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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는 여행을 하면 할수록 숲의 도시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룩셈부르크의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사이에는 깊은 숲과 계곡이 우거져 있다. 깊은 숲을 품고 있는 계곡은 페트루세(Péitruss) 계곡이다. 구시가의 중세시대 건축물, 신시가의 현대식 유리빌딩과도 잘 어울리고 있으니 참 묘하게 멋들어진 계곡이다. 한 나라의 수도가 깊은 계곡과 숲에 둘러싸여 있으니 부러움을 넘어서 경탄의 대상이다. 

룩셈부르크 시 구 시가지 남족 끝에 서 보면 룩셈부르크는 서쪽을 제외하고 모두 자연적으로 형성된 강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시가를 남쪽에서 둘러싼 페트루세(Péitruss) 강이 구시가의 동쪽을 흐르는 알제트(Alzette) 강으로 흘러들고, 이 알제트 강은 룩셈부르크 시를 감싸고 돌다가 다시 시의 북쪽으로 흘러간다. 계곡과 강이 시가지를 감아 돌고 있으니 도시가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룩셈부르크를 걷다보니 수도 없이 많은 다리가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신 시가지와 구 시가지 사이에 40m 깊이의 계곡이 있으니 두 군데를 잇기 위한 다리가 수많이 연결돼 있다. 커다란 다리만 5개로, 계곡 사이를 잇고 있는 작은 다리만 해도 62개에 달한다. 이 다리들은 모두 구조와 외양이 다를 정도로 개성적이고 독특하다. 게다가 아름답다.

'우아한 다리'의 대명사, 아돌프 다리

계곡 위의 이 거대한 석조 아치교는 룩셈부르크의 상징이다.
▲ 아돌프 다리. 계곡 위의 이 거대한 석조 아치교는 룩셈부르크의 상징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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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 시가지에서 구 시가지로 들어가는 한 다리를 건넜다. 내가 건너는 아주 큼지막한 다리 밑에는 작은 강줄기가 흐르고 그 옆에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강물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숲이 다리 밑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건너는 다리는 보수공사 중인 아돌프 다리(Pont Adolphe, Adolphe Bridge) 옆에 세워진 임시다리였다. 임시다리 옆으로는 붕대로 몸을 칭칭 동여 맨 아돌프 다리가 숨겨져 있었다.
   
룩셈부르크에서 아돌프 다리는 단순한 한 개의 다리가 아니라 그 거대함으로 인해 국가의 상징이 된 다리다. 룩셈부르크 기념품 가게에서는 작게 복제된 이 아돌프 다리가 대표적인 기념품이 될 정도로 유명한 다리다.

아돌프 다리가 건축될 당시인 1903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형 석조다리였기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화제가 됐다. 높이가 무려 46m에 달하는 계곡 위에 돌로 아치를 쌓았으니 아치의 크기가 거대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숲의 향연 위에 거대한 아치가 놓이니 우아한 다리의 대명사가 됐다.

계곡 위에 세워진 육중한 아돌프 다리의 모습이 압권이다.
▲ 과거의 아돌프 다리. 계곡 위에 세워진 육중한 아돌프 다리의 모습이 압권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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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는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네 번째 대공인 아돌프 대공(Duke Adolphe)이 통치하던 시절에 만들어져서 아돌프 다리로 불린다. 현재 아돌프 다리는 구시가와 신시가를 오가는 차량들의 교통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보수공사에 들어가 있다. 아돌프 다리 위로 트램 철로를 설치하고 트램을 운영하려고 했는데 트램을 버티기에는 다리가 너무 낡아서 대규모 보수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워낙 유명한 다리라서 보수 중인 아돌프 다리를 둘러보려는 관광객들을 위해 다리 앞에 따로 아돌프 다리 전시관을 만들어뒀다. 아돌프 다리가 만들어질 당시의 과거 흑백사진들을 보면 그때도 다리를 둘러싼 전경들이 압도적으로 아름다웠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물에서 진화하고 오랜 세월 숲 속에서 살았으니 깊은 계곡의 강과 숲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멍하니 페트루세 계곡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한곳에 오래 앉아 있기가 쉽지 않은데 이 장관을 보면 편히 앉아 휴식을 취해도 시간이 아깝지 않다.

가교에서 아돌프 다리를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영국의 관광객인 듯한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 이야기는 거대 석교와 계곡을 편안하게 감상하던 나의 감상을 흔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이 다리는 자살로도 유명한 다리야"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에서 뛰어내렸대?"
"이 다리 위에서 무려 500여 명 이상이 아래로 뛰어내렸어. 세계에서 자살하기로 이름난 아홉 다리 중 하나야."

다리와 계곡의 장관에 취해서 울창한 숲 속으로 낙하하고 싶었던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세계 최대의 석조 아치교, 아돌프 다리는 알고 보니 자살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아돌프 다리는 아주 크고 높아서 유명해졌지만, 또한 높다는 이유 때문에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아름다운 경관도 달리 보이는 것이지만 이 아름다운 계곡 밑으로 뛰어내리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하다.

아돌프 다리 밑, 페트루세 계곡에는 시민들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펼쳐져 있다.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페트루세 익스프레스(Péitruss Express)가 가끔 한 번씩 계곡을 누비지만 계곡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평화롭다.

계곡 주변의 건물과 비교해보면 계곡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계곡의 깊이가 40m가 넘지만 계곡에서 자란 나무의 높이도 계곡만큼 높아서 나무만 보아도 사람이 압도되어 버린다. 계곡의 강을 찾아보았지만 강물은 숲에 둘러싸여 더 깊은 곳에 숨어있다.

40m가 넘는 계곡 아래에는 울창한 숲과 함께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 페트루세 계곡. 40m가 넘는 계곡 아래에는 울창한 숲과 함께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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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헌법광장(Place de la Constitution)에서 이어지는 계단을 이용해 계곡 아래로 내려가 봤다. 눈앞에 산책길과 푸른 숲, 잔디밭이 펼쳐지고 방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구 시가지는 마치 높은 산 위에 있는 것처럼 올려다 보였다. 산책길 옆의 잔디밭은 마치 담요처럼 폭신해 보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룩셈부르크 사람들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니는 겨울인데도 잔디색이 푸른 녹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잔디가 겨울에도 견디는 품종인 것 같은데 보면 볼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추운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열심히 조깅을 하고 있다.
▲ 계곡에서의 조깅. 추운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열심히 조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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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서는 한겨울인데도 반바지만 입고 열심히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나라나 룩셈부르크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군살이 없고 몸매가 탄탄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긴, 운동을 하며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튼튼한 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나게 짙은 숲 속에서 피톤치드를 듬뿍 마시며 달리는 사람들이 부럽게만 보인다. 작고 조용한 나라, 룩셈부르크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삶의 질이 어때야 하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경제성'만 따진 게 아닌 룩셈부르크의 다리들

다리 뒤로 룩셈부르크 신시가지의 전경이 펼쳐진다.
▲ 파세렐 다리. 다리 뒤로 룩셈부르크 신시가지의 전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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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따라 놓인 산책길을 계속 걸으니 깊은 숲이 뒤덮어버린 계곡 저편에 또 하나의 거대한 다리가 보인다. 아돌프 다리와 함께 신 시가지와 구 시가지를 연결하는 파세렐 다리(Pont Passerelle)이다.

파세렐 다리 너머로는 룩셈부르크 역까지 연결되는 신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리가 마치 공중 위에 떠 있는 듯이 아름다운데, 구 시가지와는 전혀 다른 현대적인 신 시가지를 떠받쳐 들고 서 있는 듯하다. 도시의 다리는 공공재인데 경제성만 따져서 건설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미적 감각을 가미해서 다리를 만들면 두고두고 문화적·경제적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페트루세 강이 알제트 강을 만나면서 수량이 풍부한 강의 모습이 된다.
▲ 알제트 강. 페트루세 강이 알제트 강을 만나면서 수량이 풍부한 강의 모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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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 밑을 지나니 페트루세 강이 알제트 강을 만나고 있었다. 조그만 개울 같던 강물이 알제트 강을 만나면서부터 비로소 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해진다. 이 강물은 저지대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집들 사이를 흐르고 있다.

계곡 바로 위에는 구 시가지의 번화가가 펼쳐져 있는데, 그 바로 아래에 깨끗한 강물이 흐르고 한적한 마을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이 매력적인 도시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표현하기가 무척 힘이 드는 절경이다.

2층 기차가 다니는 철길 뒤로 ‘빨간 루즈의 다리’가 시가지를 잇고 있다.
▲ 철길과 다리. 2층 기차가 다니는 철길 뒤로 ‘빨간 루즈의 다리’가 시가지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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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역에서 북쪽으로 연결되는 철길은 계곡의 동쪽 언덕을 끼고 연결돼 있다. 지대가 높은 룩셈부르크에서 움직이는 기차는 계곡 아래를 달리거나 수많은 다리 위를 지나면서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었다. 흰 바탕에 빨간 지붕을 가진 예쁜 기차가 마침 철길을 지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기차는 2층 기차였다. 숲이 우거진 자연 속을 달리는 2층 기차가 점점 내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미니어처 마을 속에서 모형 기차가 달리고 있고 나는 그 미니어처 마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차가 달리는 저지대 위의 구시가와 신시가는 샤롯데 공작 부인 다리(Pont Grande Duchesse-Charlotte)로 연결되고 있다.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최근인 1966년에 만들어진 다리이지만 길이가 355m에 이르고 알제트 강으로부터의 높이가 74m나 돼서 룩셈부르크 시티 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다리이다.

룩셈부르크 사람들의 사물에 대한 해학은 이 붉은 현대식 다리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이 다리는 일명 '빨간 루즈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긴 교각이 온통 눈에 띄는 빨간색이어서 여자들이 입술에 바르는 빨간색 루즈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이 교각을 여성의 입술이라고 생각하고 다리를 다시 보니 다리의 별명이 그럴듯해 보인다. 단순한 다리에 붙인 별명 하나도 사람들을 더 여유 있게 웃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신시가지의 EU 건물은 룩셈부르크의 신시가지 스카이라인을 만든다.
▲ EU 사법재판소 건물. 신시가지의 EU 건물은 룩셈부르크의 신시가지 스카이라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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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너머 요새 같이 올려다 보이는 신시가지에는 현대식 유리빌딩이 마치 다른 세계인양 펼쳐져 있다. 그중 가장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EU 사법재판소(Cour de justice de l'Union européenne)다. 계곡 쪽에서 보면 EU 건물이 있는 신시가지는 구 시가지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구 시가지·신 시가지가 마치 역사적 시대순으로 세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룩셈부르크를 여행하면서 가장 부러운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구 시가지의 역사적 건축물과 시민들이 살던 중세 주택들을 전혀 손대지 않고 보존한 채로 구 시가지 밖으로 새로운 도심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한양 도성의 성곽과 궁궐, 수많은 기와집들이 헐려나간 서울을 비교해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강대국에 침략 당하던 약소국이었던 룩셈부르크. 이제는 유럽의 중심이 돼 세련된 현대식의 EU 사법재판소 등을 유치하면서 새로운 스카이라인이 이 도시에 등장하였다. 하늘 끝을 찌를 듯이 뾰족한 룩셈부르크의 성당과 현대식 높은 고층빌딩들은 묘하게도 잘 어울리고 있었다. 하늘을 향하는 직선을 중심으로 건축물을 지은 유럽인들의 건축술은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대의 건축물들이 이렇게 멋지게 공존하고 있는 룩셈부르크는 역사 건축물 보존과 신도시 건축의 모범답안 같은 곳이다. 

나는 알제트 강을 바라보며 잠시 벤치에서 휴식을 취했다. 앉아서보니 계곡 주변으로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산책할 수 있는 길들이 곳곳에 이어지고 있었다. 많이 걸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채 이 세상에 나 혼자 앉아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주변은 한적하기만 하다.

신구의 조화... 한국이 배워야 할 점들

구시가로 뒤로 지는 해가 룩셈부르크 여행의 마지막을 알린다.
▲ 룩셈부르크의 노을. 구시가로 뒤로 지는 해가 룩셈부르크 여행의 마지막을 알린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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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위 구시가지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겨울의 짧은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지면서 구시가 건물들 뒤로 붉은 노을이 점점 번지기 시작했다. 노란 듯 붉은 하늘 위로 새털 같은 구름들이 퍼져 있는 노을은 마치 나의 룩셈부르크 여행의 마지막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나는 바지를 툴툴 털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 도시, 룩셈부르크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룩셈부르크 역까지 돌아가는 길은 파세렐 다리를 건너서 갔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방금 전에 있었던 계곡이 까마득히 저 아래에 있었다. 계곡은 점점 짙은 어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룩셈부르크 역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예술품이다.
▲ 룩셈부르크 역 가는 길. 룩셈부르크 역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예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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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 끝에 룩셈부르크 역이 보였다. 당당한 시계탑을 세운 역 건물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옅은 하늘에 샛노란 해가 그려져 있는 역사의 천장벽화를 구경하면서 나는 내가 탈 기차를 기다렸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답게 역 모든 곳에서 무료 와이파이 이용이 가능했다. 역과 역 주변은 무척 정갈했다.

내가 탄 기차는 룩셈부르크를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꼭 룩셈부르크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생각했다. 룩셈부르크에 다시 오면 나는 아제트 강의 물줄기를 따라 룩셈부르크 시 외곽의 작은 마을을 찾아 나설 것이다. 창밖의 룩셈부르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500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룩셈부르크 , #룩셈부르크 여행, #룩셈부르크 시티, #페트루세 계곡, #아돌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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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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