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인들이 힘들다. 우선 가난하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2011년 기준으로 48.6%였다. 노인 10명 중 절반 가까운 수가 경제 문제에 시달린다는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한다.

지난해 4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노인 부부 가구의 생활 현황과 정책 과제' 보고서 내용을 보면 노인 문제가 더 스산하게 다가온다. 노인 부부 가구 중 40.4%가 경제, 건강, 소외, 무위 등 노년의 '4고(苦)' 중 3가지 이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한다.

노인 범죄가 늘고 있다. 최근 대검찰청이 발간한 '2015 범죄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31~50세 범죄자의 발생비(인구 10만명 당 발생 건수)가 감소했으나 61세 이상 범죄자의 발생비는 10년간 58.5%나 증가했다.

벼랑 끝에 몰린 노인들의 삶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노인 자살률이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노인 수가 2000년 34.2명이었다가 2010년 80.3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22.5명에서 20.9명으로 줄었다.

노인들의 열악한 삶이 '평준화'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2월 23일 국립중앙의료원이 내놓은 '지역별 의료실태 분석을 통한 의료취약지 도출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별 연령표준화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시․구지역은 404.9명이었으나 군지역은 452명으로 나타났다.

경기 과천시,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가 사망률이 가장 낮은 3개 지역이었다. 강원도 태백시와 경북 칠곡군, 충북 옥천군이 사망률이 가장 높은 3개 지역이었다. 농촌 지역에 노인 인구가 몰려 있는 점,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등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노인들의 삶에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 문제가 깊숙이 깔려 있는 것이다.

노인들의 삶은 '평등'하지 않다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겉표지.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겉표지.
ⓒ 에코리브르

관련사진보기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 사회학과 코리 M. 에이브럼슨 교수가 쓴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아래 <노년의 삶>)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의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모든 계층의 노인이 신체적․정신적 시련과 사회적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고 전제하며, 이들이 노화라는 공통된 경험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불평등 기제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나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2년 4개월 동안 4개 도시를 대상으로 비교민족지학적 현장 연구를 수행하면서 60여 명의 노인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이 책의 목적은 사회 계층화의 핵심 메커니즘-건강 불균형, 구조적 불평등, 문화, 관계망 등-이 어떻게 노년의 일상생활을 구조화하는지, 또한 역으로 노년에만 해당하는 실제적이고 상징적인 측면이 어떻게 미국 불평등의 중심축을 이루는지 보여주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생의 종반전에서 기회와 결과가 왜 여전히 계층화한 채 남아 있고, 인생이라는 경기의 선수와 규칙이 전바적으로 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할 것이다(13~14쪽).

저자는 노년이라는 '종반전'의 삶을 출전 선수, 경기의 규칙, 경기장의 모습, 선수들의 전략, 팀 역학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 가령 노인들은 인생의 종반전에 공통적인 곤경을 겪으면서 다른 세대와 "완전히 다른 동물"(37쪽)로 한데 묶이지만(출전 선수), 각자가 참가하는 경기는 불공평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불공정하게 진행된다(경기의 규칙).

요컨대 노인들의 삶은 '평등'하지 않다. 노인들은 똑같이 노화 과정을 겪으면서도 이전부터 계속 이어진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노화에 대처하기 위해 동원하는 전략과 이에 따른 결과가 상이하게 나타난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 어느 정도의 물질적 자원을 쓰면서 살아가는지가 노인들의 삶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쪽으로 이동하자,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던 시민들이 '대한민국효녀연합' 피켓을 들고 가로막고 있다. 피켓에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고 적혀 있다.
▲ '어버이연합'에 맞선 '효녀연합'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쪽으로 이동하자,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던 시민들이 '대한민국효녀연합' 피켓을 들고 가로막고 있다. 피켓에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고 적혀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미국 노인들의 현실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 1월 6일, 극우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 등의 노인 회원들 앞에 선 대한민국효녀연합 홍승희씨는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관련기사 : '어버이연합 막아선 효녀연합,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엔 그냥 말이 안 통할 거라고 예상했다. 막상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상처가 많은 분들이고…. 그걸 이용하는 권력이 나쁜 거니까.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긴 했다. 손팻말 문구(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도 그분들한테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하러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주할 수 있었다. 실제로 뵈니 신념에 꽉 차서 행동하시는 게 아니더라. 눈빛도 흔들리시고 저희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시더라. 안타까웠다."

어버이연합 회원들과 같이 극우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보이는 노인들에게 '묻지 마' 식 혐오감을 드러내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을 노인세대와 청년세대 간 갈등 구도로 설명하려는 이들도 있다. 온당한 분석일까. 홍승희씨가 어버이 연합 노인들에 대해 묘사한 "눈빛도 흔들리시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에게 공동체를 위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촉진하며, 세대 간 유대를 장려할 때 노년의 삶에서 의미 있는 선택권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저자가 만난 노인 중 한 명은 "노인은 완전히 다른 동물"이라고 규정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점점 커질 게 분명한 노인 문제를 고민할 때 찬찬히 음미해 볼 만한 대목들이 아닐까.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코리 M. 에이브럼슨 지음, 박우정 옮김 / 에코 리브르 / 2015.12.10. / 351쪽 / 1,8000원)

덧붙이는 글 | 정은균 시민기자의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코리 M. 에이브럼슨 지음, 박우정 옮김, 에코리브르(2015)


태그:#<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코리 M. 에이브럼슨, #에코 리브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