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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씨가 방금 수확한 장미를 한아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윤 씨는 4년째 전라남도 장성에서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 귀농인이다.
 윤혜영 씨가 방금 수확한 장미를 한아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윤 씨는 4년째 전라남도 장성에서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 귀농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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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정말 예쁘네요."

"주인 닮아서 이쁘죠. ㅋㅋ"

"주인처럼 예쁘게 키우는 비결이 뭔데요?"
"사랑과 정성으로…."

윤혜영(59)씨와 주고받은 말이다. 그녀를 만난 건 지난 14일. 그녀는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에서 장미를 재배하고 있다. 4년째다. 노란색 등 형형색색의 장미 11종을 재배한다. 색깔이 여러 가지여서 관리가 힘들지만, 그래도 다 예쁘다고.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아요. 내려와서 장미 재배하기를요. 일도 재밌어요. 보람도 있고, 행복하고요."

윤혜영 씨가 지난 14일 자신의 하우스에서 장미를 수확하고 있다. 윤 씨는 이 장미를 서울과 광주의 화훼 공판장으로 낸다.
 윤혜영 씨가 지난 14일 자신의 하우스에서 장미를 수확하고 있다. 윤 씨는 이 장미를 서울과 광주의 화훼 공판장으로 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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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씨가 출하를 위해 수확한 장미를 포장하고 있다. 윤 씨는 이 장미를 서울과 광주의 화훼 공판장을 통해 내고 있다.
 윤혜영 씨가 출하를 위해 수확한 장미를 포장하고 있다. 윤 씨는 이 장미를 서울과 광주의 화훼 공판장을 통해 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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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지난 2012년 초, 전라남도에 왔다. 혼자서. 대형 유통업체의 대표이사로 일하던 남편(이성철)의 퇴직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혹여 실패를 해도 고정수입이 있기에 부담이 덜할 것 같았다.

윤씨의 장미 재배면적은 2640㎡짜리 양액재배 하우스 세 동. 여성 혼자의 힘으로 꾸리기엔 버거운 면적이지만 늘 싱글벙글이다. 장미를 재배하면서 느끼는 재미가 얼굴에서도 금세 드러난다.

그녀의 요즘 일상은 분주하다. 꽃의 수요가 가장 많은 졸업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즐거울 뿐이다. 수확량이 많고, 가격도 잘 받았다. 전국 각지에서 장미가 쏟아져 나오는 데도, 그녀의 장미는 늘 최상의 가격을 받는다. 주말이면 내려와서 농사일을 거드는 남편과 자녀들도 흐뭇해한다.

윤혜영 씨의 장미재배 하우스. 하우스마다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장미가 자라고 있다.
 윤혜영 씨의 장미재배 하우스. 하우스마다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장미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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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씨가 재배하고 있는 노란 장미. 로열티 없는 국산 장미다. 노란 장미의 꽃말은 질투라고 한다.
 윤혜영 씨가 재배하고 있는 노란 장미. 로열티 없는 국산 장미다. 노란 장미의 꽃말은 질투라고 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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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2월엔 누전으로 인해 하우스에 불이 났다. 졸업 때에 맞춰 키운 장미는 물론 하우스까지 불태웠다.

"새벽에 나와서 일을 하는데, '펑' 소리가 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가운데 하우스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어요.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비치해 둔 소화기를 들고 오고, 저는 119에 신고를 했죠. 그러고 나서요? 쪽팔렸죠."

침착한 성격의 윤씨는 액땜이라 여기고 바로 일어섰다. 하우스의 전기시설을 다시 했다. 누전 차단기도 따로따로 설치했다. 하우스를 손보며 하우스의 구조까지도 대충 이해하게 됐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장미하우스 구경했는데...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윤혜영 씨가 지난 14일 자신의 하우스에서 장미를 솎아내고 있다. 장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다.
 윤혜영 씨가 지난 14일 자신의 하우스에서 장미를 솎아내고 있다. 장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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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씨가 자신의 하우스에서 노란 장미를 수확하고 있다. 지난 2월 14일 오후다.
 윤혜영 씨가 자신의 하우스에서 노란 장미를 수확하고 있다. 지난 2월 14일 오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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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고 자란 윤씨가 피붙이 하나 없는 전라도와 인연을 맺은 건 1990년대 초. 남편이 광주로 발령을 받으면서였다. 광주에서 살 일이 암담하기까지 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솔직히 무서웠어요. 남편 혼자 광주에서 하숙을 했죠. 남편이 한동안 살더니, 저보고 내려오라는 거예요. 이런 데 없다고, 정말 좋다고요."

이웃들도 하나같이 좋았다. 그때 만난 이웃과 지금도 오가고 있다. 열무에 싸먹던 보리밥은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장미를 재배하게 된 것도 그때 구경했던 장미농원의 영향이 컸다.

"5년 전이었을 거예요. 난생처음 장미하우스를 구경했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환상 그 자체였어요. 한눈에 반했죠."

윤씨도 장미를 재배하고 싶었다. 주저하던 남편도 의구심을 풀고 거들었다. 전라도가 최적지였다. 기후도 좋고, 집값과 물가 부담도 덜할 것 같았다. 20년 동안 인연을 이어온 이웃도 의지가 됐다.

윤씨 부부는 광주 근교를 샅샅이 훑다가 지금의 하우스를 만났다. 장미가 심어져 있었기에 부담이 덜했다. 윤씨 혼자서 이삿짐을 꾸려 내려왔다. 4년 전 2월 1일이었다.

윤혜영 씨가 수확한 장미를 살피고 있다. 윤 씨는 4년째 전라도 장성에서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 서울 출신의 아낙네다.
 윤혜영 씨가 수확한 장미를 살피고 있다. 윤 씨는 4년째 전라도 장성에서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 서울 출신의 아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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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씨가 수확해 놓은 각양각색의 장미. 저온창고에 보관돼 있는 장미다.
 윤혜영 씨가 수확해 놓은 각양각색의 장미. 저온창고에 보관돼 있는 장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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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이 시작한 농사였다. 하우스 전 주인이 자기 농사처럼 도와줬다. 지금도 그녀의 농사 멘토로 손을 보태고 있다. 윤씨는 농업기술센터 같은 행정·연구기관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선진 농가도 틈틈이 찾아다녔다.

전문서적도 사서 봤다. 대학 화훼원예과에 다니며 주경야독했다. 장미 재배에 도움되는 교육이라면 지금도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몸은 고되지만 즐겁고 행복하다.

윤씨가 가꾸는 장미는 모두 11종이다. 색깔이 저마다 다르다. 꽃봉오리도 크다. 난방비를 아끼지 않는 덕분이다. 생산비를 아끼지 않고 좋은 품질로 만들어서 가격을 더 받자는 생각에서다. 하우스에 햇볕이 많이 들도록 지어진 것도 한몫한다.

그녀의 다음 도전 과제는...

윤혜영 씨가 수확한 장미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윤 씨는 귀농 전까지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서울 아낙네였다.
 윤혜영 씨가 수확한 장미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윤 씨는 귀농 전까지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서울 아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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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장미를 서울과 광주의 공판장으로 낸다. 10송이 한 단에 1만 원 이상 받았다. 최상급이다. 그럼에도 상인들이 서로 가져가려고 줄을 선다. 최고의 시설에서 갖은 정성을 다 해서 키운 보람이다.

"유기재배에 도전하려고요. 먹어도 되는 장미로요. 거기에다 꽃꽂이를 하고 차도 마시는 체험농장을 만들 생각입니다. 땅 3300㎡를 마련했고요. 지금 정지작업하고, 우분을 넣어뒀어요. 날씨 풀리면 바로 하우스 지으려고요."

귀농 5년 차에 접어든 윤씨의 올해 계획이다. 그녀의 고운 얼굴에서 눈빛이 반짝인다. 장미만큼이나 밝은 그녀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윤혜영 씨가 수확하던 노란 장미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윤 씨는 남편의 퇴직에 대비해 먼저 농사를 시작한 서울 출신의 아낙네다.
 윤혜영 씨가 수확하던 노란 장미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윤 씨는 남편의 퇴직에 대비해 먼저 농사를 시작한 서울 출신의 아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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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윤혜영, #장미, #귀농, #귀촌,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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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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