 이파리 아래에 꽃을 숨기고 피어난다.
▲ 사스레피나무 제주도 동쪽 해안가에 납작 엎드려 피어난 사철푸른 나무, 겨울에 이파리 아래에 꽃을 숨기고 피어난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이런 시대를 살아감에도 흔하지 않은 겨울꽃 피어나듯 만나는 희망 같은 소식들이 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소식들은 흔하지 않아도 365일 늘 우리 곁에 피어있었던 것이다.

일상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보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들리는 소식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은 말하지 않을 수 없어 외쳤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그들의 외침을 봉쇄했고, 급기야는 물대포까지 동원해 대테러작전을 하듯 국민의 소리를 막았다. 그런 과정에서 한 농민(백남기씨)이 사경을 헤매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사과 한 마디 없다.

분노하는 국민들의 시선을 연이어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듯, 점점 더 큰 사회적인 이슈들을 양산해 내며 이전의 사건들을 무마하려는 시도에 우매한 국민은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오래 전까지 갈 것도 없이 세월호에서만 시작을 해도 그렇다. 결국 소녀상도 잊히고 조만간 대북방송을 빙자한 남북갈등을 이용하고 또다른 이념분쟁들을 부추기면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는 구도를 만들어갈 것이다. 현재 그런 권력의 의지에 야당은 지리멸렬 잘 협력하고 있으니 겨울공화국이 끝날 조짐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는다.

겨울에도 피어난 꽃이 있듯이 이 겨울공화국에서도 피어난 꽃, 피어있는 꽃들이 있으니까.

가을꽃이지만 한 겨울에도 여전히 제주 해안가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제주에서는 가을꽃이 아니라 가을 겨울꽃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 갯쑥부쟁이 가을꽃이지만 한 겨울에도 여전히 제주 해안가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제주에서는 가을꽃이 아니라 가을 겨울꽃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겨울꽃, 그들이 피었다 질 무렵이면 그 꽃이 다 지기 전에 봄꽃이 피어난다.

강원도 동해 어딘가에는 입춘이 되기 전에 피어나는 노란 복수초가 늘 그자리에 피어나고, 입춘이 되면 물론 봄꽃들이 앞을 다퉈 피어난다. 그렇게 오는 봄을 시샘하며 꽃샘추위 두어 차례 다가오지만, 봄은 완연해지고 이내 겨울의 흔적을 모두 날려버리는 완연한 봄을 맞이할 것이다.

어디 계절만 그러하겠는가?

역사의 봄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는 것은 겨울이 깊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되고 오로지 가진 자들과 측근들을 위한 정치만 있다. 자기 편이면 무조건 선이고, 자기를 지지하지 않으면 무조건 악이다. 이런 유아기적인 발상을 하는 권력과 그에 빌붙어 한 자리 해보겠다는 이들이 한통속이니 어찌 겨울공화국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봄은 기어이 온다.
겨울 속에 봄 들어 있다.
겨울의 한 복판에 피어난 겨울꽃을 보며 나는 동시에 희망을 본다. 피어나라 봄!!!



태그:#수선화, #동백, #비파나무, #갯쑥부쟁이, #사스레피나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