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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취재와 짧은 기사가 미덕인 이 시대 저널리즘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저는 천천히, 차근차근, 깊숙이 현장을 기록하려 합니다. 짧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24시간 현장을 지키려고 합니다. 제 글은 짧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글을 쓴다면, 여러분은 이를 허투루 넘기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편집자말]
* 소녀상 지키는 대학생들과 24시간, 그 6가지 기록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1월 27일 낮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열린 1215번째 수요시위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1월 27일 낮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열린 1215번째 수요시위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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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④] 여중생의 용기

"전라도서 끌려온 명자 언니 죽을 때 
삼단 같은 머릿단 잘라내어 보에 싸서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언니들 따라 부른 노래 반 울음 반 
누군가는 살아서 이 머리칼 울 엄니께 건네주오 
걸음 바로 못 걷던 명자 언닐 안고 들어 
위안소 언덕 위에 가슴앓이와 함께 묻고 
돌아와 그 밤도 찬물로 아랫도릴 식히며 울었어요."

500여 명이 참여한 1월 27일 낮 1215번째 수요시위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30여 년 전에 쓴 시 <죠센 데이신따이>(조선정신대)의 일부를 낭독했다. 열여섯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배옥수 할머니의 기구한 인생을 담은 연작시다.

중학교 2학년생 이예린(15)양은 이 시에 눈물을 훔쳤다. 기자에게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간 나이가 지금 제 나이라서, 감정이입이 됐다"라고 했다. 예린양은 수요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에서 혼자 왔다. 엄마가 걱정했지만, 예린양은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요새 보통 집에 있는데, 집에 가만히 있으면 제 자신이 비겁하다고 느껴졌어요. 페이스북을 보고 제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나왔어요. 정치에 무관심한 '쿨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수요시위에 많은 사람들이 온 걸 보고, 마음이 푸근해졌어요."

예린양은 수요시위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학생 언니오빠들과 거리에서 밥을 먹고, 소녀상 옆에서 몇 시간이나 꼼짝 않고 팻말을 들고 섰다.

'강제적 성노예 피해자들에게 용서와 합의를 강요하는 나라. 자격 없는 나라. - 역사를 덮으려 한 죄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예린양은 어둑해질 때야 팻말을 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예린양의 뒷모습은 참 커보였다.

1월 27일 낮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중학생 이예린양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월 27일 낮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중학생 이예린양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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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⑤] 일본인이 말한 연대, 책임, 사죄

저녁 어스름이 깔릴 때, 중년의 일본인 2명이 말을 걸어왔다. 대학생 중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이가 없었다. 손으로 소녀상을 가리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길을 물어보는 관광객은 아니었다.

대학생들은 스마트폰의 번역 프로그램(앱)을 켰다. 오지랖 넓은 기자는 '왜 오셨습니까'라고 입력해 일본인에게 보였다. 그 일본인은 번역된 질문을 보고 렌타이(れんたい)라고 적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이렇게 번역됐다.

'연대'

그러자 대학생들은 "아"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대학생들은 두 일본인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마침 일본어를 잘 하는 대학생이 왔다. 이들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나가미네 이사무(65), 나가미네 미나꼬(61) 부부였다.

"오키나와에는 미국 군사기지가 있다. 오키나와의 평화를 위해 미국 정부, 아베 정부와 싸우고 있다. 한국 국민이 한국 정부와 싸우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연대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한국 사람을 괴롭힌 것을 용서해 달라.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이 없다고 하는 일본 사람도 있다. 같은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깊이 느낀다. 연대해서 사죄하고 싶다. 특별히 종군위안부 강제연행과 관련해, 일본 전체가 사죄해야 한다."

대학생들은 오랫동안 이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대화가 끝난 뒤에도 일본인 부부는 한참이나 소녀상을 떠나지 않았다.

1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일본인 나가미네 미나꼬(61)씨가 스마트폰에 '연대'를 써 보이고 있다.
 1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일본인 나가미네 미나꼬(61)씨가 스마트폰에 '연대'를 써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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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⑥] 제엽씨는 왜 원주에서 달려왔을까

어둠이 짙어질수록 기온은 떨어진다. 오로지 대학생들만이 소녀상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 왔다. 늦은 밤 한 대학생이 조용히 소녀상을 찾았다. 원주 평화나비에서 활동하는 김제엽(24)씨다. 평화나비는 오래전부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청년 단체다. 원주 평화나비는 이날 소녀상 지킴이를 자처했다.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은 이미 농성장에 와있었다.

제엽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오늘 하루 그의 동선은 원주→서울→원주→서울이었다. 이날 수요시위에서 몸짓 공연을 하기 위해 오전 11시 소녀상 앞에 도착했다. 수요시위가 끝난 뒤, 원주로 돌아가 학원에서 알바를 했다. 알바가 끝나자마자, 소녀상 앞으로 돌아온 것이다.

"고생 많다"는 말에 겸손하게 "제주도에서 온 분도 있다"고 말했다. 제엽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까지 소녀상을 찾았냐고. 그의 답변이다.

"피해자를 제쳐두고 한일 정부가 합의하는 건 말이 안돼요. 얼마 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을 했는데 한 고등학생이 서명을 하면서도 '이렇게 하면 달라져요?'라고 했어요. 기분이 나빴어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1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대학생들이 몸짓 공연을 하고 있다.
 1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대학생들이 몸짓 공연을 하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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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공격적으로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히지 않을까요?" 제엽씨 옆에 있던 장미진씨가 나섰다.

"원주에서 서명운동을 했는데, 이번 합의로 마무리된 게 아니냐고 놀란 분들이 많았어요. 이 위안부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호응이 컸어요. 시민들은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25년 동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수요시위를 하며 큰 노력을 했기 때문일 거예요."

제엽씨가 말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소녀상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박근혜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어요. 소녀상 이전은 없다고 단언하지 않고 있으니, 분명 어떤 저의가 있지 않을까요. 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시도하겠지만, 대학생들이 막아낼 겁니다. 시민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제엽씨의 바람대로, 시민들의 관심은 줄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커플이 왔다. 그날 남자는 "프러포즈가 성공했다며 농성장을 찾았다"라고 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후원금도 늘고 있다. 송인영(19)씨가 말했다.

"엄마아빠한테 소녀상 옆에서 노숙농성을 한다고 하니, 지지해주셨어요. '엄마아빠처럼 뒤에서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시민들의 관심은 큰 감동이에요. 일본대사관 기습시위로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 한 경찰관이 '예전 같았으면 애국자 소리 들었을 텐데'라고 했어요. 경찰서에 있을 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대학생 대신 날 잡아가라'고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대학생들이 쌍화차로 건배를 하고 있다.
 1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대학생들이 쌍화차로 건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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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장 12시간, #소녀상 지킴이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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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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