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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나 평등한 토지권이 잘 적용된 사회일수록 안전했고, 경제가 발전했으며, 건강한 문화가 꽃피웠습니다. 반면 이 사상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사회는 불안해졌고, 빈부 격차는 심해졌으며, 문화는 병들어갔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주거 불안, 일자리 불안, 금융 불안, 노후 불안을 해소하고 참다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평등한 토지권이 회복돼야 합니다."

토지+자유연구소의 남기업 소장은 이렇게 자유롭고 정의로운 토지의 진정한 가치를 연구한다. 그는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조지주의(Georgism, 지공주의)를 믿고 따른다. 그는 "개인은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사적으로 소유할 권리가 있는 반면, 사람이 창조하지 아니한 것 즉, 토지·환경 같은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귀속된다"고 주장한다.

'조지이스트(지공주의자)' 남기업 소장의 또 다른 직함은 아파트 동대표 회장이다. 지난해 수원시의 어느 아파트 단지 동대표 회장 선거에서 당당히 선출되었다. 하지만 불과 선출 석 달 만에 해임 위기로 내몰리고 말았다.

"생활의 작은 단위에서 제대로 된 변화가 이뤄지고 이런 게 누적되어야 사회 전체의 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바람과 "투명한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좌초될 지경에 빠졌다. 비리 의혹으로 얼룩졌던 반대 세력들이 "투명한 아파트가 싫다"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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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학회에서 토론자로 나서 토지의 정의를 설명하고 있는 남기업소장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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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이스트' 남 소장, 아파트 동대표 회장에 선출되었으나

반대 측의 비리 의혹 세력들에게 남기업 동대표 회장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 같았다. 신임 남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매월 입주자 대표회의 내용을 아파트 누리집에 공개했다. 또 관리소장에게는 매일 전자우편으로 일일 보고를 받았다. "투명한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실천하려는 조치였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은 남 회장의 행위가 몹시 못마땅했다. 특히 '아파트 권력'을 내놓고 처지와 입지가 불안해진 입주자 대표회의의 일부 임원이 구체적인 실력 행사에 나섰다. 남 회장에 대해 주민 10분의 1의 서명을 받아 해임 발의를 한 것이다.

남 회장의 죄목(?)은 아파트 관리소장 업무 방해, 회의록 공개에 따른 대표회의 참가자들의 사생활 침해, 동대표 회장 선거 부정 등이다. 한마디로 그 아파트의 기득권 세력들은 아파트 관리가 투명해지고 깨끗해지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동대표 회장은 관리소장을 감독할 의무가 있고 회의록 공개는 투명한 아파트 관리를 위해 관리규약에 명시된 것"이라는 남 회장의 반박은 아무 소용없었다.

다행히 해임 투표 결과 해임 반대가 더 많아 남 회장은 쫓겨나지 않았다. 주민들이 남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입주민 관리비 수천만 원을 부정하게 사용한 의심을 받는" 10명의 동대표, 관리소장, 4명의 선관위원 등 반대세력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남 회장이 투표 기간 중 허위사실 인쇄물을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회유했다"는 반대세력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3월 9일까지 해임 '재'투표가 실시됩니다.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하는 해임추진자들, 15명의 동대표 중 10명, 관리소장, 7명의 선관위원 중 4명의 일관성과 집요함은 정말 대단합니다. 저들은 해임될 때까지 투표하자고 할 기세입니다."

남 회장은 "이것이 바로 21세기 대한민국 풀뿌리의 실상"이라며 "현존하는 악과의 싸움이 정말 쉽지 않지만, 여기서 결코 물러설 순 없다"며 전의를 다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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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산골 무주에도 강변을 따라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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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화국'의 베스트·스테디셀러 투기상품 '아파트'

이처럼 오늘날 '불행사회, 한국'에서는 땅도, 돈도, 심지어 인격마저도 상품화된 지 오래다. 그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경제와 사회는 '돈 놓고, 돈 먹는' 투전판 시장의 생리와 다를 게 없다. 그 비인간적인 비정한 정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함축해놓은 최적의 히트상품이 아마 '아파트 부동산'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또 다른 이름은 '부동산 공화국, 또는 아파트 공화국'이다.

사실 아파트는 주거용 주택이 아닌 투기용 상품이다. 입주자들은 대개 분양원가도, 택지 가격도, 건축비용도 알지 못 한 채 아파트를 구매하고 소비한다. 전적으로 공급자인 건축업자들 마음대로 시장질서가 돌아간다. 정부는 업자들의 파행을 방관하거나 은근히 보호한다. 다들 원가 따위는 몰라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어차피 '아파트 불패신화'의 난장판에서 매매 차익만 남기면 되니까. 아무리 비싸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테니까.

설사 빚을 내서 아파트 몇 채를 보유한다 해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보유세는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양도소득세도 터무니없이 저렴하다. 세금을 아무리 많이, 자주 낸다 한들 시세차익 불로소득 '한방'이면 금세 만회할 수 있다.

그렇게 이미 한국에서 땅이나 건물은 공유재이기는커녕 '돈 놓고 돈 먹는' 데 참으로 요긴한 아주 매력적인 투기상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고관대작이든 소시민이든 그 '불로소득'의 유혹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다. 주변의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까 죄의식도 크지 않다. 아파트 투기가 부끄럽기는커녕 "왜 나만 갖고 그래, 그러는 너는"이라고 뻔뻔하게 따지고 대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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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를 부동산 투기상품이 아닌 ‘생활공동체’로 회복하려는 인천 신동아아파트 의 마을기업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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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자본의 '젠트리피케이션' 자산 양극화의 시대

이제 초등학생들 조차 '지주'나 '건물주'를 장래 희망직업으로 꼽는 세상이다. 부와 명예, 그리고 그 사람의 능력과 인격이 부동산이나 화폐를 보유하는 수나 량으로 계량화되어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단지 땅이나 건물을 소유했다는 극히 사사로운 이유 하나로, 땅과 건물이라는 공유재가 발휘하는 모든 사회적 권리와 공동체의 가치를 독점할 수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소득 양극화 못지않게 자산 양극화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2014년 정의당 박원석 의원실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1% 부자가 보유한 부동산(2013년 공시가격 기준)이 전체의 16%, 상위 10%가 전체 부동산의 46%를 차지하게 되었다. 상위 1%의 부동산 총액은 하위 55.6%가 보유한 부동산과 맞먹을 정도로 자산 양극화가 심각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택부자 상위 10명은 1인당 평균 703채, 공시가격 605억 원 규모의 주택을 가지고 있었고, 토지 부자 10명의 토지는 1인당 214만㎡, 3605억 원 규모였다. 부동산 상위 1% 개인은 1인당 평균 32억 원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부동산 하위 10% 계층의 1인당 평균 부동산 보유액보다 640배 많은 금액이었다.

이 같은 자산 양극화는 소득 양극화로 이어지고 이게 다시 자산 양극화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새로운 사회문제, 도시문제까지 등장했다. 도시의 부동산으로 '투기 수익'을 좇아 천민자본이 몰려들면서 자산과 소득 수준이 낮은 원주민이 밀려난다. 그 자리를 자산부자, 소득 부자가 차지하면서 도심 공동화가 심화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날로 심화되는 것이다. 서울 북촌과 서촌, 전주의 한옥마을이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다.

최근 서울시 성동구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전담부서를 설치하기로 했다. 성수동 옛 공장지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선제적으로 방지해 지속가능 발전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상가 임대인, 임차인, 지역주민 등이 참여하는 상호협력 주민협의체를 구성, 지속발전구역에 들어오는 입점 업종과 업체를 선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역 상권에 중대한 피해를 입히거나 입힐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업체·업소 경우 주민협의체의 동의를 거쳐야 입점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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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민의 주택이 관광업자의 호텔과 상점으로 바뀌는 젠트리피케이션 몸살을 앓고 있는 베니스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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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인클로저 운동과 공유지의 비극을 끝내야  

인류의 공유재, 공유지로 대접받아야 마땅할 토지가 이처럼 투기상품 사유물로 전락한 비극적인 역사는 16세기 영궁 등 유럽의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에서 비롯된다. 당시에도 힘을 가진 특정 지배층에 의한 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저항은 토지를 상실했거나 토지에서 추방된 농민의 반란으로 구체화되었다. 소극적인 저항은 토지에서 유리된 농민층은 농업 이외의 노동을 거부하는 '유랑'의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지배층은 이에 대해 역사적으로 악명높은 '구빈법'으로 농민들을 응징했다. 1834년, 최저생계비 이하 노동자 생활수당제의 스피넘랜드법에서 무원조 원칙의 신구빈법으로 개약한 것이다. 땅도, 고향도 잃고 유랑하는 농민들은 잠재적 범죄자처럼 낙인을 찍고 교도소에 수감, 강제적으로 기계적 노동에 적응하도록 요구했다. 자연의 벗이자 땅의 주인이었던 농민은 비참한 임노동자,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땅을 잃은 인류 비극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954년 독일의 4대 녹색계획(Green Plan)을 보면 땅을, 자연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지는 알 수 있다.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면서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 가시리에 가면 공유지로서, 공동의 자산으로서 땅의 소중함을 체감할 수 있다. 2백만여 평의 마을 공동목장에 이른바 '주민참여형 풍력발전단지'를 세웠다. 목장의 소유주인 가시리 새마을회는 풍력발전단지를 운영하는 제주에너지공사로부터 연간 3억 원의 임대료를 받아 지역주민들과 주민복지 등 마을공동체사업을 위해 나눠 쓰고 있다. 골프장이나 리조트를 건설하려는 외부 업자의 매각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마을의 공동자산이 땅을 지켜낸 결과다.

수년 전, 평생 처음으로 팔자에 없을듯한 지주가 되었다. 무주 산골 마을의 작은 농가를 용케 얻은 것이다. 도시에서는 원룸 보증금도 되지 않을 가격이다. 마당과 작은 텃밭을 포함해 100평 정도인 이 작은 땅덩어리 정도면 한 가족이 살아가기에 넘친다. 그 소중한 땅 위에서, "왜 땅이, 집이 '돈 놓고 돈 먹는' 상품이 되어야 하는지" 깊이 걱정하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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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평의 땅에서 삶과 일과 놀이가 하나되는 '마을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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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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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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