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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2016년 시즌에 참여한 극작가와 연출가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우연 극장장, 박근형, 적극, 고선웅, 윤한솔, 이경성, 정은영, 김수정, 구자혜, 장우재, 김민정, 고연옥,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 남산예술센터 2016 시즌프로그램 기자간담회 남산예술센터 2016년 시즌에 참여한 극작가와 연출가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우연 극장장, 박근형, 적극, 고선웅, 윤한솔, 이경성, 정은영, 김수정, 구자혜, 장우재, 김민정, 고연옥,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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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가장 오래된 근현대식 공연장. 아레나 형태의 객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둘러싸여 다양한 연극 전개가 용이하다. 혹자는 이곳을 동시대 공연의 숨결이 살아있는 연극인들의 영혼이라고도 한다. 바로 이곳은 한국 현대연극의 심장인 드라마센터다.

지난 1962년, 동랑 유치진(1905~1974) 선생이 연극전용 극장의 뜻을 품고 미국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개관 이후 수많은 연극학과 학생들의 전용무대로, 후진양성 기관으로 운영됐다. 2009년에는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시와 함께 '창작초연'을 중심에 내세운 '남산예술센터'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지난 6년간 남산예술센터는 희곡의 중심지로서 창작초연의 작품 제작을 병행했으며, 텍스트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실험정신을 기반으로 공연을 제작해왔다. 지난달 19일, 남산예술센터는 올해 무대에 오르는 시즌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올해 프로그램은 작년 라인업에 비해서 3편이 늘어난 총 10편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희곡'을 기반으로 한 연극 4편을 비롯해 젊은 창작자들의 <주제기획전> 3편과 '개념' 기반의 연극 3편이 진행된다. 이밖에도 <남산아고라>와 <서울희곡플랫폼>을 신설해 젊은 작가와 연출가의 출발에 힘을 실어주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내러티브의 중심, '희곡'에 기반을 둔 연극 4편

남산예술센터 첫 번째 시즌프로그램으로 무대에 오르는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남산예술센터 첫 번째 시즌프로그램으로 무대에 오르는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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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연극 제작 기법으로 잘 알려진 내러티브 중심의 작품 4편이 무대에 오른다. 이는 기존의 연극 문법에 충실한 '희곡'에 기반을 둔 작품으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박근형 작·연출, 3월10~27일)를 시작으로 '햇빛샤워'(장우재 작·연출, 5월17일~6월5일), '곰의 아내'(고연옥 작/고선웅 연출, 7월1~17일), '파란나라'(김수정 작·연출, 11월16~27일)가 이어진다.

우선 3월에 무대에 오르는 첫 번째 시즌프로그램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1945년 일본 오키나와, 2004년 이라크 팔루자,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 2013년 한국 경남 양산 등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엮었다. 그러나 일제 말기 가미카제 특공대가 된 조선인, 이라크에서 미군 식품업체에 배달하다 납치된 선교사, 서해 선박 침몰로 죽은 사람, 그리고 젊은 탈영병 등 각 시공에서 무대로 호출된 등장인물들은 "저 살고 싶어요"라는 공통된 외침을 부르짖는다.

박 연출은 "단순히 군인과 이웃인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고 반복되는 죽음을 통해 오늘과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질문해보는 연극이다"고 설명했다. 공연뿐만 아니라 관객참여 프로그램으로 '장정일의 연극 읽기'를 공연기간 주말 동안 진행한다. 박 연출을 비롯해 함성호(시인, 건축가), 정희진(여성학자, 평화연구가), 조선희(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김규항(칼럼니스트), 안치운(연극평론가) 등이 출연해 관객과의 시간을 더한다.

지난해 남산예술센터의 시즌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햇빛샤워'가 올해도 함께한다. 지난 2014년 8월, 낭독공연 <남산희곡페스티벌, 네 번째>에서 처음 소개된 이 작품은 공동제작 공모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아 시즌프로그램으로 공연됐다.

특히 연출을 맡은 장우재는 제9회 차범석희곡상, 월간 한국연극 2015 공연 베스트7, 제52회 동아연극상 연기상(김정민/광자 역)의 수상에 빛나는 성과를 올려 한국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장 연출은 "최근 몇 작품을 재공연하면서 공연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초연의 발상을 늘어놓고 재공연을 통해 비로소 거리를 두고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됐다"며,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과 어느 정도 감정적 동화를 이루고, 어디서부터 감정과 상관없이 이화를 이루는지 짚어 보려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남산예술센터 개관작인 '가정방문'을 통해서 첫 인연을 맺은 고연옥 작가와 고선웅 연출이 7년 만에 조우했다. 최근에 신화와 현실의 사건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해온 고 작가는 "이것이 답 없는 현실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출구"라며, 삼국유사의 웅녀 이야기를 다룬 이번 작품은 "단지 신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곰의 아내를 말한다. 현대사회를 해석하고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를 회복시키기 바라는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푸르른 날에'를 통해서 제52회 동아연극상 연출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연출상, 올해의 연출가상을 수상해 세간의 이목을 받은 극단 마방진의 고선웅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해 서울연극센터 유망예술지원사업 뉴스테이지(NEWStage)에 선정돼, 현재는 혜화동1번지 6기동인으로 활동 중인 김수정 연출은 현실 사회의 불편함을 파격과 실험성이 강한 작품인 '파란나라'를 공연한다. 이 작품은 1967년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고등학생들이 집단, 전체주의인 파시즘(fascism)을 겪으면서 벌이진 일을 다룬다. 김 연출은 "인간이 왜 자유와 동시에 통제를 갈망하는지, 우리가 이 사회를 통해 길들여진 것들, 알고 배우고 믿고 있는 것이 진짜인가를 묻고 싶다"며, "우리가 꿈꾸는 파란나라인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실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언급했다.

중극장으로 확대 가능한 젊은 창작자들의 <주제기획전> 3편

남산예술센터는 올해 시즌프로그램에서 중극장 규모로 확대 가능한 소극장 작품 발굴과 젊은 창작자들과 협업해 제작하는 <주제기획전>을 마련했다. 올해는 '귀.국.전(歸國展)'이라는 타이틀로 '불행'(김민정 연출, 4월7~10일), '그녀를 말해요'(이경성 작·구성·연출, 4월14~17일), '커머셜 데피니틀리(commercial, definitely)-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구자혜 작·연출, 4월21~24일) 등 3편이 소개된다.

<주제기획전>은 매년 특정 주제를 선정해 '창작초연'과 '3주의 공연 기간'라는 조건 때문에 제작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젊은 창작자를 수용한다. 이들은 소극장, 작업실, 연습실에서 돌아와 바라보는 한국사회가 불행하고 슬프고 폭력적이라 표현했다. 또한 과거의 한국예술사에서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귀국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서 착안해, 이 세 작품을 모아 <귀국전>이라는 주제로 엮었다. 한국사회에서 의미 있는 4월에 <주제기획전>이 공개된다.

그동안 다양한 예술분야와 연대로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시대정신을 담보하는 무대 언어를 생산하는 김민정 연출의 '불행'은 지난 제22회 베세토(BeSeTo) 페스티벌에서 남산예술센터의 공간 특성을 잘 살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했다는 평을 받았다. 김 연출은 "관객은 객석이 아닌 도시의 뒷골목을 산책하듯,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행한 장면을 목격하거나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관객들을 주체적으로 자기 이야기로 만들어 간다."며, "이전에는 이틀간의 공연으로 아쉬웠는데, 올해는 조금 더 많은 관객들이 극장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비포애프터'를 통해 거대한 사건과 삶의 관계를 살펴보았던 이경성 연출이 그 연장선상에서 삶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냈다. '비포애프터'가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를 거시적으로 착안해 시작한 작업이라면, 이번에 선보이는 '그녀를 말해요'는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한 엄마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어느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온 아이를 언급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하나의 세계가 얼마나 따듯하고 생기 넘치며 거대한 시간을 품었는지를 들려준다.

김수정 연출과 더불어 지난해 서울연극센터 유망예술지원사업 뉴스테이지(NEWStage)에 선정돼, 현재 혜화동1번지 6기동인인 구자혜 연출의 'commercial, definitely'는 지난해 6기동인 가을페스티벌 <상업극>에서 초연됐던 작품이다.

초연 당시'마카다미아, 표절, 메르스 그리고 맨스플레인'이라는 부제를 달았던 이 작품이 올해는 '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이 시대를 재 폭로한다. 구 연출은 "올해에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체로 자신을 과시하는 인물을 통해서 국가의 뻔뻔한 폭력과 모순을 유머러스하게 폭로할 것"이라며, "이 공연이 예술이 될지, 상업이 될지 공연예술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공연이다."라고 설명했다.
※ '맨스플레인(mansplain)'은 man과 explain의 합성어로, 대체로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신조어다.

텍스트에 구애받지 않고 실험정신을 연출한 '개념' 기반 연극 3편

남산예술센터 특별 공모인 '남산아고라'
▲ 남산아고라 2016 남산예술센터 특별 공모인 '남산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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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에는 그동안 남산예술센터에서 수용하지 못했던 동시대 연극의 새로운 추세인 '개념' 기반의 작품들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이전과 다른 특징이다. '아방가르드 신파극'(적극 작·연출, 9월 7~11일), '변칙 판타지(가제)'(정은영 작·연출, 10월5~9일), '나는야 연기왕'(윤한솔 연출, 10월26일~11월6일) 등 세 편이 그것이다. 이는 텍스트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실험 정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개념' 기반의 연극으로 첫 번째로 공연되는 작품은 적극 연출의 '아방가르드 신파극'이다. 다소 모순된 두 단어의 결합이 제목인 이 작품은 실제로도 연출가가 연극에 대한 원형을 존중하면서 스스로 극장을 거부하고 미술관과 거리 등 다른 공간에서 작품을 공개했다.

일반적으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희곡'을 담은 전통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철저하게 연극이라는 장르와 특성을 작업의 중요한 재료로 삼는다. '아방가르드'와 '신파극'을 병치해 구파에 대항해 나왔으되, 신극에 밀려 온전한 근대극이 되지 못한 신파를 오늘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본다. 실제로 이 작품은 지난해 '남산희곡페스티벌'에서 시각적으로 극작 공간을 해석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3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아시아퍼시픽 트리엔날레, 광저우 아시아 비엔날레에 초청된 시각예술가 정은영의 '변칙 판타지(가제)'도 무대에 오른다. 연극인이 아닌 시각예술가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오직 여성들만 무대에 설 수 있는 한국공연예술사의 독특한 장르인 '여성국극'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여성국극 남역 배우가 되고자 입문했으나 현실적인 이유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을 통해 그녀가 꿈꿔온 여성국극의 진짜 이미지를 구현한다. 정 연출은 "한국의 여성국극과 일본의 다카라즈카 두 장르를 연구하면서 단지 여성이 남성을 연기했다는 특수성 외에도 완성품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깨면서 변칙적으로 등장하는 극"이라며, "이런 방법을 통해서 여태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상상속의 판타지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남산예술센터가 극단 그리피그와 공동 제작했던 '누가 무하마드 알리의 관자놀이에 미사일펀치를 꽂았는가?'(2010), '사이코패스'(2012), '치정'(2015)가 모두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작품인 반면, 이번에 공연되는 '나는야 연기왕'은 주제와 예술 형식의 진보를 고민하는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윤 연출이 작업했던 '나는야 섹스왕'의 두 번째 편으로, 연기를 잘하려고 열심히 했더니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도 실제 무대에서 연기를 잘 할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그는 "10년 째 하는 연기에 관한 질문과 답을 찾고 싶다"며, "오디션 형식에, 자본과 연기, 자본과 예술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을 통해서 연기를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오디션에 참가해 어떤 성적을 받을지 궁금한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창작예술가들의 등용문과 국내외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할 터

지난달 19일 남산예술센터에는 올해의 시즌프로그램을 공개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남산예술센터 2016 시즌프로그램 기자간담회 지난달 19일 남산예술센터에는 올해의 시즌프로그램을 공개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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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는 서울연극센터와 프로그램을 통합해 남산예술센터만의 특성을 오롯이 보여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올해는 젊은 창작예술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남산아고라>와 <서울희곡플랫폼>이 신설됐다. 오는 2월 공모를 시작하는 <남산아고라>는 주제와 형식, 나이, 직업에 제한 없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실험적인 퍼포먼스의 장으로, 6월과 12월에 열린다. <서울희곡플랫폼>은 기존의 '남산희곡페스티벌'과 서울연극센터의 프로그램 등 극작과 텍스트 관련 자산을 포함한다.

남산예술센터는 극작가 중심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남산희곡페스티벌'이라는 낭독공연과 '초고를 부탁해'라는 극작가 공모를 진행해왔다. 올해는 희곡과 관련된 자산을 통합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출발한다. 우선 <남산아고라>는 6월과 12월에 열린다. 아고라 형태를 가진 유일한 극장인 남산예술센터는 200여 명 이상의 관객을 스스로 모아서 관객들이 자기 수행적인 퍼포먼스를 진행할 수 있는 작품 2개를 선발할 예정이다. 이는 극장성, 토론과 논쟁, 퍼포먼스가 가득한 극장 교류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내걸 예정이다.

남산예술센터는 올해부터 제작과 유통을 연계해온 국내와 해외 협력 네트워크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다. 우선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2016년 페스티벌 도쿄(Festival/Tokyo)에 공식 초청돼 오는 10월 도쿄 무대에 오르게 된다. 제5회 벽산희곡상 수상작 '곰의 아내'(원제: 妻의 감각)는 벽산문화재단의 제작지원을 받아 남산예술센터와 공동 제작하고, 남산예술센터와 구리아트홀에서 공연한다.

'변칙 판타지(가제)'는 2016년 요코하마 공연예술미팅(TPAM in Yokohama)에서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단계를 지원받아 리서치를 하고 있으며,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을 마치고 내년부터 국제 네트워크를 이용해 해외 무대로 진출할 예정이다.


태그:#남산예술센터, #서울문화재단, #연극, #동시대, #창작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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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지 '문화+서울' 편집장과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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