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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6일 오후 7시, 국철1호선 주안역 남광장 쪽에 있는 클럽 '쥐똥나무'가 난장(亂場)이 됐다. 송년회이자 2015년 마지막 공연이 열린 것이다. 공연 제목도 '미친 듯이 놀자'였다.

이날 라인업은 아르포나인틴(R4-19), 오디오블러썸(Audio Blossom), 도그라스트페이지(Dog last page), 피앤에스(PNS), 임정훈 밴드였다. 인천이나 서울 홍대 앞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팀들이다.

공연이 무르익자, 앉아있던 관객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해 공연을 하는 자와 즐기는 자가 하나가 됐다. 그날의 공연이 인상에 남아, 지난 7일 이수진(49) '쥐똥나무' 사장을 만나러 클럽으로 향했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쥐똥나무처럼
   
이수진 쥐똥나무 사장.
 이수진 쥐똥나무 사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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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만들어 올해 4월이면 만 3년입니다. 왜 '쥐똥나무'냐고요? 제가 어릴 때 작고 외소해서 별명이 쥐똥나무였어요. 예전에 '쥐똥나무'라는 제목의 일본 소설을 재밌게 읽기도 했고요. 법의학자가 쓴 책인데 시체를 해부하면서 범인을 잡는 줄거리였죠.

그런데 시체의 콧속에서 쥐똥나무가 자라고 있었어요. 그만큼 쥐똥나무의 생명력과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읽혔거든요. 이곳은 언더나 인디음악 등, 자기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이 주로 공연하는 공간이에요. 클럽 이름을 '쥐똥나무'로 지은 것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씨의 지인들은 애정 담긴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록 음악을 하거나, 듣는 사람이 찾는 이 공간에 좀 더 센 이름이나 영어가 섞인 이름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너무 약하다는 의견인데, 쥐똥나무 꽃말은 '강인한 마음'이예요. 쥐똥나무는 우리나라 토종나무기도해요. 중학교 다닐 때 제 별명이 쥐똥과 연관돼 있어 더 좋았고요."

음악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이름을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도 많단다. 글쓰는 곳이나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착각해 인천작가협회 사람들이나 미술인들이 들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단골이 됐단다.

간절한 마음으로 배운 기타, 인생을 바꾸다

어릴 때부터 성악 등 음악을 전공하고 싶던 이씨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학원을 다닐 수도, 레슨을 받을 수도 없었다. 재수할 때 언니가 사 온 기타를 처음 만져봤다고.

"처음에는 기타를 거꾸로 잡을 정도였죠. 노래책에 기타 주법이 줄과 점으로 표시된 게 있는데 그걸 보면서 독학으로 3개월 죽도록 연습했어요.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기타만 치던 시절이었어요. 학원에 등록하려면 돈이 필요해 벌어야 했거든요."

1980년대 후반이었던 당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 달에 4만 원을 받았다. 커피 한 잔에 400~500원 하던 시절이었다. 이씨는 3개월간 갈고 닦은 솜씨를 발휘해 커피숍에서 매일 30분 공연하고 월 8만 원을 벌었다. 몇 개월 하고나니 10만 원으로 인상됐다.

3개월 배워 무대에 서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는 "학원도 다녀야하고 용돈도 벌어야하는 마음이 간절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물론 노래 실력은 기본적으로 있어서 어렵지 않았고요, 엄마 말로는 제가 어릴 때 말하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라면서 "학원에 가려니 돈이 필요해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불렀는데 오히려 학업보다는 노래만 부르게 됐어요, 가요를 부르다보니 성악을 할 수 없었고 돈이 쌓이니 유혹도 생겨 본격적으로 이 길로 들어섰죠"라고 답했다.

이씨는 통기타 가수로 오랫동안 솔로 생활을 했다. 통기타 가수들은 대부분 솔로다. 먼 지역만 아니면 불러주는 곳 어디든 돌아다녔다. 2001년에는 개인 앨범도 냈다. '기타하나 동전한잎'과 '촛불잔치'를 부른 가수 이재성이 기획·제작했는데, 그녀 표현을 빌리자면 '쫄딱' 망했단다.

혼자 노래하는 게 재미가 없어지고 다른 음악에도 관심이 생겨 10년 전부터는 록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장르가 다르지만 오랜 기간 가수로 활동하다보니 둘 다 되더라고요. 록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게 기타를 치면서 노래할 때 도움도 되고요. 다른 스타일의 통기타 가수가 되는 게 재밌습니다"

그녀가 활동했던 밴드 이름은 '누나밴드'였다. 지금도 공연 요청이 오면 프로젝트팀으로 활동하는데, 밴드활동을 함께하는 후배들은 눈빛만으로도 교감이 가능하단다.

음악 감상은 클럽에서, 노래는 노래방에서

음악클럽 쥐똥나무의 무대.
 음악클럽 쥐똥나무의 무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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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색깔로 노래가 부르고 싶었던 이씨는 후배들에게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쥐똥나무를 만들 수 있어 행복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이씨는 요즘 특히 더 행복하다고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되고 나서 드라마에 나오는 노래를 듣고 싶다는 손님이 많아졌어요. 제가 매일 오후 9시부터 노래하는데 요즘 스타가 됐죠. (웃음)"

옛 음악을 들으며 향수를 느끼는 손님들을 보고 있으면, 사장인 이씨도 행복하단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처음 이곳을 만들고 이른바 '진상' 손님 때문에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무대에서는 뮤지션만 공연하는 걸로, 처음부터 원칙을 세웠어요. 그렇지 않으면 운영이 안 돼요. 이곳에 오는 분들 중에는 1차를 다른 곳에서 하고 노래가 좋아서 오신 분이 많아요. 취기가 오르면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죠. 우리나라는 단란주점이나 노래방 시설이 잘 돼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려 해요. 노래를 많이 들어야 좋은 노래가 계속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술 취하신 분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리시거나 우리 건물 2층에 있는 노래방으로 가시라'고 안내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음악이 듣고 싶어 멀리서 오시는 사람이 많다는 이씨는 그런 사람들이 무척 고맙고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1960~1970년대 활동한 '핑크 플로이드'나 '딥퍼플' 등의 음악을 많이 신청하고, 1980년대의 추억이 생각난다고 하는 손님도 많다고 했다.

"공연할 때가 아니라 평소에 음악 감상할 때도 우리 클럽의 사운드는 아주 좋은 편이죠. 밴드가 공연하는 날이 아니면 손님들의 신청곡을 틀어주거나 제가 부르기도 합니다. 많이 놀러오세요."

다시 인천으로 모이는 록밴드
   
한달에 2~3번 주말에 공연이 있는 쥐똥나무는 실력있는 뮤지션들과 관객들이 하나가 된다.<사진·쥐똥나무>
 한달에 2~3번 주말에 공연이 있는 쥐똥나무는 실력있는 뮤지션들과 관객들이 하나가 된다.<사진·쥐똥나무>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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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쥐똥나무'에선 한 달에 두세 번, 주말에 공연한다. 인천이나 서울 홍대 앞 클럽에서 활동하는 팀 중 실력있는 밴드를 선별해 무대에 올린다. 가끔 아마추어인 직장인밴드의 공연도 있다.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팀이 많아요. 공연 때 라인업을 잘 잡아야 해요. 프로 팀이 공연할 때는 입장료가 있습니다. 홍대 클럽은 쇠락해가는 느낌인데, 인천은 오히려 공연장이 더 생기고 활기를 보이고 있어요."

그 이유를 묻자, 홍대 앞에 있는 클럽들이 전체는 아니지만 조금씩 변질됐다는 설명이 돌아온다. 밴드들이 음악하고 관객들이 음악을 향유하던 예전 분위기는 사라지고, 남녀가 어울리면서 무도회장의 기능을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인천에서 공연하는 밴드들은 인천 특유의 분위기를 즐긴다고도 했다.

"서울에서는 공연이 끝나면 밴드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뒤풀이를 하는데, 인천에서는 저만이 아니라 클럽을 운영하는 사장들이 밴드들 수고했다고 뒤풀이를 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공연하는 팀들이 좋아해요. 저한테는 공연하는 날이 잔칫날이죠. '이렇게 돈을 쓰다 쥐똥나무가 망하면 우린 어디서 공연하냐. 돈을 아껴라'라고 말하는 후배가 많아요. 저는 삭막하게 돈만을 벌고 싶지 않아요. 끈끈한 정과 의리가 생기는 사람을 벌고 싶어요."

뿐만 아니라, 인천 관객들의 따뜻함도 밴드들의 마음을 녹인다. 반응이 좋고, 공연을 즐기러 오는 게 공연하는 사람들한테도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홍대 앞 무대에 선 밴드들이 인천을, '쥐똥나무'를 찾는단다.

올해 4월, 1회 '쥐똥나무' 페스티벌 개최

올해는 '쥐똥나무'나 이씨에게 특별한 해가 될 듯하다.

"개인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작사·작곡도 직접 하려는데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올해 잘 준비해서 내년 봄에는 녹음하고 싶습니다. 또한 올해에는 '쥐똥나무'의 이름을 건 페스티벌을 하려고요. 올 4월 23일이 토요일인데 '쥐똥나무' 3주년 생일에 맞춰 록페스티벌을 열려고요. 여기는 공간이 작으니까 다른 곳에서 좀 더 규모있게 할 수도 있어요. 이번을 시작으로 전통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쥐똥나무의 까맣고 단단한 작은 열매와 이 사장의 이미지가 겹쳤다. 마지막으로 '쥐똥나무'의 음악과 공간을 색깔로 표현해달라고 주문했다.

"제 음악의 색깔은 포크 컨트리송이 주류라 갈색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추억을 간직하고 되새기는 색깔 같아요. 우리 '쥐똥나무' 색깔은, 비주류 음악이다 보니 빨간색이요. 열정이 없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고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이수진 사장이 입고 있는 빨간색 체크무늬 겉옷에 더 눈길이 갔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쥐똥나무, #이수진, #음악클럽, #주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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