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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필자는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베를린 시내 여러 곳에 유대인 학살을 알도록 하는 기념관과 박물관이 있음을 보고, 독일의 과거 청산이 진실함을 느꼈습니다. 독일 정부는 유대인에 행한 나치 만행에 대해 사죄하고, 유대인들이 세운 이스라엘에 막대한 금액으로 배상하였습니다. 독일 정부의 지도자들은 빌리 브란트 수상 이래 현재의 메르켈 총리도 끊임없이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 범죄에 대해 사죄의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일본 정부는 과거 한국 지배에 대해 진정으로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광복 70주년이 되는 작년 말에, 대한민국 국민은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외교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위안부 합의문을 작년 말에 기습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2015년 12월 28일에 한일 양국 외교장관은 위안부 협상을 타결하였다고 느닷없이 발언하였습니다. 위안부 협상 전문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10억엔 정도를 우리에게 주고, 우리 정부는 한국 소녀상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하며, 이번 발표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는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본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

필자는 한국근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양국 외교장관이 타결한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 대한민국의 외교부에 재협상을 요구합니다.

첫째, 합의 내용이 너무 굴욕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협상 전문 발표만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 해결되고, 더 이상 논의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합의문 한 장에 쓰인 글귀만으로 과거의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돌이킬 수 없이 마무리되지 않는 게 역사의 상식입니다.

합의문에는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이라는 명백한 표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10억엔(한화 100억원)을 받고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웬만한 아파트 한 채의 가격이 10억원에 해당하는데, 겨우 집 10채 값 지불로 일본군에 의해 짓밟힌 위안부 여성들의 인권이 절대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피해국 당사자들과 국민들의 성금에 의해 세워진 소녀상의 이전까지 합의문에 집어넣었습니다. 소녀상이 위안부 문제 합의에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재일동포가 많이 살고 있는 일본에 단 한 개의 한국 지배를 반성하는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있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제나라 땅에 소녀상을 만들었습니다. 임기 5년에 불과한 정권이 국민이 만든 소녀상을 처리할 자격은 없습니다. 오히려 역사의식이 있는 정부라면 정부가 앞장서 소녀상을 전국에 많이 건립하여, 다시는 치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훈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 소녀상 모습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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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합의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합의는 실천을 통해서만 담보됩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합의는 파기해야 합니다. 합의문에는 "아베 총리대신은 다시 한번 위안부 여성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사죄를 표명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합의문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베 총리는 2016년 1월 12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의 말을 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계속해서 같은 달 14일 자민당의 사쿠라다 요시타카 의원은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였습니다.

이처럼 일본 관료들은 사죄의 말을 하는 것을 거절하고, 게다가 인간이라면 도저히 발언할 수 없는 망언을 하고 있습니다. 조상의 범죄를 직접적으로 사죄하지 않으려고 하고, 반성하지 않으려고도 하는 일본은 미래가 없습니다.

셋째, 한국의 외교부가 역사의 진실을 말살하는데 참여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24년 동안 위안부 여성들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정부의 관료가 의회에서 직접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 진상 규명, 위안부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아베 총리는 의회에서 사죄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시다 외상은 "배상은 아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지난 12월 28일 기시다 외상은 위안부 합의문을 발표한 뒤, 일본 기자들에게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역사는 돈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 소녀상 근처에 붙여 있는 글귀 '역사는 돈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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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문에는 진상 규명과 위안부에 대한 교육 관련 내용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외교부는 위안부 여성들의 요구를 관철시키지도 못하였고, 그분들의 인권을 충실히 보호하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외교부는 이 합의를 폐기하는 게 맞습니다.

다행히 두 나라의 외교장관이 합의문에 서명도 하지 않고 비준서를 교환하지 않았다고 하니, 외교부는 다시 위안부 할머니들과 지원 단체들이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일본과 협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 누구나가 노예로 살지 않고 주인이고 자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번 외교부의 위안부 협상 결과를 보고서, 내가 아직도 식민지 시대의 노예로 살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으로서 자유인으로서 당당해지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이에 필자도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이 10억엔(한화 100억원) 국민기금을 모금하고자 설립한 '정의기억재단'에 1백만원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나라 잃은 시기에 우리의 위안부 여성들은 일본군에 의해 총체적으로 인생이 파괴되었습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대한민국은 이제라도 이분들의 명예를 제대로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외교부가 당당하게 위안부 문제 해결에 다시 나서주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브레이크 뉴스 1월 20일자에 게재됨



태그:#위안부, #소녀상, #일본대사관, #외교부, #위안부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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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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