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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궁전을 찾은 여행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 대공궁전 앞 대공궁전을 찾은 여행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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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는 입헌군주국이지만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대공(Grand-Ducal)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어느 나라나 여행을 갈 때면 왕궁이나 대통령궁이 여행 1번지이듯이 룩셈부르크에서도 대공의 궁전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나는 룩셈부르크 대공 궁전(Palais Grand-Ducal)이 대국의 왕궁만큼 크지는 않지만 기품 있는 건축물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어왔다. 구시가의 가게들을 구경하며 대공 궁전을 찾아서 걸어갔다. 룩셈부르크 구시가의 중심인 기욤 2세 광장(Place Guillaume II)에서 동쪽으로 한 블록을 더 걸어 들어가자 룩셈부르크 대공이 살고 있는 대공 궁전이 바로 나왔다.

대공 궁전을 찾아 걸어가다가 보면 대공 궁전이 어느 건물인지는 쉽게 알 수가 있다. 어느 큰 건축물 앞에서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건물의 난간과 국기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궁전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려고 가이드 옆으로 살짝 가보았더니 유창한 프랑스어로 설명을 하고 있다. 룩셈부르크 여행지에는 먼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많지 않고 주변 국가인 프랑스나 벨기에에서 오는 여행자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단체 여행객들은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주변 국가에 비해 단체 관광객들의 수도 많지 않다. 이 작고 아름다운 나라가 왜 여행지로 소문이 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룩셈부르크를 다니는 내내 단체여행객들이 붐비는 혼잡함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룩셈부르크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룩셈부르크의 국가원수가 사는 곳으로 작지만 품격이 느껴진다.
▲ 대공궁전. 룩셈부르크의 국가원수가 사는 곳으로 작지만 품격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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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대공 궁전은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세종대인 1418년에 현재의 대공 궁전 주변에 처음으로 세워졌지만 그만 1554년 사고로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현재의 건물은 1573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룩셈부르크 시청 건물을 대공 궁전으로 다시 개조한 건물이다. 룩셈부르크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게 되자 1841년부터 대공이 거주하는 대공 궁전이 된 것이다.

어쩐지 궁전의 외관이 널찍한 정원도 없이 정부청사같이 방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 대공 궁전은 원래 시청 건물이었던 것이다. 부유한 대공이 무리한 역사를 일으키지 않고 기존 건물을 보수해 왕궁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일국의 지도자로서 검소함이 느껴진다.

건축물의 양식은 유럽에서 16세기에 유행한 화려한 스페인 르네상스 양식이다. 궁전 내부에는 집무실, 접견실, 다이닝 룸과 함께 갤러리, 무기고가 있다. 건물 외부에 호화로운 장식이 없어서 수수해 보이지만 외부 벽면과 기둥의 석재마다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이 건물의 격조와 아름다움을 높여주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누추하지 않으며 궁전으로서의 위엄이 있다.

대공궁전에 국기가 게양되어 있으면 대공이 집무 중이라는 뜻이다.
▲ 대공궁전 국기. 대공궁전에 국기가 게양되어 있으면 대공이 집무 중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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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궁전은 현재 룩셈부르크 대공인 앙리 대공(Grand Duke Henri)의 집무실로 이용된다. 그리고 룩셈부르크의 공식적인 행사나 외국 손님을 접대하는 영빈관으로도 사용된다. 내가 대공 궁전을 방문했을 때에는 대공 궁전 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서 룩셈부르크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궁전에 국기가 게양되어 있을 때에는 대공이 집무 중이라는 표시이니 내가 궁전을 방문한 당시에 앙리 대공은 궁전 안에서 실제로 집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앙리 대공 일가는 룩셈부르크 시외의 베르크 성(Berg Castle)에서 거주하고 있으니 앙리 대공은 해가 지면 그의 성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국가 원수가 출퇴근을 하면서 집무를 하는 것도 룩셈부르크의 또 다른 신선한 매력이다.

위병 한 명이 궁전 정문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경계를 서고 있다.
▲ 궁전의 위병. 위병 한 명이 궁전 정문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경계를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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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공 궁전 앞에서 관광객들의 사진 세례를 받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궁전의 위병이다. 룩셈부르크 대공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은 2시간마다 한 번씩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위병 1명이 엄중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 위병은 궁전의 위병 초소에 차렷 자세로 서 있기도 하다가 궁전의 정면을 홀로 제식훈련 하듯이 왔다 갔다 하면서 경계를 서고 있다.

병사의 인상도 강인한 전사라기보다는 편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소위 우리나라 군대에서 이야기하는 표현으로 하면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착해 보이는 위병은 관광객들을 다분히 의식하면서 경계를 서고 있어서 오히려 친근하게 보인다.

작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국가 원수가 집무를 보고 있는 궁전 앞을 위병 한 명이 근무를 서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위병 한 명이 보초를 서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만큼 룩셈부르크가 정치 외교적으로 분쟁이 없고 안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국가에서 태어나서 긴장감 강한 역사 속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대공 궁전 앞의 평안한 일상이 부러울 따름이다. 

서서 걷는 붉은 사자는 룩셈부르크의 상징이다.
▲ 대공가문 문장. 서서 걷는 붉은 사자는 룩셈부르크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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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궁전의 철문 위에는 철심을 구부려 대공 가문의 금빛 찬란한 문장(紋章)을 만들어 놓았다. 국기에 사용하는 빨강, 파랑, 흰색의 3색도 이 문장에서 취하였을 정도로 대공 가문의 문장은 룩셈부르크 역사에서 중요한 문장이다. 문장 한 가운데에는 왕관을 쓴 빨간 사자가 있다. 대공 가문 문장의 파란 줄무늬가 있는 은(銀)의 대(臺)에 빨간 사자가 올라서 있다.

이 문장 때문에 룩셈부르크는 적색 사자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룩셈부르크의 상징은 사자이고 룩셈부르크 시내 여기저기에 사자 문양이 박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마치 혓바닥처럼 노란 불꽃을 날름거리는 붉은 사자가 익살맞게만 보인다. 이 나라 사람들의 친근함이 나라를 대표하는 문장에도 배여 있다.

외국 여행객들에게 명성을 얻고 있는 초콜릿 카페이다.
▲ 초콜릿 하우스. 외국 여행객들에게 명성을 얻고 있는 초콜릿 카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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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대공 궁전을 찾으면서 꼭 같이 둘러보아야 할 곳으로 생각한 곳이 대공 궁전 정문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룩셈부르크에 오면 꼭 한 번쯤 들러보아야 한다는 맛집, 초콜릿 하우스(Chocolate House)이다. 특히 이 카페의 초콜릿은 한국 여행객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있고 한국 단체여행객을 인솔하는 가이드들도 꼭 추천을 할 정도가 되어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에 오기 전부터 과연 어떤 맛집인지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초콜릿 하우스 앞에 야외 좌석도 있지만 추운 겨울이라 카페 안의 좌석을 잡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카운터, 전시대와 함께 있는 1층의 좌석은 이미 꽉 차 있다. 아주 유명한 카페이지만 대개의 맛집이 그렇듯 카페 내부가 으리으리하게 큰 것은 아니다. 내가 좌석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종업원이 와서 자신이 먹을 초콜릿을 고른 후 2층에 올라가서 기다려도 된다고 한다.

초콜릿 하우스 안은 다양한 초콜릿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 초콜릿 케이크. 초콜릿 하우스 안은 다양한 초콜릿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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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벨기에와 마찬가지로 룩셈부르크도 초콜릿만큼은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달콤한 맛을 자랑한다. 진열대에서는 초콜릿 케이크, 초콜릿 타르트, 초콜릿 인형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고, 기념품으로 파는 머그잔도 진한 초콜릿 빛깔로 가게 안이 온통 초콜릿 일색이다. 하지만 이 가게의 유명한 메뉴는 작은 나무 스푼 같은 막대에 꽂아서 파는 초콜릿이다. 티라미슈, 핫초코, 카푸치노 등 수십 가지 맛의 이 막대 초콜릿을 우유에 녹여 먹으면서 감칠맛을 음미하는 것이다.

나는 1층 매장에서 똑같이 생긴 막대 초콜릿 중 하나를 골라 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막대 초콜릿의 포장지에 웬 '허니 솔트(Honey Salt)'라고 적혀 있었다. 헤이즐넛(Hazelnut)을 고른다고 골라왔는데 바로 옆에 있던 '꿀 소금'으로 잘못 가져왔던 것이다. 식당 종업원에게 막대 초콜릿 바꿔와도 되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얼마든지 직접 바꿔서 먹으라고 한다. 

"여기, 우유는 안 줘요? 막대 초콜릿을 따뜻한 우유에 담궈서 녹여 먹는다고 하던데..."

유명 맛집이고 손님들이 많아서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이 카페의 여종업원은 웃음도 많고 친절하다.

"아, 우유도 주문하실 거죠. 두유도 있고 유당을 제거한 락토스-프리(lactose-free) 우유도 있어요. 어떤 걸 가져다 드릴까요?"

예상치 못했던 우유의 종류가 있었다. 나는 헤이즐넛의 맛을 그대로 음미하기 위해 따뜻한 우유를 달라고 했다.

룩셈부르크 시민들이 여유 있게 대화를 즐기고 있다.
▲ 초콜릿 하우스 2층. 룩셈부르크 시민들이 여유 있게 대화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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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즐넛 등 다양한 종류의 막대 초콜릿이 인기가 있다.
▲ 헤이즐넛. 헤이즐넛 등 다양한 종류의 막대 초콜릿이 인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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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고른 후 좌석에 앉아 우유를 따로 주문하는 시스템인데 잘 몰랐던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니 기분이 따뜻해진다. 웬 동양 남자가 초콜릿을 놓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데 싱긋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이 카페에서 그동안 초콜릿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종업원들도 사진 찍는 것에 익숙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초콜릿 막대를 따뜻한 우유 속에 퐁당 빠트렸다.

우유가 따뜻하니 헤이즐넛은 몸을 조금씩 조금씩 녹여가기 시작했다. 헤이즐넛의 초콜릿 색이 우유 사이로 물결을 타듯이 퍼져 들어갔다. 막대를 살짝 빼서 먹어보았더니 초콜릿이 혀에 닿기도 전에 스르르 녹아내린다. 달콤한 초코의 맛은 온 입 안에 진하게 퍼졌다. 다시 막대를 우유 안에 넣었더니 초콜릿은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내린다. 우유는 이제 헤이즐넛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헤이즐넛 우유가 되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초콜릿을 마셔 보았다.

헤이즐넛이 순식간에 녹아 헤이즐넛 우유가 된다.
▲ 헤이즐넛 우유. 헤이즐넛이 순식간에 녹아 헤이즐넛 우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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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이 다 녹은 우유의 맛은 달달하고 달콤했다. 겨울의 찬바람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고 온몸에 긴장이 풀리듯이 사르르 녹고 있었다. 게다가 달콤한 초코의 맛은 기억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듯 입 안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식당 안에 외국 여행객은 나 한 명이고 룩셈부르크 시민들이 도란도란 앉아서 초콜릿 우유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느 누구를 보아도 여유가 느껴지는 룩셈부르크 사람들. 이 식당 안의 분위기도 여유가 있고 포근하다. 나는 옛적 초등학교 나무 책상이 생각나는 카페의 나무 테이블에 팔을 기대고 앉아 몸을 쉬었다. 여행의 짐을 내려놓으니 인생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이 마음이 편안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50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여행, #대공 궁전, #그랑 두칼, #초콜릿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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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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