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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청년, '자조'하는 청년

2015년 10월, 한 청년이 차량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그의 자살소식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가 슈퍼스타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망주'였기 때문이었다.

언론은 앞다투어 그와 동반 자살을 시도한 다른 청년들에 관해 기사를 뽑았다. '남성과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자살을 계획했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으며 조회 수를 높였다. 그나마 나은 기사는 어릴 적부터 이어진 가정불화와 가난에 시달렸다는 그의 불행한 과거사를 풀어낸 내용이었다.

'다만 노래가 하고 싶어 누구보다 열심히 가수를 꿈꿨던' 청년은 '꿈에서 멀어져 우울증에 시달리다 좌절하고만' 청년으로 세상에 기억되었다. 아마 이것이 그가 대중들에게 기억되길 원했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도 그에 대한 추모사를 쓰지 않았고 아무도 그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았다.

나는 알지도 못하고 마주친 적도 없는 이 청년의 자살 소식이 마음이 퍽 쓰였다. 그의 죽음이 다만 그 혼자만의 절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 이후의 나의 삶은 월세를 매달 내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 노동을 쉼 없이 전전하는 삶이었다. 주중에는 학원에서 사무보조 알바를 하며 주말에는 카페 알바를 했던 적도 있었다. 10시간의 콜센터 알바로 목이 쉬었고 오전 7시에 신림동 고시촌의 카페에 출근하고는 창고에서 잠들어버려서 다음날 전화로 해고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아무리 일하고 또 일해도 월세와 통신비, 각종 공과금이 빠져나가고 나면 내 손에 쥐어지는 돈은 턱없이 적었다. 휴식 없이 노동에 '쩔어' 있었던 일상, 남는 것도, 채워지는 것도 없이 매일매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잠'이 전부였던 주말. '월급날'만을 기다리며 '소비'하는 것이 유일한 '위안'인 나날들 속에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친구들에게 언제나 장난처럼 이야기했다.

"아, 내일 자살해야지."

나는 실제로 '자살'을 실천에 옮기거나 시도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이 단어가 청년세대에 무척이나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점은 나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흔히 '청년'들을 떠올리며 '청춘'이나 '희망', '미래'와 같은 밝고도 희망찬 단어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것은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 요구하는 사항일 뿐이다.

한강에 뛰어들 것을 예고하는 '오늘 한강 수온 몇 도예요?', 자살시도 상위 5곳의 다리 중 1위인 마포대교를 거론하며 '마포대교 가야지'(심지어 마포대교의 자살방지 문구들은 청년들 사이에서 굉장한 '조롱'으로 쓰이기도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할 때 '각'을 붙여 매우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과장해서 표현한 '자살각', 유명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내일 자살해야지'라는 대사까지.

위와 같은 자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단어들이야말로 청년들이 진심으로 사유하는 언어가 되었다. 이 언어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청년이 삶 전반에 있어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지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미래도 꿈꾸지 못하는 부정적인 인식 역시 알 수 있다.

'수레바퀴 이고 나가겠습니다'

위 사례들처럼 절망과 냉소를 반복하는 청년세대를 위해 특별한 청년 활동 지원 제도들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서울시에서는 '서울시 청년수당'이라는 정책이 등장했다. 이 활동비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 소득 이하의 미취업자이어야 하고 구직 활동이나 공공 사회부문에 대한 자기 계획서를 심사받아야 한다.

또한, 성남시에서 실시하는 '청년배당'도 주목을 받고 있다. '청년배당'은 성남시에서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살의 청년에게 연간 50만 원씩의 지역 화폐(상품권)를 지급하여 청년들의 활동과 골목상권 활성화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이 밖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주도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청년희망펀드'가 등장하는 등 청년을 '위한' 제도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들이 '자조'하고 '자살'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제공'하는 이 '선별'적이고도 '시혜'적인 제도에 만족하면 될까? 이것을 받으면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까?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것은 '창조'하거나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조'하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일까? '우리' 없는 '그들'만의 정치는 공허하고 다른 세상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질 뿐이다.

이번 제20대 총선에서는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청년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나는 그중에서도 이른 나이부터 알바를 시작했다는, 나와 닮은 지점이 많은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용혜인을 주목했다. '수레바퀴를 이고 나가겠다'는 그의 출마선언문을 보았다. 그 글처럼,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학 합격' 이후에도 학업과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내가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소중한 것들은 끊임없이 존재했다.

당시 4천 원이 채 되지 않는 최저시급을 받으며 온종일 구두를 신고 일하고, 1평도 채 되지 않는 고시원에서 살면서 타인의 알람을 듣고 깨어나는 경험을 했다. 그러고도 '나만 노력하면, 더 열심히 노력하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온전히 공감했다. 과연 저 '수레바퀴' 바깥에서 '이윤'만을 위해 '수레바퀴'를 돌리는 정권과 자본은 자신을 향해 쏟는 비난과 책망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너와 나, '우리'의 정치

청년들은 가난과 불행을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돌리고 매일 '수레바퀴'에 짓눌리는 생활에 시달리고 있다. 짓누르는 자신의 '수레바퀴'만도 버거워 타인의 수레바퀴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용혜인은 청년들의 서로 다른 절망을 인식하고 현실로 불러냈다.

모두에게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용혜인은 세월호 추모 침묵행진인 '가만히 있으라'를 제안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깊은 패배감만 느끼던 나도 그의 부름에 응답했다. 용혜인은 그렇게 '우리'들을 불러 모았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가만히 있으라'의 침묵행진에 참여했다. 정권은 이러한 추모를 막고 공권력을 동원해 억압했다. 하지만 타인이 깊게 깔린 '수레바퀴'에 공감하고 슬퍼하는 '우리'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팟캐스트 <절망라디오>를 통해서도 용혜인을 볼 수 있었다. 한창 입시준비와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은 나는 '희망'과 '기대' 따위가 아닌 오로지 당신의 '절망'을 이야기하는 라디오를 신기하게 느꼈다.

그것은 국가의 발전과 안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우리들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느니, '같은 책을 7번 보면 외운다'느니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 너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식의 말이 아니었다. '네가 열심히 해봤자 안될 거야. 어차피 세상이 다 그 모양이거든'이라고 말해주는 라디오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청년의 공감을 샀다. 실제로 18회까지 이어진 <절망라디오>의 다운로드 횟수는 회당 평균 1000회가 넘는다.

'가만히 있으라' 추모침묵행진 중 발언 중인 용혜인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추모침묵행진 중 발언 중인 용혜인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 박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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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정치'를 이어나가겠다는 그의 출마선언문처럼 용혜인은 416연대,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절망라디오>, 인권 네트워크 '사람들'과 같은 수많은 운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모두 이윤을 위해 굴러가는 '수레바퀴'아래 청년들을 끊임없이 밖으로 불러내는 작업이었다. 아마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기만 하던 나 역시 그 부름에 응답한 청년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인 청년들이 노동당 비례대표 용혜인 후보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이제 '수레바퀴' 아래 깔린 모든 청년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자살'과 '자조'를 넘어 타인의 '수레바퀴', 아니 우리를 모두 깊게 짓누르는 '우리'의 수레바퀴를 함께 들어 올리자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되고 싶은 꿈과 아담하고 소소하게 삶을 채워가는 것, 누군가를 추모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 알바도 노동자라고 끊임없이 소리치는 것,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라고 저항하는 것, 이러한 우리들의 외침 속에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용혜인과 함께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정치를 시작하자.


태그:#용혜인, #노동당, #총선, #국회의원,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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